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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선의 Sep 05. 2024

순자의 꿈

순자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순자는 1958년 가을, 전라도에서도 과일이 맛있기로 유명한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순자네 집엔 일꾼이 너덧 명이나 있었다. 그렇다. 60년 전만 해도 지방엔 일꾼 제도라는 게 있었다. 좋게 말하면 가사도우미 겸 정원관리사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그 집의 종이나 다름없었다. 그에게 월급을 주면서 먹여주고 재워줄 능력이 있는 집에서만 고용할 수 있었기에 집에 일꾼이 있다는 건 그 집안이 방귀깨나 뀌는 집안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큰 과수원을 운영하던 순자의 집에는 늘 일꾼이 상주했고, 순자는 그 집의 고명딸이었기에 귀한 대접만 받으며 자랐다. 


  교육열 높고 목소리 큰 아버지와 치맛바람 센 어머니 덕분에 순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도시로 유학을 갈 수 있었다. 바다 건너 미국도 영국도 일본도 아니었다. 깡시골에서 차로 세 시간쯤 떨어진 광역시로 진출한 것이다. 1960년대에는 딸이라면 국민학교(초등학교) 혹은 중학교까지만 보내는 집이 적지 않았기에 순자는 배움을 찾아 도시로 떠난 ‘유학파’라는 점이 퍽 자랑스러웠다. 그 중에서도 꽤나 명문이던 ㅈ여고를 나온 순자는 그 동네에서 알아주는 ‘인텔리’였다. ㅈ여고를 졸업했다는 사실은 순자에게 오래도록, 아니 어쩌면 평생의 자랑거리였다. 순자는 교육청에 취직했다. 첫 업무는 사무보조였다. 순자는 이름을 잃고 ‘미쓰 리’, 때로는 ‘이 양’으로 불렸다. 당시 ‘미쓰 리’는 현재의 ‘미쓰 리’와는 어감이 완전히 달랐기에, 순자는 그렇게 불리는 자리에서 일한다는 게 자못 만족스러웠다. 교육청장실에 손님이 오면 커피·설탕·프림을 ‘둘둘둘’ 비율로 타서 찻잔에 곱게 내는 일도 순자에겐 기쁨이었다.


  스물넷 순자에게 선자리가 들어왔다. 콧대 높은 순자는 자기 좋다고 따라다니는 옆 부서 ‘미스터 박’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박씨 얼굴이 꽤나 반반하긴 했지만, 비슷한 처지의 직원과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나는 있는 집 자식이나 안정적인 직장인과 결혼할 것이다.’ 순자는 이렇게 속으로 셈을 잘하는 자신이 내심 기특했다. 당시 결혼이란 사랑에 풍덩 빠진 이들을 제외하곤 부모님이 골라주는 사람과 고작 두어 번 만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순자는 오직 조건, 조건만 보았다. 가지치기 끝에 남은 선택지는 둘이었다. 한국전력 직원과 구청 공무원. 꽃다운 순자는 육남매의 장남인 공무원과 결혼했다. 그가 한전 직원보다 월급이 조금 더 많았고 그의 집에 땅이 좀 있었으며 서울에 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순자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순자의 꿈은 나름 소박했다. 여유로운 집에 시집 가 여우같은 남편, 토끼같은 자식들과 어릴 적 살던 것처럼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것. 그러나 연고 하나 없는 서울에 올라와 시부모님 댁에 얹혀살기 시작하면서 꿈은 와장창 깨졌다. 시집살이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너희 집에선 이런 것도 안 가르치더냐” “시집올 때 혼수로 해온 게 이게 다냐”는 말을 안 듣고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곱게 자란 순자가 견디기엔 가혹했다. 그러나 과연 전쟁 통에도 꽃은 피는가. 힘겨운 시집살이 중에도 순자에게 아기가 찾아왔다. 임신한 순자, 하루는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 시어머니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돌아오는 건 핀잔뿐이었다. “이 집에 누구 고기 안 먹고 싶은 사람 있냐. 고기 살 돈 있으면 좀 가져와봐라.” 순자의 서러운 고기타령을 들은 남편이 퇴근길에 어머니 몰래 통조림햄 하나를 사왔다. (고기 살 돈은 정말이지 없었던 모양이다.) 순자는 귀하디귀한 통조림햄을 행여나 도깨비 같은 시어머니가 볼까 창틀 바깥에 내놓고 며칠에 걸쳐 조금씩 수저로 퍼먹었다. (순자는 이 일을 칠순이 가까워질 때까지 잊지 않고 명절마다 이야기할 것이다.) 


  시집살이가 원통하고 분하던 순자가 하루는 멀고 먼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 동전 몇 닢을 조용히 모아두었다가 시어머니가 낮잠을 자는 사이, 집에서 안 보이는 골목의 공중전화로 달음질했다. 꿈에서도 달달 외던 친정 전화번호를 눌렀다. 늘 따뜻하던 순자의 어머니는 갑자기 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딸의 눈물어린 긴 하소연에도 위로는 고사하고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아야. 시집갔으면 인자 너는 그 집 사람인 것이여. 살아도 거기서 살고, 죽어도 거기서 죽는 것이제. 여그 내려올 생각이랑 하덜 말어. 다시는 이런 일로 전화 하덜 말고, 차 서방 보고 살어. 알겄냐.”


