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의 필요성부터 미래까지
국내에 완화의료를 필요로 하는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의 수는 약 13만 명, 인공호흡기 등 의료 기계에 의존한 채 생활해야 해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환아는 3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적절한 돌봄 서비스를 찾을 수 없어 간병과 돌봄은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년 3월에 서울시 종로구 원남동에 국내 최초의 독립형 어린이 단기 돌봄 의료 시설인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가 오픈할 예정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 16 병상 규모로 지어지며 기계 의존 어린이 환자를 위한 종합 의료 및 단기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1회 입원 시 최대 6박 7일, 연간 14일까지 입원 및 돌봄이 가능하고 의료시설 외에도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마련될 예정이다. 어린이통합케어센터를 통해 365일 24시간 이어지는 돌봄에 지친 가족들이 온전한 쉼의 시간을 갖고, 어린이 환자와 가족 모두가 더 힘차게 앞으로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민선 교수를 만나다.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의 시작에는 서울대학교병원 김민선 교수가 있다. 3년 전 김민선 교수는 넥슨재단에 먼저 문을 두드리고, 단기 돌봄 의료 시설의 필요성을 알렸다. 넥슨은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어린이통합케어센터' 건립 비용 100억 원 기부를 약정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3월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건립 기공식이 열리며 센터 건립의 첫 삽을 떴다.
김민선 교수를 만나 ‘소아완화의료’가 어떤 것인지, ‘단기 돌봄 의료 시설'이 왜 필요한지,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는 어떤 모습이 될 지에 대해 듣고, 중증 질환을 가진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 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병원 소아청소년과에 있고요. 완화의료와 재택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교수 김민선입니다.
언제부터 ‘완화 의료’ 관련 일을 하신 거예요?
비공식적으로는 2014년부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제 업무 시간 외에 따로 시간을 내서 완화 의료 일을 했고요, 정식으로 발령을 받은 건 2018년이에요. 사실 정식 발령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했었어요. 의사가 이런 일에 취직이 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래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비공식적으로 완화의료 일을 하는 동안 어떻게든 의사가 없이 프로그램이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국내에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의 완화의료 프로그램 ‘꿈틀꽃씨’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더 있나요?
2018년 제가 정식 발령을 받은 해에 정부가 지원하는 소아청소년 완화의료 시범 사업이 시작되었어요. 지금은 10개 기관에서 완화의료를 하고 있어요. 다행이죠.
2018년도 늦긴 했지만 정말 다행이네요.
우리나라가 뭘 하면 또 빨리 하잖아요. (웃음)
의사가 포함된 완화 의료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진 게 고작 4년 전인데, 이제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까지 생기는 거네요!
그렇죠. 진짜 말도 되는 일이에요.
어린이 환자와 가족들이 살아가는 삶이 조금 더 풍요롭고 조금 덜 힘들게 돕는 것이 소아 완화 의료예요.
‘소아 완화 의료’란 무엇인가요?
매번 설명하기가 참 쉽지 않은데요. 의학이 되게 많이 발전하기는 했지만 제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이 여전히 존재해요. 그 어린이들의 삶이 사실 엄청 고되거든요. 환자만 힘든 게 아니고 가족들도 굉장히 고되죠. 어린이 환자와 가족들이 살아가는 삶이 조금 더 풍요롭고 조금 덜 힘들게 돕는 것이 소아 완화 의료예요. 치료 과정에서 생기는 통증 조절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일들을 함께 해요. 치료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드리기도 하고, 또 드물게 임종하게 되는 친구들이 생기면 그 과정을 도와드려야 되기도 하고요.
소아 완화 의료가 성인 완화 의료와는 어떻게 다른 지 궁금해요.
‘소아 완화 의료'가 조금 더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물론 WHO 정의에 의하면 성인 완화 의료도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다.”라고 되어있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성인 완화 의료는 말기 환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인식이 더 높은 편이에요.
소아의 경우에는 어느 나라나 다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삶의 질을 더 향상시킬 건가, 치료 과정에서 맞닥뜨릴 많은 선택을 잘하게 도울 건가에 대해 고민하죠. 그리고 어린이 환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다 포함한 개념이에요. 그건 어린이라는 인간이 갖는 특성 때문인 것 같아요. 어린이는 가족 내에서 존재하는 사람이니까요.
어린이라는 인간이 갖는 특성 때문인 것 같아요. 어린이는 가족 내에서 존재하는 사람이니까요.
선택을 도와주는 것 정말 필요한 역할 같아요.
