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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과 어느 날

그리고 같은 나

by Henry Hong

새벽부터 잠을 설쳤다. 유난히 현실감 넘치는 꿈 때문이다.

추격전이었다.

나는 쫓았나? 쫓겼나? 기억은 없고,

긴장감의 잔상이 뒷목을 조인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대충 씻고 토스트 한쪽을 먹고 집을 나섰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사무실에 들어선다.

컴퓨터를 열자마자 쏟아지는 이메일

가벼운 질문에서부터

이런 질문을 왜 나에게 하는 거지?

이거 질문 맞나? 시비 거는 거 아닌가?라는

메일까지 일일이 답을 한다.

남들이 말하는 점심시간은 지난 지 오래다.

배달된 음식은 책상 너머에서 식고 있다.

출근 전, 토스트 한쪽이라도 먹고 나온 걸 다행이라 생각한다.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먹먹해지는 것 같다.

벌떡 일어 나 기지개를 켠다.

길 건너에서 커피 한 잔을 사 온다.

다시 컴퓨터 모니터를 노려 본다.

기다리는 이메일 답장은 오지 않고 있다.

답을 받아야 대답을 할 수 있는 메일이 쌓이고 있다.

전화라도 하고 싶지만 전화받을 사람은 없고,

전화를 받는 사람은 이메일을 보내라고 할 것이다.

당장 뛰어가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한다.

상대는 뉴욕 저 반대편 시차가 3시간이 나는 곳에 있다.

빼꼼한 사무실에서 눈 둘 곳은 컴퓨터 모니터뿐이다.

하루가 길기만 하다.


눈을 떠 하얀 천장을 마주한다.

미끄러지듯 침대를 벗어난다.

어슬렁거리며 외출 준비를 한다.

잠이 덜 깬 머리에 몸은 가볍다.

일요일이다.

늑장을 부리는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떨어지는 낙엽에 시선이 머물고

높고 파란 하늘에 경탄한다.

발걸음은 동네 카페로 향한다.

여름의 끈적임을 걷어내서인지.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부드럽다.

커피 향을 가까이하며 전화기를 슬쩍 밀어낸다.

책을 읽는다.

글쓴이의 정신세계가 궁금해지는 산문집을 한 시간 정도 읽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아내와 외출을 한다.

일요일 해피아워를 진행하는 식당을 골라본다.

낮술 할인을 하는 곳이 제격이다.

간단한 애피타이저에 맥주면 만족한다.

띄엄띄엄 아내와 대화가 오간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아내와의 관계.

말없이 이 사람을 좀 알게 됐다.

눈치만 빨라진 건가? 생존방식이라 해두자.

아무튼 늙으며 고마워하고 있다.

의자에 기대어,

가을 햇살을 얼굴에 받는다.

내가 참 좋아하는 11월과 12월 사이의 시간

아쉽기만 한 시간이 소중하기만 하다.

그 소중한 시간에 술을 마시고 있다.

아니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런 게 행복 같은데 어쩌랴.

하루가 짧기만 하다.


운전석에 앉은 아내가 마켓에 들려야 한단다.

이번 주에는 뭘 먹으면 좋겠냐고 묻는다.

"뭐 간단히 스테이크 좀 굽고 바닷가재에 캐비어 정도면 되잖아.. 아.. 와이너리에 연락해 와인 몇 병도 보내라고 하고!"

낮술이 이래서 무섭다.

자연스레 헛소리가 나온다.

마켓에 들려 감자, 당근, 양파만 잔뜩 샀다.

고기도 아닌데 무겁다.

카레를 만든단다.

앞으로 3일은 인도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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