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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Sep 16. 2021

얼떨결에 유언장 작성

비자금 관리

아주 우연히 유언장을 쓰게 됐다. 


아내 몰래 비자금을 모았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생각 없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맞벌이 부부 뻔한 주머니 사정이라 아내 몰래 돈을 모으는 데는 어떤 스릴이 있었고,

작은 범죄(?)는 자유를 느끼게 해 주었다.


한 5천 불 정도까지 모아 볼까?

그럼 그 돈으로 뭘 하지?

아내에게 깜짝 파티라도? 아니다. 나는 최수종이 아니다.

아이의 학원비? 아니다 한참 뛰어놀 아이를 학원의 딱딱한 의자에만 앉힐 순 없다. 

 

책갈피 사이로 늘어가는 돈을 보며 혼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늘어가는 돈에 즐거워하며 한편으로는 걱정이 생겼다.

감추어 둔 돈이 늘어나며 책이 너무 부풀어 오르는 거였다.

책꽂이의 책을 누군가 실수로 꺼내기만 해도 돈이 떨어질 모양새였다. 

아무리 아내와 아들이 관심 없는 한국어 책이라도 한 집에 살며 책을 건드릴 확률은 있다.


일단은 보관하기 쉽게 작은 단위의 돈을 백 불짜리로 바꿔 보았다.

모은 돈은 이 천 사백 불이었는데, 그 부피도 몰래 감출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유난히 깔끔 떠는 아내의 손 길은 넓고 깊어서 집 안 어느 곳이고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요즘 안 입는 옷에  감 추워 둘까? 그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벼룩시장이나 바자회의 옷걸이에 내 비자금이 걸려 있을 수 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돈을 조금씩 나누어 숨겨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내 기억을 내가 못 믿는데 어떡하랴. 

보나 마나 숨긴 곳을 잊어버려 돈 날리기 십상이다.

알콜성 치매 증상에 나눠 숨기는 것도 포기해버렸다.


책꽂이의 책을 정리할 때였다.

싸구려 이케아 책장의 뒷 면은 얇은 합판이었다.

셔터 칼로도 쉽게 자를 수 있어 보였다.

앗! 이거다.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그래 합판을 조금 잘라내고 그 뒤에 돈을 숨기자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나간 어느 날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생각보다 합판이 질겨 자르는데 애를 먹기는 했지만 작은 톱을 이용해

원하는 만큼 합판을 잘라 낼 수 있었다.

돈을 서류 봉투에 넣고 책장 뒤편에 숨겼다.

완전 범죄(?) 쉽게 돈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작전은 마무리할 수 있었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비자금을 어디다 쓸까?라는 행복한 고민을 했다.


보통 사람이 시간이 많으면 나쁜 생각을 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돈은?

돈의 행방을 아무도 모를 수가 있잖아!

가끔 뉴스에 나오지 않나? 

고인이 감추어 둔, 돈뭉치 천장에서 발견! 혹은 소파 쿠션에서 발견!


생 돈을 날릴 수는 없다.


이번에는 아내 앞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내가 당신 곁에 없을 수도 있다로

시작하는.. 많이 보던 글..

내가 모아 둔 돈이 책장 뒤 어디에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내가 열심히 모은 돈이니 아들과 같이 써 주기를 바란다.. 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글의 분위기가 영락없는 유언장으로 흘러가네..

쓰다 보니 예전에 미안했던 일들..

내가 없어도 용기 잃지 말라는 말 까지 쓰게 됐다.


고질병.. 코 끝마저 찡해지고 목울대로 열이 올랐다.

거의 울 분위기다. 혼자 참 여러 가지 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나에게 별 탈이 없는데,

이 글이 아내에게 발견된다면?

그럼 돈 뺏기고 꼴값한다는 소리까지 듣는 거 아니야?


다시 고민은 시작됐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 이래?


유언장? 비자금? 아내? 아들?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어렵게 감췄던 돈을 다시 꺼냈다.


"그래 결심했어! 내가 이 돈 살아있을 때 아내에게 주고 만다!"


비자금 아무나 만드는 거 아닌가 봅니다.


비자금 들고 스테이크 집으로 고! 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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