각각의 가족과 아이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의료진이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도 전달이 잘 안 되거든요. 그래서 의료진의 설명을 가족들에게 전달하고, 반대로 가족들이 생각하는 것들을 저희가 의료진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해요. 매개체가 되어 드리는 거죠.
환자 가족 환경이며 형제자매 관계부터 다 알고 계셔야 되겠네요.
네. 약간 지인 같은 관계예요. 의사 지인 같은 느낌으로 만나게 되고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를 위해 선 조절을 해야 되는 거니까요.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를 하면서 모든 상황들을 함께 겪는, 특별한 관계인 것 같아요.
지금 해주시는 이야기들이 사실 아직 되게 생소해요.
의사가 되게 도제식이잖아요. 누가 하는 걸 보고 배우는 건데, 저희는 처음이니까, 사실 책으로 배운 거잖아요. 미국이나 호주에 가서 보고 배우긴 했지만, 그 문화 안에서 이루어지는 걸 본 거니까, 우리나라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처음엔 너무 어려웠어요, 초반에는 완화의료 안에서 내 역할이 대체 뭔지 굉장히 의문스러웠던 것 같아요.
이제는 전국에서 시범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많은 분들이 ‘꿈틀꽃씨'에 와서 배우겠네요.
내일도 신규로 들어오는 기관 교육이 있는데 전수해줘야 할 일이 정말 많아요. 처음에 프로그램을 어떻게 세팅하는지,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진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완화 의료’에 대해 ‘죽는 거냐?’ 하는 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계신 부모님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하는지까지 알려드려야 해요.
너무 어려운 일이네요.
아니에요. 보람 있는 일이죠.
환자와 거리 조절은 어떻게 하세요?
처음엔 아이의 임종을 보고, 같이 울고, 그러고 와서 바로 밥을 먹고 다른 일을 하는 게 되게 어색했어요. 저희 팀 멤버도 다들 되게 어려워했는데, 이제는 ‘우리는 여러 가족들을 돌봐야 하는 사람이다’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려고 해요. 그렇게 거리를 좁혔다 넓혔다 하는 것들을 배워가는 것 같아요.
‘무인도에 떨어진 것 같다’. ‘세상이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땅이 없어진 것 같다.’라는 표현들을 많이 하세요.
어느 방송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치료와는 좀 떨어져 있는 거 챙기는 의사. 혼자 덜 처참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드리는 거. 죽을 때까지 삶을 살게 하는 것” 이 말씀이 인상 깊어서 제가 받아 적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해 주세요.
제가 ‘소아완화의료’를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소아완화의료와 함께 하면 중한 질병이 있어도 잘 지낼 수 있다? 이건 아닌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만약에 아이가 임종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 ‘소아완화의료’로 인해 그 슬픔이 경감되는 것 같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고 무엇으로도 줄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다만 그 슬픔의 과정이 너무 외롭지 않게 하는 거. 제가 하는 일은 그거 같아요.
‘무인도에 떨어진 것 같다’. ‘세상이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땅이 없어진 것 같다.’라는 표현들을 많이 하세요. 그럴 때 누군가 이 상황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아무리 친한 지인이더라도 내 얘기를 계속 털어놓기는 어려우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가까운 지인에겐 더 못하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같이 있어줄 수 있는 사람. 그 과정을 잘 알고 있어서 안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 그 정도의 역할 같다고 저는 생각해요. 한 외국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보호자가 “완화의료는 따뜻한 블랭킷 같다.”는 표현을 하셨어요. 저는 그 말이 되게 맞다고 생각해요. 사실 담요 별 거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있으면 좀 낫죠. 따뜻하죠. 저희가 중증 어린이 환자나 보호자를 위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이 힘들고 고된 과정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지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말씀 이렇게 하시지만 사실은 정말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질병으로 사망하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마지막에 심폐소생술을 했었어요. 할 수 있는 연명의료는 다 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경우가 온다면 어떻게 하는 게 아이에게 가장 좋을지 미리 부모님이랑 상의를 하고요. 마지막에 충분히 안아주고 함께 하면서 보내주게 되니까 트라우마가 훨씬 덜한 것 같아요.
제가 레지던트 때 아이를 보냈던 보호자가 응급실에 오신 적이 있었어요.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애가 피투성이가 돼서 임종했던 게 계속 떠올라서 죽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게 제 기억에 오래 남아있어요. 그래서 저는 마지막 순간을 잘 보내주게 하는 거에 집중을 하는 편이에요.
공간이 부족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진짜 좀 해피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거엔 큰 제약이 있죠. 그게 좀 아쉬운 부분이긴 해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완화 의료의 현실은 어때요?
