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인데요, 그렇게 희귀하진 않아요."
다큐멘터리 영화 <까치발>은 권우정 감독의 다섯 살 배기 딸 지후가 자꾸 까치발을 딛는 걸 보고 시작된, 엄마의 불안에 관한 이야기다. 어려서 아이가 까치발을 디디면 자폐나 뇌성마비일 확률이 높다는 속설이 있는데, 행여나 딸이 장애를 가질까 두려운 마음에 온갖 병원을 전전하고 자꾸만 아이를 다그치는 가족의 이야기가 담겼다. 딸 지후는 자신의 장난기 어린 행동과 환한 웃음, 이뤄낸 성취들보다 자신이 든 까치발에만 엄마의 시선이 머무는 것을 보고 “나 때문에 엄마는 힘들기만 한 것 같아”라며 눈물을 훔친다. 나는 광화문에 있는 작은 영화관 맨 앞줄에서 이 영화를 보며 가방에 챙겨간 휴지를 다 써버렸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서 한 번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이 양쪽 다리 길이가 좀 다르거든요. 팔도 그렇고요. 진료의뢰서 써 드릴 테니까 소아정형외과 예약 잡아보세요.”
아이가 네 살 무렵, 영유아검진을 받은 동네 소아과 의사선생님의 말이었다. 상급 종합병원 진료를 겨우 예약해 놓고 병원 갈 날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복잡했다. 아이 팔다리를 쭉 펴놓고 보면 왼쪽 오른쪽의 길이와 굵기가 좀 다르긴 했지만 그게 큰 문제가 될까. 사람은 누구나 얼굴도 몸도 조금씩 비대칭이니 그냥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걱정을 앞세우지 않으려 자꾸만 마음을 다잡고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되뇌었다.
“네 살인데 이 정도면 차이가 꽤 큰데요. 가만 있어보자. 요도하열로 수술도 했고, 키랑 몸무게도 계속 이렇게 하위 3%면 어떤 질환을 의심해 볼 수 있겠네요. 피검사 한 번 해보시죠. 다른 과랑 협진을 좀 해야겠네요.”
상급 종합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와 아이는 ‘의학유전학센터’라는, 듣지도 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난생 처음 가보는 진료 과의 대기실에 앉았다. 유전자 배열까지 뜯어보는 세부적인 검사를 해야 하는 탓에 아이 팔에선 여러 대롱의 피가 뽑혔다. 원인을 알 수 있다면, 괜찮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아이의 악 쓰는 울음 정도는 차라리 기꺼웠다. 세 차례에 걸친 피 검사 끝에 드디어 결과를 듣는 날이 왔다. 병이 있다, 없다, 뭔가 확실해지기 전까지 나는 뿌옇게 블러 처리된 배경 속을 걷는 것 같았다.
“러셀실버증후군입니다. 희귀질환인데요, 그렇게까지 희귀하진 않고요. 저희 병원에는 환자가 꽤 있어요. 우리나라 전체로 따지면 한... 몇십 명 될 거예요.”
네? 희귀질환이라니요, 선생님? 저나 남편이나 양가에 그런 병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요. 혹시 제가 임신 중에 뭘 잘못한 건가요? 아이가 너무 안 먹는 편이라 잘 못 먹였는데 그래서 그런 건가요? 임신 중에 잘 안 먹혀서 못 먹은 소고기들이, 아이가 뱉어버려 제대로 못 먹인 각종 고기들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일평생 남한테 큰 폐 안 끼치고 나름 착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원인은 알 수 없어요. 7번, 11번 염색체가 남들과 다른 어떤 특징을 가져서 생기는 건데요. 그래도 다행인 건 산정특례 대상으로 지정된 질환이라 나라에서 의료비 혜택을 줘요. 전체 금액의 10%만 내시면 돼서 큰 부담은 없으실 겁니다.”
아니 선생님, 저는 병원비를 여쭤본 게 아니고요......
