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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Nov 17. 2021

바람이 보인다 2화

경계인

기다리던 아들이 사다리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다리는 내려오는 일이 오를 때 보다 힘들다. 

오를 때는 몸의 균형을 생각하며 시선은 위쪽을 향하면 된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더 많은 주의력이 필요하다. 일단 건물 높은 곳에서는 사다리로 첫 발을 내 딛기가 쉽지 않다.

사다리로 몸을 옮길 때는 한 발은 난간을 지탱하고 다른 한 발을 사다리로 이동시키며, 동시에

온몸의 중심을 사다리에 의지 해야 하는데 그 결단이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을 사다리로

옮겼다 해도 시선은 사다리를 마주 보게 돼, 시야는 가려지게 된다. 만약 추락이라도 하게 된다면

착지 지점을 가늠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한 발 한 발 내려올 때 무게 중심을 잃으면 사다리는

넘어지고 사람은 추락하게 된다. 대부분의 낙상 사고는 그렇게 일어 난다. 

사다리 위에서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지상으로 안전하게 착지하는 일이 오르는 일 보다 

훨씬 어렵다.

어깨 좁은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났다.


하늘과 지상의 경계라고 할 수 있는 내 생활 터전 인 사다리 위,

지금 그곳에 내 아들이 매달려 있다.


아들이 땅에 발을 내디디니 안도감 때문인지 코 끝이 찡했다. 아들이 불러 주는 치수를 받아 적고

있는데 어느 틈에 왔는지 신 목수가 옆에 서 있다. 평소 깐죽거리는 말투 때문에 마주치기 싫어

하던 인간인데 사다리에 온통 신경 쓰다 보니 옆에 와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 아이고, 오늘은 아드님과 출동하셨네. 어쩐 일 이래! “


마지못해 “ 져스틴! 아저씨께 인사해야지 “ 말한다.


“ 안녕하십니까? “ 아들이 버터향 풍기는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 야! 져스틴 오랜만인데…. 넌 어떻게 사내자식이 점점 더 이뻐지냐? 시집가도 되겠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나 했을까? 아들은 그냥 미소만 흘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솟았다.


“ 아니 이 늙은이가 늙으려면 곱게 늙지! 귀한 아들한테 시집!, 네 딸내미는 장군감인데 군대

보내. 나라 지키라 하지! “….. 신 목수 너 잠자코 네 할 일이나 해라! “ 라며 고함을 질러 주었다.


아들은 무슨 상황인지 알고나 있는지? 미소 띤 얼굴로 말없이 연장을 챙기고 있다.



삼일 전쯤 일이다. 밤에 이를 닦고 막 침대로 오를 때였다.


“여보, 우리 아들이 게이면 어떡하지? 


"이 여편네가 갑자기 뭔 소리야!"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면 어쩌냐고? “


“ 이 놈의 마누라가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집에서 내쫓아 버리든지 해야지.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헛소리 그만하고 잠이 나 자! “ 

말은 쉽게 했지만 쉽게 잠에 빠져 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아니 웬 화를 그렇게 냅니까?, 지난번 빌려간 돈 이백 불 때문이면 당장 내일이라도 주면 될 거

아닙니까! “ 신 목수가 볼멘소리를 한다.


“ 알았으면 돈이나 갚고 말해! “


잠시 내 생각에 갇혀 돈 이백 불에 화내는 인간이 돼 버렸다. 하지만 저 인간이 내일 이백 불을

갚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밴 트럭에 올랐다. 연장을 챙긴 아들이 뒤

늦게 차에 오른다.


“배 고프지? 우리 뭐 먹으러 갈까? “ 아이 앞에서 소리 지른 게 부끄러워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말을 걸어 본다.


“갈비탕, 아빠! “


“그래, 우리 갈비탕이나 먹으러 가자! “


조금 늦은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식당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둘러앉아 마늘을 까고

있던 세 명의 종업원이 동시에 일어 나 인사를 한다. 요사이 경기가 안 좋긴 한가 보다. 아들아이

먹이려고 좀 비싸더라도 갈비탕 전문점으로 왔는데 손님이 우리밖에 없다. 얼마 전 만해도 이

곳을 지나칠 때는 저 집 손님 많다며 질투 아닌 질투를 하던 곳이었다. 간판도 비싼 아크릴을

이용한 현대적 스타일이었다. 갈비탕 맛 거기서 거기지 뭐가 특별하겠어! 전문점이라고 몇 불

비싸기만 하지라고 생각했고, 처음 와 보는 곳이었다. 갈비탕 두 개를 주문하고 벽에

걸려있는 꺼진 텔레비전을 쳐다본다. 머릿속은 좀 전에 심 목수가 한 말이 맴돈다.


아들이 점점 이뻐진다고! 넋 빠진 늙은이 같으니라고…..

꺼진 텔레비전에 반사된 식당 내부를 흘깃거리다가 아들을 본다. 내 아들이지만 곱상하게 생기

긴 했다. 사내자식이 무척 긴 손가락을 가졌다. 오늘따라 더 왜소해 보이기까지 한다. 누굴 닮은

거야? 숫기 없어 계집아이에게도 맞고 울던 아이. 내 잘난 아들은 금융 회사 잘 다니다가 어떻게

사다리 위에 올라가게 된 거지? 회사에서 잘린 거야? 내 아들이?

아들의 대답이 두려워 차마 묻지 못하는 질문들이 가슴 언저리를 두들겼다.

갈비탕 두 그릇이 우리 앞에 놓일 때까지 심기만 불편해졌다. 젓가락으로 갈비 고기를 건져

아들의 갈비탕 그릇으로 덜어 넣는다.


“I am fine 아빠, You eat them “


“아빠, 이 안 좋잖아….. 오랜만인데 너나 더 먹어 “


심기 불편하게 만들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들이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면? 그건 우정 아니야?..... 아들의 가방이나 소지품을 뒤져 봐야 하는 건가? 

차마 그럴 수는 없지. 아빠의 양심 때문이 아니다. 행여 보게 될지 모를, 어떤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안 돼지만 결말만 상상되는 기묘한 상황. 

내 아들이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면? 꼬리를 물던 생각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어색한 공기가 아들과 나 사이에 흘렀다. 그 어릴 적 아이가 이 아이 인가! 일터로 나가는 나의

양쪽 바지 주머니에 의지 해, 목이 젖혀질 대로 젖혀진 채 내 얼굴을 올려 다 보던 아이.

그네에 앉아 등 떠밀라 재촉하던 아이..

나와 아들 사이에 흐르던 어색한 공기가 경계를 만든다. 경계에 서 있을 때의 불안감. 



삼십여 년의 이민 생활은 줄곧 경계의 삶이었다.

간판장이, 낡은 간판을 떼어 내고 새 간판을 부착하는 일.

하늘과 땅 사이 어딘가를 딛고 하는 일. 눈에 보이는 위험을 당연한 듯, 데면 데면 사는 삶. 

허무의 눈 빛을 하고 있는 옛 간판 주인 그리고 설렘의 눈 빛을 하고 있는 새 간판 주인. 

나는 그 중간 어디쯤, 어설픈 웃음의 주인공이었다. 

나는 경계에 서 있을 때의 불안감을 항상 느껴 왔다. 

소속감을 느껴 보려 학교 동문회도 찾아보고 소상인, 퀸즈, 한인, 코리안 등의 이름을 

내세운 여러 협회도 기웃거려 보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도

경계인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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