일단은 의료 환경이 너무 달라요. 대부분의 OECD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의 어린이 병원은 다 1인실이에요. 그래서 각각 어린이들에게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는 게 가능해요. 예를 들면 병실에 들어가서 아로마 치료나 음악 치료를 편하게 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인실이 대부분이라 한쪽에서는 아로마 치료를 하고 있는데 옆 환자는 토하고, 음악 치료하려는데 옆에 환자는 자고 있어요. 미국이나 호주의 동작 치료사님들은 방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프로그램을 하는데, 여기서는 커튼 치고 좁은 데 애처롭게 들어가셔서 하세요. 물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하시지만, 공간이 부족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진짜 좀 해피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거엔 큰 제약이 있죠. 그게 좀 아쉬운 부분이긴 해요.
이런 공간적인 부분 말고는 사실 부모님이나 아이들의 마음은 동서양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힘들지 않게 보내주고 싶고, 함께하는 시간을 잘 보내고 싶고 이런 것들에 대한 마음들은 거의 같아요. 특히 요즘 젊은 부모님들은 치료 과정에서 힘들지 않게 지내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시고 또 어쩔 수 없이 보내줘야 하는 상황일 때도 어떻게 하면 아이가 편안할까에 대해 먼저 말씀하시기도 하세요. 아이들과 그런 주제의 대화를 어떻게 시도할지도 물어보시고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가 그런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 먼저 넥슨재단에 노크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단기 돌봄 의료 시설' 건립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사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10년, 15년 후 제가 은퇴한 후에는 이런 센터가 생기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이렇게 근시일에 생길 수 있으리란 건 상상도 못 했어요.
2019년에 어느 기자분과 함께 어린이 환자가 있는 집에 재택 의료 관련 취재를 간 적이 있어요. 그때 그 기자님이 현실을 접하시고 너무 충격을 받으셨던 거예요. 취재 끝나고 연락이 오셔서는 후원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때 저는 지금 하고 있는 꿈틀꽃씨 후원받기도 어려운데, 통합케어센터 건립 후원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기자님이 ‘넥슨’과 연결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처음 넥슨을 만나서 설명을 드렸죠. 사실 후원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안 했어요. 상황 설명만 하고 오자 생각했는데, 넥슨 측에서 너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우리가 기부를 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답을 주셔서 진짜 놀랐어요. 아직 센터가 열리기 전이지만, 저는 여기까지 일이 진행된 게 되게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는 구체적으로 어떤 곳이 될까요?
24시간 동안 의료적인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일시적으로 돌봐주는 곳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돌봄 장소인데, 돌봄 대상이 의료적으로 굉장히 중증도가 높은 어린이 환자들인 거죠. 저희가 아이들을 정성스럽게 잘 돌봐주고 놀아주고 하는 동안 나머지 가족들은 좀 쉴 수 있도록 하는 거고요. 한 번에 7일 정도까지 입원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기간 동안 가족들이 여행을 가든 쉬든 하실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하고 있어요.
3,4층이 그렇게 병실이고요. 16 병상이 준비될 예정이에요. 간호사님들이랑 의사 선생님이 같이 이제 메인으로 아이들을 보실 거고 2층에는 프로그램실 같은 것들을 마련하고, 입원한 아이들이나 그 형제자매들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함께 할 수 있게 하려고 하고 있어요.
쉬는 시간은 가족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아이한테도 되게 중요해요.
가족들의 쉼이 왜 중요할까요?
쉬는 시간은 가족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아이한테도 되게 중요해요. 우리가 간호사님들 업무가 과하다고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되게 과중하죠. 하지만 그분들은 오프(쉬는 날)가 있거든요. 근데 아이를 돌보는 가족들은 오프가 없는 거예요. 365일 24시간 모니터링과 관리를 계속해줘야 해요. 쉬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를 제대로 돌본다는 게 되게 어렵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것도 사실은 에너지가 있어야 해요. 쉬지 못하면 그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어요.
사실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만으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요. 집으로 방문하는 돌봄 서비스 (respite care service)가 점점 더 많아져야 해요.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소아재택의료'도 잠깐 방문해서 봐주는 정도예요. 외국에는 집에 가서 8시간 이상 있어주는 간호사 제도 같은 게 있어요. 보호자가 밤에라도 마음 편하게 잘 수 있게 옆에서 아이를 봐주는 사람도 있고요. 아직 한국은 전무하죠. 그걸 위해서는 우선 센터가 존재해야 할 거고, 이곳을 거점으로 해서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시작이라고 보고 있어요.
