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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Nov 17. 2021

바람이 보인다 1화

아들의 등장

낮게만 보이는 하늘 아래..

교통량 많은 찻 길 앞에 서 있거늘 내 귓가까지 차 소음은 닿지 않는다. 목울대가 빠져라 쳐들고

머리 위를 바라보고 있다. 잔뜩 낀 하늘의 먹구름이 내 심정 같다. 불안한 마음을 어쩔 수 없다.

아들이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진흙 속 걸음 마냥 더디게만 느껴진다. 

다 큰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생소했다. 어릴 때 그토록 바라봤던 아들의 뒷모습이 연상됐다.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늘 조바심이 함께 했다.

아들의 팀버랜드 부츠의 밑창이 선명히 보인다. 양쪽 모두 바깥쪽이 닳아있다. 

아비를 닮아 어릴 적부터 뒷 축을 끌며 걷던 아이. 시선을 좀 더 올려보니 청바지의 엉덩이 골이 보인다. 

벨트라도 좀 두꺼운 것을 하고 나올 것이지. 바지마저 불안하다. 하기야 예전부터 제 모양새 챙기는 데는 무던한

아이였으니 무엇을 기대하겠냐마는..

사다리를 붙잡고 있는 내 손에 힘이 더 해진다. 땅과 맞닿아 있는 사다리 끝 부분에 고정한 발에는 

긴장을 더 한다. 사다리를 오르거나 내릴 때는 두 팔, 두 다리 네 개 중, 세 개가 사다리에 놓여야 한다. 

한 발을 들어 올렸다면 두 손이 사다리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의 균형이 틀어지고, 사다리에 가해진 하중의 중심이 무너지며 추락하게 된다. 낙상 사고는 너무도 흔한 우리네 사고였다.

나는 추락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버티었다.


삼 층높이의 사다리를 뒤뚱거리며 올라가는 자식 놈 뒷모습을 바라보게 될지는 몰랐다.

지난 주였다. 워싱턴 디씨에서 직장 생활 잘하고 있을 녀석이 난데없이 집으로 왔다. 

지 어미, 지 아비 놀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배 고프다는 게 첫마디였다. 

문을 열어 주었던 마누라도,

신문 읽다가 벌떡 일어난 나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문 앞을 막고 서 있던 마누라를

피해 들어가는 아이를 시선으로 쫓은 뒤에야 소리를 질렀다.


“아, 뭐해! 애 배 고프다는데!”


언제나 자랑스러운 자식이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아침 8시에 집을 나섰다. 오후 6시에

끝나는 연장 프로그램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늦은 길에도 밝게 웃으며 저의 하루를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아이였다. 뒷 좌석에 앉아 아빠가 제 이야기를 듣는지 마는지 아랑곳 않고 점심은 뭘 먹었는지,

낮잠 시간에 잠을 안 잔 아이의 얘기, 알아듣게 된 스패니쉬 단어 등을 늘어놓았다. 

차 안에서 아빠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미리 준비해 놓은 것처럼, 쉴 새 없이 숨 쉬듯이 말을 하던

아이였다. 공부도 잘했다. 중학교 내내 아너스 클래스에 있었고, 고등학교는 뉴욕 최고라는

스타이븐슨 졸업에 보스턴 칼리지를 나왔다. 

아이비리그의 학교에 합격을 하고도 장학금 주는 학교를 선택 한 아이였다.

부모 생각도 남다르기만 했다.

졸업 후에는 두 달 만에 금융 회사에 취직을 했고 직장 생활 잘한다던 아이였다. 

나에게 삼 층높이의 사다리를 기쁘게 오르게 해 줬고, 남들 내 앞에서 자식 자랑 못하게 해 주던 아들이었다. 

업어 키워도 시원치 않을 자식이 아니라 내가 업어 키운 외동아들이다. 

지금 사다리 끝에 올라 간판 크기를 재고 있는 그 아이를 보고 있자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화딱지가 나면서도….. 내 입에서는 연신 “ BE CAREFUL!, “WATCH OUT!” 소리가 터져 나온다.

진작 내가 올라가려 했거늘 부득이 제가 올라가겠다고 해서 올려 보냈는데 밑에서 마음 졸일

바에야 내가 올라가는 게 맞았다.

뒤늦게 후회한들 뭐 하랴 마는 이 모습을 마누라가 봤다면 나에게 뭐라고 했을까? 

늙어 노망 났냐는 말을 했을게 뻔하다.



십여 년 전까지는 간판업 경기가 좋았다. 물론 경기가 나만 좋았던 건 아니었다. 노던 블러바드의

유니온 스트릿을 경계로 동쪽의 상가는 모두 한인 상권이었고, 새로운 업소들이 경쟁 하 듯

들어섰다. 하지만 그 호황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중국인 가게로 바뀌고 있었다. 

불안히 경계인으로 살며 경계를 만들던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경제 논리에 의해 경계 밖으로 밀려났다. 

그때는 나에게도 매니저에 스패니쉬 직원이 네 명이나 있었는데 장사가 안되다 보니 저들이 알아서 그만둬

주었다. 그동안의 정 때문에 떠나 준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끝나지 않을 거 같던 노도의 시간도 지나고 자식 하나 있는 거 잘 살고, 마누라와 나는 크게 돈 들어

갈 곳도 없고 해서, 지금은 알음알음 들어오는 일로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다. 

가끔 자식 놈이 손주나 안겨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 말고는 큰 바람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제 발로 일거리 찾아온 호세도 있었다. 초짜라 교육을 시켜야 했지만 호세와

소화하기에 무리 없는 양의 일이 들어왔고 별문제 없이 일들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착실하던 호세가 이 주일 전부터 소식도 없이 안 나왔다. 일 좀 시킬만하니 다른 업소에서 채

갔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세의 전화기는 꺼져 있고 달리 연락할 길도 없었다. 

급한 마음에 가끔 내려다 주던 코로나까지 가서 찾아보았지만 찾을 길은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나쁜 일이라도 생긴 거라면? 

호세를 걱정하던 마음은 오 분만에 집어치우고, 당장 김밥집 간판은 어떡해!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틀 전, 개업이 코앞이라 간판 달아야 하는데 아직도 예전 간판 달려 있다는 김밥집 사장이 전화를 걸어

왔다. 성화가 귀찮았지만 마무리 지어야 할 내 일이었다. 

고민 끝에 스패니쉬 일용직을 구해 일 마무리를 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파슨스 블러바드에 들려야 하나? 코로나 쪽으로 가볼까? 옷매무새 깨끗한 사람을 하나 골라야겠다.. 

일용직 구할 생각으로 머리는 복잡하고

대충 일 나갈 채비를 하며 방을 나서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들이 따라나선다.


“ 뭐하러 나와! ” “ 넌 네 할 일이나 해! “


“ I Can help you 아빠! “


곁 눈길로 마누라를 보니 아침 토스트를 해 놨다고 가져가란다. 아들이 받아 든다.

마누라가 토스트 봉지를 건네며, 

“ 제 깐에 아빠 도와주겠다고 일찍부터 준비했나 봐, 데리고 가 봐! 말려도 소용없었어. “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오늘 할 일은 뻔한데, 아들 얼굴 힐끔 보고, 마누라 얼굴 힐끔

본다. 결정을 피하기 위해 결정을 안 한다.


“ See you later 엄마! “


“ 그래, 잘 다녀와 아들! 토스트는 식기 전에 차 안에서 먹고! “


아들이 싱긋 웃으며 뒤를 따른다. 사내자식이 웃음이 헤프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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