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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Sep 01. 2021

부부 싸움을 위한 영어 공부

피곤합니다.

부부가 살다 보면 당연히 싸울 일 생긴다.


결혼 생활 19년 차, 

우리 부부 아직 싸울 힘 남아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게 있어.. 싸울 때 싸우더라도

뒷 끝없이 잘 싸우려는 마음은 갖고 있지만

우리 부부는 난관이 있다.


아내는 영어,

나는 한국어가 편하다.


뉴욕에 살다 보니 우리 집의 제1 공용어는 영어이다.

평상시, 소통에 문제 당연히 없다.

문제는 티격태격 싸워야 할 때이다.

화가 나서 쏘아붙여야 하는데 말 더듬 증상이 나타나는 거다.

그렇게 되면 분명 아내에게 화가 나서 시작된 싸움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 이럴 때는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지?

무식하게 쌍욕을 할 수는 없고..




신혼 초, 화가 날 때는 한국어로도 싸워봤다.


"그러니까 말이지..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서로 존중하는 게 부부인데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내 자존심이 상하잖아.. 나 이런 거 모르고 결혼한 거야!

남자들 원래 그래.. 잔 실수들 많고 잘 잊어버리고 그런다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겠어!!"


한참을 생각해가며 설명할 만큼 해보지만 돌아오는 말은


"WHAT? What are you talking about!"


아니 저 긴 대사를 영어로 번역하라고?


싸움에는 기세가 가장 중요한데 기세에 밀렸고 타이밍도 못 맞췄는데

무슨 싸움을?!


여기서 잠깐 아내의 입장을 봐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일 거다.


당연히 아내도 영어로 화를 내야 하니까,

길게 상황 설명해가며 영어로 화를 낸다. 아주 유창한 영어다.

하지만 듣는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다.

아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나는 신공을 발휘할 수 있다.


귀로 들어온 영어가 내 뇌로 전달되는 걸 차단 해 버리면 그만이다.

아내가 잔소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 저런 영어 표현은 영화에서 익히 봐왔지.. 하는 느낌 정도.

뭐 별로 기분도 안 나쁘다.


영어는 아직도 언어로 들리지 않고 소리로 다가온다.

집중을 해야만 의미가 전달된다.

넋 놓고 있어도 들리는 한국말하고는 차원이 틀리다.

지독한 모국어 사랑.


그렇다고 아내가 한국말로 싸울 수도 없다.

아내의 긴 한국말을 듣고 있으면 

싸우려고 작정을 했어도

나는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말이 돼야 안 웃지.


혀 딸븐(짧은) 버러(버터) 발음을 듣고 있는데 어떻게 안 웃습니까?

내 영어 발음에 아내가 웃을 때도 많기는 합니다.


어느덧, 아내와의 생활 19년째

싸움 때문에 영어 공부하는데 지쳤습니다.

그래도 싸움은 해야겠기에

저는 그냥 한국말로

아내는 영어로 싸웁니다.

서로에게 외국어 소리로 밖에 안 들리니 뒤끝은 없는 게 장점입니다.


혹시 궁금하시면 외국어로 부부 싸움해 보세요!

은근히 외국어 공부됩니다.



영어로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의 표현은


Everyone has a skeleton in the closet.

누구나 벽장 안에 해골 정도는 가지고 있다.라고 하네요.

왠지 섬뜩한 게 우리식 표현이 훨씬 낫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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