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이 글을 읽는다면, 자기 얘기란 걸 알까.
카카오톡의 ‘업데이트한 프로필’에 친구가 떴다. 수년 만에 프로필 사진이 바뀐 것이다. ‘故박○○, 1960년~2024년.’ 흰 국화 사진이 함께 올라가 있는 걸 보니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았다. ‘카톡 프로필로 부고 소식을 듣는구나.’ 씁쓸하기도 하고 친구의 마음도 걱정됐지만, 나는 빈소가 어디인지 묻지도 조의금을 보내지도 못했다. 그가 몇 년 전 갑자기, 홀연히 곁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그와 나는 같은 초·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절친한 사이가 된 건 고등학교에서 같은 동아리를 하면서부터다. 소규모 동아리에서 우리는 단 네 명 뿐인 동기였다. 점심시간이며 방과 후에 동아리방은 우리의 놀이터이자 참새방앗간 같았고 할 일도 많았기에 우리는 내내 붙어 있으며 서로를 완전히 파악했다. 우리의 성향과 성격은 너무나 달랐는데, 바로 그 점이 우리를 가깝게 만들었다. 오지랖이 넓어 여기저기 참견하고 다니는 나와 달리 그는 남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자존감이 높았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으며 이성적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가끔 ‘쌉T’ 같기도 했다. 시원시원하면서 솔직한 그를 볼 때면 배우 고현정이 떠올랐다. 그는 질척거리는 나를 귀찮아하면서도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거리는 모습이 싫지는 않았던지 우리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을 잘 하던 그는 유명 대학 공대에 진학했다. 외국어 구사 능력도 탁월했기에 20대의 몇 년 간은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에도, 사회생활을 하는 중에도 우리는 여전히 친했다. 고등학교 때처럼 일거수일투족을 나누는 건 아니었지만 요즘 하는 일과 고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고 분기에 한 번쯤은 서로의 집에서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애인과 헤어질지 말지,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손을 붙들고 고민했던 수많은 날도, 잘 하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다 와인 두어잔에 둘 다 얼굴이 벌개져 깔깔거리고 웃던 밤들도 아직 눈에 선하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같은 동아리 동기 넷 중 한 명이 자신의 남자친구를 소개하는 자리가 마지막 만남이었다. 하하호호 즐겁게 먹고 마시고 떠들고, 우리는 늦은 밤 각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잘 도착했다며, 곧 또 만나 수다를 떨자며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개인 메시지든 단체 메시지든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지 않았고, 가끔 한꺼번에 읽더라도 답을 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던 개인 작업물과 일상 사진도 모두 업로드가 뚝 끊겼다. 나는 물론이고 그와 마지막 자리를 함께 했던 동기들도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그때 그 자리에서 실수한 게 있었던가. 말 토씨 하나 상황 하나 되짚어봤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고, 만에 하나 실수를 했더라도 그 정도의 실수로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기엔 우리가 함께 지지고 볶은 세월이 너무 길었다. 우리는 2001년부터 ‘절친’이었(다고 믿고 있)고, 그 일이 생긴 건 2018년 겨울이었다.
그가 사라져버린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친구들과 나는 당황스러웠다. 혼자 사는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경찰에 신고라도 해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가 살아있는 것은 분명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가끔 바뀌기도 했고 우리와의 카카오톡 대화에만 참여하지 않을 뿐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온라인 생활반응’은 관찰되었다. 집을 알고 있으니 불쑥 찾아가볼까도 싶었지만 한 번 마음이 돌아서면 냉정한 그의 성격을 아는 우리는 차마 그럴 용기가 없었다. 막상 찾아가서 할 말도 마땅치 않았다. 걱정돼서 왔다고 해야 하나, 왜 우리 연락을 씹느냐고 화를 내야 하나, 우리가 잘못한 게 있다면 마음 풀으라고 해야 하나,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와야 하는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불쑥 화가 나기도 했다. “아니, 우리가 알고 산 세월이 얼만데 갑자기 이렇게 연락을 끊어? 너무한 거 아니야? 화가 날 만한 일이 있으면 화났다고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셋은 따로 만날 때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돌아오는 건 통화 거절 버튼을 누른 연결음 뿐이었다. (남겨진 우리는 뚜르르 통화신호가 가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 연결음이 나오는지, 수신자가 ‘거절 버튼’을 눌러야만 그 연결음이 나오는지 서로의 전화로 여러 차례 테스트까지 했다.)
셋이 머리를 맞대 내놓은 합리적 추론은 그와 우리의 상황이 너무 달라져, 더 이상 우리를 친구로 느끼기 어려웠던 것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에 긴 연애를 마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었고,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 중이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회사에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다른 한 명은 결혼 후 내집 마련에 성공하고 임신을 준비 중이었기에 회사에 다닐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애인을 소개하는 자리라 더없이 알콩달콩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을까. 아니면 우리의 무언가가, 수많은 말 속의 무언가가 그를 화나게 만들었을까. 어쩌면 '우리 때문'이라는 생각조차도 자의식 과잉일지 모른다. 그의 잠적은 그 동기 모임과는 무관할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나는 각자 자신의 말과 행동을 되짚어보다 그를 원망하기도 하다 걱정하기도 하다 이내 자신의 인생을 사느라 그를 잊기도 했다.
그가 홀연히 사라진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뭔가 잘못했다면 사과하고 싶다. 그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힘듦을 가장한 자랑을 한 일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고 증발해버린 그가 때로는 야속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벌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락이 끊긴 지도 벌써 6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나는 오지랖 넓고 질척이던 고등학교 때 모습 그대로, 그에게 메시지를 자주 보냈다.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도 읽지 않는 친구에게 생일이면 생일 축하한다고, 보고 싶다고 연락했다. 카카오톡 메시지 옆의 '1'은 몇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는 이 모든 게 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 방식대로의 우정과 애정을 그에게 보여주는 게 그저 내 만족을 위한 것일 뿐이고 훗날 그가 돌아왔을 때 '내가 너를 이렇게까지 기다렸다'고 말하기 위해 남겨두는 기록은 아닐까. 싫다는 사람에게 끈질기게 연락해 안부를 묻는 게 진짜 친구일까, 떠난 사람은 놓아주고 그저 행복을 빌어주는 게 진짜 친구일까.
얼마 전 새벽, 인스타그램에서 옛날 추억의 노래를 알려주는 게시물을 보고선 그가 떠올랐다. 1992년 발매된 여행스케치의 노래 ‘옛 친구에게’다. 노래가사가 너무나 내 마음 같아서 이 노래를 들으면 그가 떠오른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엔 난 널 위해 기도해. 아직도 나를 기억한다면 날 용서해 주오.” 나는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종이비행기 버튼을 눌러 그에게 인스타 DM으로 게시물을 공유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송됨’만 뜨고 ‘읽음’으로 바뀌진 않는다. 이 차단이 풀리는 날이 오긴 하는 걸까.
※ 사족
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그의 전공 등을 일부 각색했다.
하지만 만약, 만에하나 친구가 이 글을 읽는다면 대번에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아볼 것이라 믿는다.
‘안녕, 잘 지내고 있는지 자주 궁금해. 잘 지낸다면 그냥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 어디에서 뭘 하고 있든지 건강했으면 좋겠다.’
차단을 해제하면 내가 재작년에 보낸 이 메시지를 그가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