의학유전학센터의 친절한 교수님은 혹시 내가 ‘희귀질환’이라는 거대한 벽 같은 단어에 너무 놀랄까봐, 또 병원비가 감당할 수 없게 많이 나오면 어쩌나 막막할까봐, 같은 병으로 이곳을 찾는 환자가 꽤 많다는 것과 나라에서 병원비를 지원해 준다는 사실을 위로로 건넸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100만 분의 1 확률이라 해도, 만약 내가 1이 된다면 내게는 100%가 아니겠는가. 많다고 말씀하신 환자는 수십 명에 불과했고, 병원비가 얼마인지는 그때 나에게 하등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차라리 내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가져갈 테니 아이가 병에 안 걸릴 수만 있다면,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통장 비밀번호라도 불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심한 배려와 위로가 감사했지만, 교수님 방을 나와 전공의 선생님과 상담하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은 없었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 알렉산더 러셀과 헨리 실버라는 이름의 소아과 의사들이 찾아내 그렇게 이름 붙였다는 그 망할 질환은 얼마나 정보가 없는지, 찾을 때마다 ‘러셀실버’인지 ‘실버러셀’인지 헷갈렸고 실제로 백과사전에도 표기가 혼용돼 있었다. 주된 증상은 어려서부터 잘 크지 않고 잘 먹지 않는 것, 왼쪽과 오른쪽이 비대칭인 것, 새끼손가락이 조금 굽은 것, 얼굴 모양이 역삼각형으로 턱이 뾰족한 것, 요도나 고환에 문제가 있는 것, 언어 발달이 느릴 수 있는 것 등이었다. 만약 중증이라면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가 더 컸을 텐데 그나마 아이는 경증에 해당된다고 했지만 그 모든 특징들을 수첩에 받아 적으며 나는 우물 속에 내던져지는 기분이었다. 동그란 하늘이 머리 위로는 보이지만 몸은 빠져나올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곳으로 자꾸만 가라앉는 것 같았다. ‘편측비대, 발달지연, 측만지증’ 같은 딱딱하고 무서운 말들이 나를 짓눌렀다.
진단을 받고 나온 어린이병원에는 기린, 토끼,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나오는 미디어아트 놀이 벽이 있었다. 아이는 천진하게 그 곳에서 동물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까르르 웃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세이브 더 칠드런 광고에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열살 누구누구는 러셀실버증후군이라는, 선천성 희귀 유전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려 다짐하는 누구 어머니는 버거운 현실을 뒤로 하고 오늘도 웃어봅니다. 이들 모자에게 손을 내밀어 주세요. 후원전화 1588에...”
아무리 사고회로를 긍정적으로 바꾸려 해도 오로지 그런 장면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리에 힘이 풀려 병원 바닥에 앉아 엉엉 우는 나를 사람들은 힐끔거리며 지나쳐갔고, 내가 왜 그렇게 우는지 벽의 토끼와 손을 맞잡은 아이는 알 턱이 없었다.
그 날 이후 내 세계는 완전히 뒤집혔다. 아이를 데리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언어치료센터를 찾아 제대로 대화하는 법과 규칙대로 노는 법을 배웠다.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고 해서 신나게 악기를 두드리는 음악치료도 해봤다. 양쪽 다리 길이가 다른 탓에 아이 신발을 새로 살 때면 오른쪽 발밑에 깔 깔창 두 겹을 따로 주문했다. 목욕을 시킬 때나 아이가 잠이 들면 팔다리 굵기와 길이, 얼굴 모양을 유심히 보곤 했다. 처음 가는 곳에서는 항상 아이를 변명해 주기에 바빴다. 새로운 병원에 갈 때마다 “아이가 희귀질환이 있는데요”라며 구구절절 덧붙이는 말이 길어졌다. 유치원에선 “질환이 있지만 발육이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늦다는 것 외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며 아이를 ‘정상아동’의 범주에 넣기 위해 부단히 애쓰기도 했다.