소아 완화의료는 전국 10개 기관에서 하게 되어서 한두 곳 정도 더 추가되면 권역 별로 어느 정도 이루어질 것 같아요. 하지만 재택의료는 아직 서울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지방의 재택의료가 사실 되게 필요해요. 아이를 맡기러 서울까지 올라온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이동하는 동안 컨디션이 나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지역마다 이런 센터가 생기고, 그것을 토대로 재택 의료가 이루어지면 가족들의 삶이 그래도 조금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에 어린이 환자의 형제자매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만드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질환을 가지고 있는 형제자매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안 좋은 건 아니에요. 문제 해결 능력이 더 좋기도 하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점도 많이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특별한 상태로 지내게 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는 조금은 ‘박탈되는 특별함’이었다면, 그 아이들이 ‘새로운 특별함’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프로그램실에서 가족들이 함께하는 이벤트를 해도 좋겠고요. 다양한 고민 중이에요. 사실 아주 큰 게 아니더라도, 센터에 올 때마다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었으면 해요.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가 어떤 곳이 되면 좋을까요?
호주, 일본, 캐나다 등의 ‘리스파이트 케어 센터’에 갈 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늑하다는 거예요. 굉장히 편안하고 맞아주는 느낌이고요. 그런 느낌을 가족들이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에게 질환이 있는 아이를 맡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거든요. 여기는 우리 홈그라운드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에 오는 시간 자체가 즐거웠으면 해요.
내년 3월 오픈 예정이지요. 건립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의료기관으로 인증을 받아야 돼서 아무래도 구조에 제약이 많아요. 인증 기준을 고려하면서 저희가 원하는 공간을 설계하느라 조금 힘들었는데, 잘 진행되었고요. 이제 남은 제일 중요한 과제는 운영비를 마련하는 것이에요.
돈이 많이 드는 시설이에요. 간호사들이 아이들을 안전하게 케어하려면 한꺼번에 너무 많은 아이들을 보면 안 되거든요. 한 명의 간호사가 4명의 아이들을 보는 걸로 지금 계획하고 있어요. 의사도 더 뽑으려고 하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적자가 많이 날 것 같아서 운영비를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하는 게 사실 지금 제일 큰 고민이에요.
작은 후원 하나하나가 이 아이들이 아이들의 존재 자체로 중요하다. 의미가 있다. 이 아이들이 잘 지내도록 돕는 것이 옳다. 고 말해주는 목소리로 들려요.
마지막으로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궁금했던 질문을 드릴게요. 주변 사람들한테 24시간 기계에 의존하는 아이들과 그 가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 다들 놀라면서 현실을 개선하고 싶다, 돕고 싶다, 내가 뭘 할 수 있냐, 하는 이야기를 해요. 그런 마음을 가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음, 사실 후원이 제일 도움이 많이 돼요. 1만 원, 2만 원 후원하시는 후원자들이 꽤 많아요. 돈도 돈인데 엄청 응원이 돼요. 이런 센터가 필요하다고 동의해주시는 어떤 목소리인 거죠. 작은 후원 하나하나가 이 아이들의 존재 자체로 중요하다. 의미가 있다. 이 아이들이 잘 지내도록 돕는 것이 옳다. 고 말해주는 목소리로 들려요. 그런 지지의 목소리가 저희에게도 어린이 환자나 가족들에게도 힘이 되죠.
그리고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완화센터’가 오픈하면 자원봉사자들이 정말 많이 필요해요. 아이들 자세도 계속 바꿔줘야 하고요. 엄마 아빠 없이 지내는 거니까 즐겁게 놀아주는 역할도 해야 해요. 내년 3월에 오픈할 때쯤 자원봉사자 모집을 할 예정이고 거기에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 (도토리하우스) 지정 후원하기
우리가 대화를 나눈 곳은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지하 1층에 위치한 ‘꿈틀꽃씨 쉼터'였다. ‘꿈틀꽃씨’는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완화의료 프로그램의 이름. 꿈을 담은 꽃씨가 꿈틀꿈틀 움트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름 지어졌다. 완화의료 프로그램이 ‘꿈틀꽃씨'처럼 귀엽고 친근한 이름이 붙여진 이유에 대해 물어보니 어린이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기 위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덕분에 어린이들은 병원에 가며 “꿈틀 가자” 혹은 “꽃씨 가자"라고 말한다. 센터의 선생님들을 부를 때도 “꿈틀 선생님" “꽃씨 선생님"이라고 부른단다.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는 더 커진 꿈틀꽃씨가 될 예정이다. 꿈틀꽃씨가 품은 뜻과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꿈을 담은 꽃씨가 꿈틀꿈틀 움이 터 커다랗고 싱그러운 꽃나무가 되는 모습을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통합케어센터’에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전국 곳곳에 그 꽃나무가 가득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