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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Nov 19. 2021

바람이 보인다 3화

아들의 얼굴

아들과 식당을 나와 노던 블러바드 쪽으로 차를 몰았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길에 파슨스 블러바드를 둘러볼 생각이다. 

그곳은 일용직을 얻으러 나온 스패니쉬들이 진을 치고 있을 터였다. 


자식을 언제까지고 사다리에 올릴 수는 없다! 

누구라도 붙잡고 일을 맡겨 볼 심산이었다. 

파슨스 블러바드의 싸인이 보이고 좌 회전을 한다. 주유소 앞에 스패니쉬 몇이 보였다.

오후라 몇 사람밖에 없었다. 관상은 볼지 모르니 인상 좋은 사람 만나면 연락처라도

받아 놔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유소 앞에 차를 세운다. 눈치 빠른 두 사람이 내 차 쪽으로 뛰어

온다. 둘은 거의 동시에 차창으로 달라붙다시피 하며 소리를 질렀다.



“ YOU NEED WORKER?, PAINTING, PLUMBING NO PROBLEM! “

"일 손 필요해요? 페인팅. 배관설비, 뭐든 문제없습니다!"


백육십 센티미터 남짓 비슷한 체구의 남자 둘. 야구 모자에 후드가 달린 재킷, 페인트 묻은 청바지. 

뭐가 들어 있을지 궁금한 배낭 가방. 두 사람과 맞부딪치는 순간, 선뜻 뭐라 대답해야 할지 단어가

떠오르질 않았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유 있어 보이는 아들이 나를 보며 턱으로는 앞 쪽을 가리킨다. 

저 쪽에서 걸어오는 또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한 손에 들고 있는 누런 종이봉투 위로 버드와이져의 

로고가 보였다 말았다 한다. 

빼꼼히 보이는 캔 뚜껑은 열려 있었다. 마치 일용직 유니폼이라도 되듯이 옷차림은 내 옆의 두 사람과

같다. 길거리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할 때,

아들이 박력 있게 본토 발음 확실한 영어로 차창의 두 사람에게 말한다.


“ SENOR…. Not today, We are not here for workers! “

" 미스터.. 오늘은 괜찮아요. 우리는 일 손 필요한 게 아닙니다!"


두 사람은 한숨을 쉬며 하나, 둘 내 차에서 손을 떼고 아쉬운 듯 뒷걸음질 친다. 저 쪽에서 느리게 걸어오던

누런 봉투의 사내는 뭐라고 스패니쉬로 고함을 지르고는 뒤 돌아 선다.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펭귄을 닮아 있다. 

고개 돌려 아들을 쳐다봤다. 

아들이 나를 쳐다봤다. 

우리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있는데, 오후에 만나기로 했던 카페 사장의 전화벨이 울린다.


“ 오 사장님 죄송한데요. 늦어도 어제는 나왔어야 할 간판 디자인이 아직도 안 나왔어요, 죄송한데

디자인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셔야겠어요. “ 카페 사장은 요즘 젊은것들은 일이 느려 터졌다며

디자이너 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예, 알겠습니다. 전화 주셔 감사합니다. “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차를 사무실이 있는 칼리지 포인트 쪽으로 돌렸다. 카페가 있는 브루클린으로 가기 전에 전화를

받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사장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낀다.

사무실 앞에 차를 세웠다. 차가 서자마자 뛰어내리듯 가볍게 내리는 아들. 

나는 전화기며, 열쇠 뭉치며, 수첩 등을 챙기며 혹시 잊고 내리는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차 안을 살핀다. 

요즘 번번이 잊고 다니는 물건이 많아져 주위를 세심히 확인한다. 천천히 차에서 내려 아들을 찾으니,

벌써 밴 트럭 위로 올라가 묶여 있던 사다리를 내리려 한다. 반사적으로 또 소리쳤다.


“ 조심해 져스틴! “


“ Don’t Worry 아빠! “ 아빠를 안심시키려는 듯, 엄지 손가락을 내보인다.


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뒤로 해가 보였다. 하루 종일 구름 뒤에 숨어 있던 해가 아들의 뒷모습을

비춘다. 역광 때문에 눈이 부셔 아들의 얼굴을 정확히 볼 수 없다. 웃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나에게 뭐라 말을 하려는 거 같기도 하다.

그때였다. 익숙한 얼굴, 아들의 얼굴에서 내 얼굴이 보였다.

오래전, 내가 아버지께 

“ 제 걱정은 이제 그만 하세요…. 저 잘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던 내 모습이었다.


마침 구름에 살짝 가려진 해 덕분에 아들의 얼굴을 선명히 볼 수 있다. 아들이 큰 눈을 반달로

만들며 미소 짓는다. 어릴 적 나를 올려다보며 웃던 그 얼굴. 

아빠만 알 수 있는 그 표정의 의미. 그래 나는 너의 아빠 란다.



지금 그 웃음처럼 앞으로도 행복 하렴.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할 필요도 없단다.

나는 너의 존재 만으로 행복하련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 아들이어서 고맙다.

아들과 나 사이에 흐르던 어색한 공기가 바람에 날아간다.

한껏 상쾌해진다.

바람이 보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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