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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Jan 21. 2022

20년의 거짓말

미안하다, 사랑한다

본의 아니게 20여 년째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가 25살 적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무것도 없고 꿈만 있던 시절이었다.

그 꿈을 여자 친구와 나눴다.

꿈을 이루려는 노력? 행동?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막연히 꿈은 이루어진다! 를 외쳤다.

복권을 사지도 않고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경우랄까?


말은 잘도 했다.

말대로 됐다면 영화학교 졸업 후, 영화를 최소 10편은 찍었고,

한국인 최초의 아카데미 상은 내 몫이었을 거다.

"죄송합니다. 봉준호 감독님."


꿈이 있어 좋았던 시절이다.

꿈을 들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 행복한 시절이었다.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때, 제일 멋져 보인다고..

이야기해줬던 사람이 옆에 있었다.

모든 게 20여 년 전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영화를 찍기 위해 구입한 카메라로

남의 결혼식을 숱하게 찍었고,

한국 방송국의 하청 일을 밤낮으로 했다. 시차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마케팅 회사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순간은 열심히 산 거 같은데 결과는?

잘 모르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진다.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에게 묻는다.

그들은 나보다 더 모른다.

아직 결과를 논할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20여 년, 장편 영화 찍기를

기다려 온 아내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묻는다.

"글쎄..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끝나고..

그걸 팔아서 일단 선물 하나 사줄게..

남는 돈으로,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포기하고 오는, 이민 2회 차 사람들을

주제로 다큐를 찍어볼게.."


꿈을 들어주던 여자 친구는 간데없고

20여 년 간 속아 온 아내가 옆에 있다.


아내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지시를 한다.

닥치고 건조기에서 빨래 꺼내고

책장의 먼지 청소나 하란다.

이걸 다 말없이 해낸다.


꿈을 나누던 그 여자가 아내가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같은 거짓말을 20여 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지,

아침에 일어 나 가슴 뛰는 일을 해보라고..

몇 마디 덧붙이자면, 

끼니 걱정이 없다면 가슴 뛰는 일이라는 거 해볼 만할 거다..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데 무슨 얼어 죽을 영화? 꿈?

노력? 

될 놈만 되게 돼 있습니다.


아내가 못 들을 정도의 목소리로 변명을 해본다.

뭐 아무것도 아니면 어때!

영화건, 소설이건, 복권이건 인생 어차피 한 방 아니냐고!

다큐를 돈으로 찍나? 열정으로 찍지!


만일을 대비해 다른 대책을 준비해야겠습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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