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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May 24. 2020

<러반타운> Part I - #4

농민이 아닌 농촌을 성찰하라


관점을 바꾸면 생각도 바뀐다. 돌이켜 보면 개별적인 귀농지원정책이 추진되었던 바탕에는 기존의 농촌사회나 농업구조를 귀농인 개인에게 맞춰 바꿀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러니 귀농인 스스로 기존의 농촌 환경에 알아서 잘 적응하고 융합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각자 귀농하는 사유는 매우 개인적이고 귀농인 개개인의 경제력과 역량도 균일하지 못하다. 그 결과 귀농 정착 후의 만족도나 성과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농촌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역귀농 하거나 귀농지를 옮기는 상황도 계속 발생되고 있다. 원활한 귀농 정착을 위해 아예 농촌의 환경을 바꿀 수는 없는가? 


물론 적극적인 귀농정책과 주민의 협력으로 괄목할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다. 총 인구 4만 명이 채 되지 않는 괴산군에 최근 5년 동안 8천4백여 명이 넘는 귀농∘귀촌인이 이주했다. 주택구입지원 등 21가지의 귀농∘귀촌 지원 정책을 꾸준히 시행하면서 전체 100여 가구 중 20 가구가 귀농인으로 구성된 마을도 생겨났다. 귀농 활성화가 농촌을 살리는 대안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괴산군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지원팀장의 말에 의하면 ”귀농∘귀촌인의 유입은 농촌 고령화와 인구 유출, 노동력 감소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다. 


다른 경우를 보자.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교수가 담양군의 90가구 정도가 사는 어느 농촌 마을에 정착했었다. 십 수년이 흐른 지금 마을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 65세가 되었다. 이제는 농촌의 변화를 꾀하고 싶어도 더 이상 함께 일을 할 사람이 없다. 놀랍지만 이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고령화는 심화되고 귀농인의 유입조차 없으면 가까운 시일 내에 마을이 소멸되거나 인공호흡기로 겨우 연명하는 위기를 맞을 것이다. “청년들이 많이 귀농해서 영농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농촌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말이 구호로 그치면 안된다. 


위의 두 가지 상반된 사례에서 정작 주목할 점은, 귀농 정착이 성공적인 지역이든 아니든, 여전히 귀농을 개인적 활동으로 보는 관점에서 개별적인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최근 귀농정책의 기본 방향은 귀농인의 정착을 지원하고, 그들이 농업∘농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인적 자원이 될 수 있도록 육성하고 지원하는 쪽으로 바뀌는 중이나, 아직도 개별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어서 아쉽다. 이제 귀농정책의 방향 전환을 위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농촌의 활성화를 원한다고 실질적인 방안이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생각을 바꾸는 것은 의도의 차원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귀농 지원 방향은 이전의 유입 확대에서 정착과 인재 육성 중심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중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17년 <귀농∘귀촌 인구 전망과 정책 방향>에서 전문가들의 의견과 자료들을 종합하여 새로운 귀농정책 방향을 제안했다. 특히 “귀농에 대한 정부 정책이 단순히 귀농 인구를 증가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귀농인의 정착을 돕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에 눈길이 간다. 개인에 대한 지원을 넘어서자는 점과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자는 것 또한 바람직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렇게 발전된 귀농 지원 방향의 목적과 초점도 기존의 농촌 공동체를 중심에 두고 귀농인을 상대적 존재로 생각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제안된 정책 방향의 주요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귀농인에 대한 개별 지원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활력을 창출하는 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귀농 인구 증대 자체가 아니라 농촌에 활력을 일으킬 인적 자원, 특히 젊은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단순히 정착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 부문에의 신규 진입과 귀농 가구 구성원의 일자리 창출에 주력해야 한다.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에서는 개별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 일변도를 벗어나 정책을 추진할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하고, 행정기관 중심에서 벗어나 민관 협력 거버넌스를 형성해야 한다. 

<귀농∘귀촌 표현은 모두 귀농으로 바꾸었다.>


기억할 것은 귀농 현상이 농촌 활성화라는 목적 달성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귀농의 주체인 귀농인이 바로 농촌 활성화의 대상이자 주역이 되어야 한다. 귀농인이 지역과 공동체의 활성화에 앞장서려면 기본적인 농업 및 관련 소득으로 먹고 사는 것부터 가능해야 의미가 있다. 농업 소득만으로 가계를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당장 농업 외 소득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중장기적 대책으로 지역 특성과 귀농인의 역량을 활용한 6차산업형 농업소득을 높이는 방안을 발굴하고 실증해야 한다. 귀농인도 농업으로 기본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지원만 받는 수혜자가 아닌 지역 공동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농촌에 활력을 일으킬 청년 역시 기존 농촌을 활성화시키는 자원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농촌을 만드는 주역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청년 인재를 육성하는 방향은 좋지만 정착금의 확대나 자금과 농지의 지원에 머물면 안된다. 예를 들면 단순 정착금 지급보다 청년 귀농인의 특성 상 협업할 수 있는 일터와 주거가 함께 제공되는 시설을 제공하거나 부족한 창업자금도 가능하면 대출 아닌 투자로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회수되는 투자금은 다시 청년농업과 스마트 농업을 육성하는 순환계를 만든다. 이를 위해 1조원 규모의 혁신청농투자펀드 조성도 고려해보자. 돈이 있는 곳에 뜻이 있다. 나아가 이와 관련되어 발생하는 손실을 특정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는 보장을 하자. 농촌 생태계의 기반을 조성하려면 청년에게 실패가 용납되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방향이 틀린 최고의 성과보다 바른 방향으로 가는 최선의 노력을 권장할 때다. 실행하지 않는 것은 뜻이 없는 것과 같다. 