  친정엄마가 이럴 줄은 몰랐다. 뭐 그런 집이 다 있느냐, 내가 당장 올라가서 혼꾸멍을 내주겠다는 말을 기대하던 순자는 잠자코 전화를 끊었다. ‘하, 그냥 한전 직원이랑 결혼해서 고향에 살걸.’ 후회해본들 소용없었다. 시댁이며 친정이며 모두 원망스럽기만 했다. 순자는 그 날로 마음에 배수의 진을 만들었다. ‘난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 이곳에 발 딱 붙이고 살아야만 한다.’ 일꾼 쓰는 과수원집에서 어화둥둥 자라온 순자는 이 일을 계기로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한 도시 여인으로 거듭났다. 신혼 땐 엄마 몰래 통조림햄도 사다주던 따뜻한 남편이 살면서 몇 번이고 바람을 피워도, 그 사실을 안 시어머니가 남편 편을 들면서 되레 자신을 나무라도, 죽어도 이 집에서 죽는다는 생각으로 참고 또 참았다.



  시댁에서 분가한 순자는 이제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아들이 장손이니 잘 키워야 한다는 시부모님 말씀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시부모 성화가 아니라도 외지에 뚝 떨어져 정착한 가정주부 순자가 보고 살 건 자식뿐이었다. 아들의 성적은 곧 순자의 성적 같았다. 아들이 고등학생 시절 머리카락에 물이라도 들이면 하필 그날따라 집을 찾은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넌 집에서 살림만 하는 애가 네 자식 하나 제대로 못 키우니?” 아들의 머리색이 왜 본인 탓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순자는 앉으나 서나 아들 걱정뿐이었다. 내향적인 아들은 빠릿빠릿함을 원하는 순자를 속 터지게 했다. 장성한 아들이 군대에 갈 땐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기는 할까, 행동이 굼뜨다고 선임에게 맞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몇 달을 눈물로 지새웠다. 그러나 순자 생각과 달리 아들은 군 생활도 무사히 마치고 떡하니 대기업에 취직도 했다. 


  취직 후 몇 년간 아들은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순자는 그럴 때마다 “원래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다, 네 아빠도 똑같았다”며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순자도 부모에게 참고 견디는 것만 배웠기에 그 외에는 말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본가에 올 때마다 늘 표정이 좋지 않던 순자의 아들은, 옆 팀 직원이 회사에서 투신하는 일을 겪고는 회사를 그만뒀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회사에는 더 이상 못 다니겠다며 규모가 좀 작지만 마음이 그나마 편한 회사에 다시 취직했다. 그리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면서 퇴근하고는 밤마다 웹툰 그리는 일에 매진했고 그제야 표정이 온화해 보였다. 아들 얼굴이 편해진 건 다행스러웠지만 순자는 내심 ‘그냥 대기업 다니지’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들이 회사를 옮기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순자는 ‘명문 ㅈ여고’ 동창들에게 이직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동창의 자녀들은 대부분 전문직이거나 사업을 하거나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회사에 다녔고, 순자도 그들에게 ‘대기업 다니는 아들을 둔 엄마’로 각인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칠순이 가까워오는 순자 마음엔 아들이 결혼할 때 서울에 아파트 한 채 못 해준 게 아직까지 걸려있다. 그게 벌써 십여 년 전이다. 여고 동창들은 자식들이 결혼할 때 떡하니 집 한 채씩 해줬다는데, 순자는 전세로 신접살림을 차려줬다. 아무리 아들이 전세를 원했대도 자가를 마련했어야 하는 건데. 남편 퇴직금을 미리 정산 받아서라도, 아들 명의로 된 아파트가 있었어야 했는데. 십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요즘 순자의 꿈은 시아버지가 집안의 장손인 순자 아들에게 고향 선산 땅을 물려주는 것이다.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순자에게 그 정도 자격은 있으니까. 가난한 집안 장남에게 시집 와서 당시 대학생이던 시동생 밥까지 아침저녁으로 차려 먹인 게 몇 년이던가. 시댁에 얹혀살 땐 무늬만 ‘안주인’이지, 그 옛날 순자의 집에서 일하던 일꾼들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왔다. 사실상 종살이나 진배없다고 생각했다. 분가 후에도 시부모님을 봉양하고 1년에 여섯 번 있는 제사를 모두 치러내는 것은 맏며느리 순자의 몫이었다. 외도에 살림까지 부수는 남편을 보고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화를 꾹꾹 눌러 담아 한평생을 참고 살아왔으니, 4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정도 희생이면 내 아들이 선산을 물려받을 자격은 있지 않나. 순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애석하게도 순자의 아들은 그의 꿈을 대수롭지 않은 듯 여긴다. “그린벨트로 묶여있는 그 땅? 그거 받아서 뭐하게. 관리는 관리대로 해야지, 세금은 세금대로 나가지, 내 마음대로 팔 수 있는 땅도 아니고. 엄마, 나 그거 받으면 짐이야.” 순자는 마흔이 넘은 아들내미 옆구리를 쿡 찌르며, 아무도 없는데 누가 들을세라 소리를 낮춰 소곤소곤 말한다. “예끼 이 녀석아, 그린벨트는 언젠가 풀린다고! 나중에 네 자식 세대에라도 풀린다니까! 저기 세종시 천지개벽한 것 좀 봐봐! 너도 이제 욕심 좀 내고 계산 좀 하면서 살아!” 

과연 순자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순자는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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