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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도서관

갑자기 든 생각

by Henry Hong

가끔 집 앞이나 사무실 앞의 도서관에 들린다.

뉴욕시에서 운영하는 뉴욕 공림 도서관은 시민들의 만족도가 높다.

한국어, 중국어, 러시아어, 벵골어, 아랍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어, 이탈리아 등

11~12개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뿐 아니라 뉴욕공립도서관 (NYPL)의 일반 자료부(General Research Division)에는

약 4,300만 아이템이 있으며, 희귀 언어까지 포함해 430여 개 언어의 출판물이 있다고 한다.

도서뿐 아니라 잡지, 신문, 디지털 자료 등 역시 수많은 언어로 제공되고 있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민자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세금 내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뙤약볕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날씨였다.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컨 바람이 환영을 해준다.

그때야 작동하는 뇌.

새로 들어온 한국 책이 있는 지부터 살핀다.

몇 권을 골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조용한 분위기에 몇몇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글을 쓰시는 분들이었다.

도서관은 아무래도 읽는 장소가 아닐까?

호기심에 이끌려 그들을 지켜보게 됐다.

도대체 뭘 저렇게 열심히들 쓰고 계신 걸까?

책을 밀어 놓고 관찰이 시작된다.

신문기사를 옮겨 적는 분

창밖을 내다보며 띄엄띄엄 공책을 채우는 분

소설 필사를 하시는 분

영어 단어장을 만드시는 분


도대체 이 분들에게 팔뚝 근육을 만드면서까지

펜을 쥐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간절해 보이는 얼굴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마치 몇 년 후 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도 같았다.

쓰기만 한 인간의 미래 완료형 모습.

기시감이 들었다.

소름이 돋았다.

분명 강한 에어컨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결국에는 쓰는 것 밖에 못하는 건 가?

도서관의 어른들을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니고..

(그분들은 목적이라도 있어 보였다.)

내가 우물쭈물 쓰기만 하다가 인생 마칠까 봐 드는 걱정이다.

도서관실내2.jpg

쓴다는 것. 가장 게으른 근면 성실함이 아닐까?

운동, 산책, 등산, 낚시도 아니고 앉아서 쓰기만 하는 행동.

마냥 쓰기만 하는 행동.

아령을 들면서 쓸 수 없다.

걸으면서도 쓸 수 없다.

어딘가 자리를 잡고 앉아야 쓸 수 있다.

긴 시간 서서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나만의 글이라도 남았다고?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가 남은 건 아니고?

나는 게을러서 쓰고 있는 건 아닐까?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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