끝으로 거버넌스의 핵심 본질은 참여의 적극성이다. 사전적 의미대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주어진 자원 제약하에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투명하게 의사 결정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장치, 그리고 공공 정책 및 서비스 제공과 시민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결합된 장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농촌에서 다양한 형태의 기구와 조직을 경험한 것처럼, 유행처럼 만들어지는 거버넌스의 기능과 역할에 앞서 주민들의 수동적인 참여에 대한 우려가 크다. 주민과 투명한 소통을 하기 보다 형식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자칫 정부 입장에서 설득하고 조율하는 역할에 치우치는 거버넌스 활동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귀농인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방식과 다르게 시도해 보자. 


적어도 귀농인을 위한 정책 수행에 대해서는 가장 절실한 당사자인 귀농인을 주역으로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정책은 추진 과정에서 누가 수행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아무리 잘 짜인 정책이라도 수행하는 구조, 즉 사람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다행인 것은 귀농어∘귀촌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귀농인들 스스로 귀농공동체나 귀농지원법인을 조직하여 활동하는 방식도 정부로부터 행정적 지원과 경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귀농인들 스스로 참여할 길은 이미 열려 있으니 시작하면 된다. 


우연인지 혹은 필연인지, 러반타운 프로젝트의 개념과 내용은 현재 정부가 농정개혁 방향으로 재설정한 지향점과 궤를 같이 한다. 그것은 바로 농업을 공익적 가치까지 창출하는 산업으로, 농업인은 좋은 식품을 만들고 환경을 지키는 당당한 주체로서, 농촌은 풍요로운 삶터∘일터∘쉼터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자면 역시 더 많은 귀농인의 유입과 정착이 필요하다. 


귀농인을 위한, 귀농인에 의한, 귀농인 중심의 신농촌 개념을 구현하는 것이 러반타운이다. 혹시 기존 농민의 이익을 역으로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와 편견을 갖지 않아야 한다. 오래전에 귀농해서 정착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요즘 귀농에 대한 지원이 과도하다고 생각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스스로 환경을 바꾸려는 의지만 있으면 언제나 문은 열려 있다. 


러반타운 프로젝트의 최종 목적은 농촌 활성화이고, 러반타운을 통한 귀농 정착의 확산은 이를 위한 솔루션의 하나이다. 기존의 귀농 정착 지원 정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경제, 문화, 사회, 건축, 기술 분야의 경계를 허물어 융합적인 환경을 새로 만드는데 있다. 기존 농촌환경에 귀농인이 적응하는 방식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하는, 우리가 알던 도시와 농촌의 범주나 관계에 매이지 않는, 미래형 신농촌을 만드는 방안이다. 


신농촌 프로젝트는 사실 오래된 새로운 이야기다. 자료를 조사하다가 흥미로운 논문을 발견했는데, 1985년에 전남대학교 송인성 교수가 발표한 “우리나라 농촌개발을 위한 새로운 제안 – 農都化 戰略” (Rurbanization Strategy - A New Proposal for the Rural Development in Korea)이다. 러바니제이션(Rurbanization)이란 용어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여기에 처음 등장했다. 논문의 농도화 전략은, 도시 대 농촌의 기존 공간분류를 대치하여 ‘도시’ 대 ‘농도’라는 개념으로 다시 정의한다. 

<근래 우리나라 농촌의 대안으로 다시 주목받는 러바니제이션은 도시성과 농촌성의 혼재, 도시 사람과 농촌 사람이 함께 사는 혼주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데, 송인성 교수의 논문에서 제안한 ‘농도화’ 전략과는 차이가 있다. 그 후로도 계속 농촌 정책에 러바니제이션(Rurbanization)이 등장하지만 대부분 도시성과 농촌성이 물리적으로 어울리는 형태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농도’는 도시화된 농촌으로써, 도시와 농촌의 장점을 함께 갖춘 통합적인 공간이다. 농촌을 새로운 개념의 ‘농도’로 변환하는 농촌공간개발전략의 실천을 통해 농촌과 도시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주장이었다. 이른 시기에 제안된 것이 놀랍고, 아직 구체화되지 못해 아쉽다. 특히 국문 초록 마지막 문장은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파격적인데, 지금도 다시 새겨볼 말이다. 


“눈을 크게 뜨고 농민만 보지 말고 농촌을 성찰해 때이다.”


농촌을 성찰하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농촌을 아는가? 국민 전체에서 농업인구는 5% 아래로, 농업인 중 도시화된 지역에 거주하며 생활하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농촌 거주자의 일부만 농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흔하고 농업 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더 많다. 농촌은 이미 농업과 농업인만 위한 곳이 아니다. 농촌이 지속되어야 한다면 지금 그대로의 형식과 성격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새롭게 변화되고 발전하는 농촌의 모습은 무엇인가? 사전 지식을 내려놓을 때 상상력은 지평선 너머까지 나아갈 수 있다. 농촌의 본질에 관한 고민은 진행형이어야 한다. 


농촌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불변의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지금 농촌의 모습이 지난 수십년 사이에 만들어져 온 것처럼 미래의 농촌은 계속 만들어지는 중이다. 현재에 알맞은 최선의 답이 있을 뿐이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답은 변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도를 멈추면 안된다. 이제는 일방적으로 기존 농촌환경에 적응하는 귀농 방식이 아니라 고전적으로 인식되는 도시와 농촌의 경계를 넘어 제3의 개념을 구현하는 신농촌 프로젝트를 실험할 때이다. 신도시 정책이 유효한데, 신농촌은 못 만들 이유가 있겠는가? 귀농 정착의 확대를 통한 농촌 활성화를 위해 러반타운 프로젝트의 계획을 정교하게 세우는 작업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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