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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생일

그래서?

by Henry Hong

아내가 미역국을 끓였다.

이상하리만치 맛없는 미역국을 의무적으로 먹었고

케이크의 촛불을 껐다.

생일이 지났다.

56번 째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

부모, 형제, 성별, 이름, 얼굴, 작은 키로 잘도 살았다.

앞으로도 그대로 살아갈 것이다.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평생을 살아가라니?

이거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


내가 선택한 것들.

살고 있는 나라, 뉴욕, 결혼, 지금 입고 있는 옷, 단골 식당 정도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한 것들.

사실은 우연히 결정된 것들이었다.

IMF를, 부동산업자를, 만남을, 반값 할인을, 아는 사람을.

이유는 있었다.

핑계 같은 이유들.

진짜 우연히 결정된 것들이 이유가 돼버린 인생.


생일을 지내며 매년 드는 생각이 있다.

'별생각 없이 잘도 버티는구나'

'우연한 것들과 잘도 사는구나'


생일을 더 할수록,

나이 든 이들의 이야기가 우스워진다.

겪어 봤다는 그들의 직언에 실소가 나온다.

삶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야.

남들도 그냥 그렇게 살아.

위로가 될 리 없다.

차라리 모른다고 몰랐다고 말씀을 하시지.

의미 없는 미소처럼 공허하기만 하다.

모른다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저보다 어린 사람을 만나지나 말던가.

워싱턴박물관그림.jpg

잠 못 이루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뭔가 달라지려고?

그러기에는 너무 게으르다.

더럭 겁부터 난다.

다음 생일도 이러려나?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으려나?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며

뭔가 달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아내에게 욕먹는 인간들은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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