그 후 몇 년간 내 감정은 요동을 쳤지만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서는 굳이 내게 일어난 사건을 얘기하지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내면 생각이 굳어져 버리듯이 내가 자기연민의 늪에 빠질까 두려웠고, 때로는 제3자가 관망하듯 아이와 나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게 쿨한 엄마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사실 매 순간이 절망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래도 아이가 자폐라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더 큰 신체장애가 있는 건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 날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 불행의 상대적 크기를 줄여보려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일 터다. 그런 생각 자체가 다른 환아와 가족들에게 얼마나 무례한 것인지 잘 알기에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이 스칠 때마다 나 자신에게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폐렴에 걸려 또다른 종합병원을 찾았다. 소아청소년과 교수님이 “의사 경력 30년이 넘었는데 러셀실버 환자는 실제로 처음 본다”면서 아이의 숨소리나 목의 붓기보다는 얼굴과 팔다리를 더 유심히 관찰했다. 친절하고 따뜻한 교수님이셨고, 그 분의 행동에 전혀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웬일인지 조금 상처를 받았다. 폐렴을 봐달라고 찾은 병원인데 왜 다른 질환에 더 관심을 가지실까, 왜 동물원 원숭이 보듯 신기하게 보실까 하고 서운한 마음이 든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영화 <까치발>에 나온 일화가 떠올랐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인터뷰 중 하나였는데, 뇌성마비로 다리를 저는 자녀에게 동급생들이 ‘스텝 바이 스텝’이라고 놀리는 걸 보고 엄마가 한껏 역정을 냈다는 얘기였다. 너희는 우리 애 걸음걸이밖에 보이지 않느냐고 엄마가 나서서 동급생들에게 버럭 화를 낸 게다. 그런데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 본인이야말로 아이가 걸음을 뗄 때마다 주변에 사람이 있든 없든, 아이가 창피해 하든 말든 걸음걸이에 신경쓰라며 “발! 발!”하고 크게 외치고 있더란다. 누구보다 아이를 창피하게 만든 건 본인이었다며 엄마는 서럽게 울었다.
내 모순이 바로 거기 있었다. 병원이든 유치원이든 다른 이들에게는 “아이가 희귀질환이 있지만 외양이 아주 조금 다르고 발달만 좀 더딜 뿐, 다른 아이들과 큰 차이 없답니다”라고 아이를 변호 혹은 변명하면서, 나야말로 아이의 독특한 부분에만 시선을 준 것이다. 아이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린 그림, 예쁘게 접은 종이,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모습, 킥보드를 타고 씽씽 달리는 모습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팔다리의 굵기, 얼굴의 모양, 언어 발달단계, 사회성 같은 것에만 스탠드를 켜놓고 돋보기로 들여다 보듯 보고 있었던 게다. 그러면서 누군가 아이를 신기한 듯 보는 모습에 발끈하기는. 내가 먼저 그랬으면서. 그러는 사이 우리 아이는 처음 가보는 병원이며 유치원에 신나게 발을 내딛다가도 구구절절 설명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멈칫하며 한 발자국 물러나진 않았을까.
진단을 받고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러니 이렇게 지난 이야기들을 글로 쓸 용기도 생긴 것이다.) 나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들이 생겨났다. 가장 눈에 띌 만 한 건 아이를 힘들게 만드는 기대가 줄어들고, 존재 자체로의 고마움이 커졌다는 것이다. 갑자기 어떤 큰 깨달음을 얻고 모든 기대와 바람이 푹 꺼져버린 것은 아니고 ‘여덟 살쯤 되면 두 자리 덧셈은 기본이지, 파닉스는 진작 떼고 영어로 일기와 편지 정도는 술술 쓸 줄 알아야지’하는 욕심을 부리기보다 ‘그저 잘 먹고 잘 웃고 잘 자라기만 해다오’란 진심어린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이제 우리 아이는 성장판이 닫힐 때까지 십 년이 넘도록 매일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다. 당뇨 환자가 인슐린 주사를 맞듯, 고혈압 환자가 매일 혈압약을 먹듯 아이에겐 호르몬주사가 '반려약'이 되어버린 것이다. 주사를 놓는 건 보호자인 나의 몫이다. 처음엔 주사를 놓을 일이 숨 막히는 숙제처럼 다가왔지만 이젠 호르몬제의 도움으로 잘 자란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조금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아이의 성장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성숙한 엄마가 된 것 같다. 어느 책 제목처럼 나에게 아이의 질환은 ‘다행한 불행'일지도 모르겠다.
(※제목 <다행한 불행>은 2023년 6월 출간된 김설 작가의 책 제목과 같음(출판사 책과이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