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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댁 Sep 27. 2024

엄마의 꿈이 내 꿈은 아니잖아

"수미야, 연습 안 하나?"

"응, 해."

"소리가 안 들리는데."

"책 읽는 중!"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기가 막히게도 바이올린 연습을 피하려는 전략적 꼼수로부터 비롯되었다. 엄마는 유일하게 내가 책을 읽을 때만 바이올린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타박하지 않았다. 게다가 바이올린은 목을 비틀고 두 팔을 든 채로 해야만 하니 연습을 하는 것 자체가 어린 내게 너무나 고단했던 반면 책은 편히 누워서 눈알만 슥슥 굴리면 되니, 책은 나에게 안식처이자 탈출구였다.




엄마는 피아노를 쳐보는 게 본인의 꿈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음악실에 몰래 들어가 음악 선생님 몰래 피아노를 만지다 혼이 난적도 있다고 했다. 피아노를 집에 가지고 있는 친구는 동네에 있던 아주 부잣집 딸 한 명이었는데 엄마는 그 아이가 너무 부러웠다고 한다. 그렇게 못 이뤘던 엄마의 꿈. 그런데 이제는 본인이 딸에게 음악을 시킬 능력이 있다. 게다가 딸이 재능이 있다고라? 엄마는 내가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듣고선 무려 여덟살밖에 되지 않았던 나를 전공자 클래스에 넣어버렸다.


나는 그렇게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 위한 수순을 밟아갔다.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혼자 비행기를 타고 울산에서 서울로 레슨을 받으러 가기도 했고, 하교 후에는 동네에서 입소문 난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으러 가기 바빴다. 그렇게 멋모르고 그저 바이올린 레슨을 다니고 하루 세시간은 꼭 지켜 연습을 하던 나였지만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자는 열망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나에게 조수미 자서전을 건네주었다.



표지가 저세상 시대구만



엄마가 사준 조수미 자서전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건 단 하나, 그녀는 당시 그녀가 키우던 말티즈 강아지를 퍼스트 클래스에 태워서 공연을 다닌다는 것. 세상을 누비는 프리마돈나이기에 공연을 하러 전 세계를 누비는 것 또한 나에게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왔다. 나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면 강아지와 같이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건가? 그렇게 나는 강아지와 함께 퍼스트 클래스를 타는 걸 상상하며 처음으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엄마 아빠 위로 음악적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기보다는 레슨 선생님이 설명하는 걸 찰떡같이 잘 알아듣고 반영할 수 있는 은사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을 무지 잘 알아 들었다



그런 날보며 선생님들은 재능있다 말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매주 연습을 안 해가는 것도 정도가 있다. 선생님들은 딱 보면 딱 안다. 지난주 레슨 이후로 얘가 연습을 해왔는지 안 해왔는지. 나는 그야말로 재능만 믿고 나대는 날라리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레슨 때 연습하지 말고 집에 가서 연습을 해오라고 했고, 나는 앞에서는 네네 거리며 대답은 쌜쭉거리며 잘해놓고 꼭 집에 가선 책을 읽고 놀았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답답했던 엄마는 연습하라며 잔소리를 했다. 이제는 엄마 마음이 이해 간다. 연습만 하면 잘될 건데 안 하는 딸내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음악을 하면 할수록, 나는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클래식을 듣는 것보다 힙합 음악을 듣는 게 더 좋았고 영어를 공부하는 게 더 행복했다. 게다가 자꾸 감정을 넣어서 음악을 하라는데... 어린 아이가 뭘 알겠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했던 건 나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바이올린뿐이라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해온 바이올린은 내가 싫어한다한들 내 삶이었고 나의 전부였으며 아이덴티티였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사춘기가 오고 불거졌다. 엄마가 연습을 하라고 말하면 와다다다 말대꾸. 또 참다못한 엄마가 뭐라 뭐라 잔소리하면 또 와다다다 말대꾸. 나는 툭하면 엄마 말꼬리를 잡고 논리적으로 말대꾸를 하기 일쑤였는데 잔소리를 참다못한 어느 날 나는 엄마에게 외쳤다.


"아니, 엄마가 피아노 하고 싶었으면 엄마가 하지 왜 나를 바이올린 시켰어! 엄마 꿈은 엄마가 이뤘어야지!"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왜 그런 말을 해서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을까. 결국엔 바이올린을 시켜달라고 처음 입을 떼었던 건 나고, 엄마는 다 내가 원하는 걸 해줬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주는 페르소나로 살고있다고 나 자신을 여겼다. 그때 말을 잘 듣고 연습을 잘했다면 나는 제 2의 조수미가 되어있었을까?


아무튼 엄마는 그렇게 외치는 나를 노려보곤 방문을 닫고 나갔다. 엄마가 상처받은지도 모른 채, 방문이 닫힌 내 방 안에서 나는 다짐했다. 나의 꿈은 더 이상 조수미가 아니야. 조수미처럼, 아니 누구처럼 사는 인생이 아닌, 유수미로 사는 인생을 찾아갈 테야. 그렇게 나는 평생을 바쳐 바이올리니스트로 나를 키우고자 했던 엄마의 노력을 뒤로한 채 발칙한 꿈을 꾸었다.


나는 피디가 될테야.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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