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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원 Oct 11. 2021

보이스피싱도 아니고 페이스피싱을 당하다니

생각해보면 참 황당하긴 한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심심한 일상에 웃고 넘길 이야깃거리 하나 생긴 셈 치자고 한 일이 생겼다.


이틀 전의 일이다. 아내는 볼 일이 있어 잠깐 나갔고 나 혼자서 정신없이 주문 들어온 것들을 쳐내고 있을 때였다. 조심스레 가게 문이 열리더니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양 손에 옛날 과자를 가득 들고 들어오셨다. 직감적으로 팔러 온 거라는 걸 느끼고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그때 그 아저씨는 뭐라 뭐라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나지막이 중얼거리셨다. 좀 정신이 없어서 주방에서 홀로 고개를 내밀어 다시 한번 말씀해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현이 아빠예요, 여기 앞에 아파트 사는..."


말끝을 흐리는 그 상황에서 나는 사고 회로가 잠깐 정지됐다. 


그 표정과 말투의 뉘앙스로 흐려지는 말끝의 의미를 나에게 이렇게 알려주려는 듯 보였다. 


'나는 당신 자녀 친구의 아빠다. 게다가 같은 아파트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어 당신께 말을 건 것이다. 사달라'


그렇다. 나 혼자 확인도 안 하고 그 사람의 뉘앙스만으로 머릿속으로 아들 녀석의 친구 아버지라고 프레임을 씌워 버린 것이다. 게다가 나와 연배가 비슷해 보여서 진짜 내가 모르는 아들 녀석 친구의 아버지인가 싶기도 했었다. 


'실직을 하신 건가?'


뭐 이런 생각까지 찰나에 스쳤다. 그 순간 가게 일로 바쁘기도 했기에 그렇게 아는척하는 것에 전혀 의심 없이 과자 얼마냐고 물었다.


"2만 원만 주세요."


이 말을 듣고 잠깐 이 생각이 들었다.


'친구 아빠한테 이렇게 바가지를 씌운다고?'


뭐, 이것도 잠시 든 생각이었고 이내 지갑에서 2만 원을 꺼내서 드렸더니 손에 쥔 과자를 트레이에 툭 놓고 가셨다.



나갈 때 문 밖에 보니 벌크형 과자 박스가 수레에 가득 있었다.


얼마 뒤, 바쁜 일들을 처리하고 아내와 통화를 했다.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과자를 산 것 때문에 아내에게 물어봤다.


"혹시 지훈이 친구 중에 지현이라고 있어?"


"지현이? 오빠 친구 아들 지현이 말고?"


"어, 우리 아파트 사는 지현이... 몰라?"


"음... 모르겠는데? 잠시만...(언니, 언니는 지현이라는 애 알아요?)"


수화기 너머로 아내와 자주 만나는 아줌마들도 전혀 모른다고 했다.


뭐지? 뭐였지?


"글쎄 자기가 지현이 아빠라고 하면서 자기가 들고 온 과자를 사달라고 하더라고."


나는 이렇게 말하는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수화기 너머로 '으하하', '깔깔깔'하는 아줌마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빠 호구 잡혔네!!"


10분 뒤 아내와 아내 친구들이 가게로 와서 전화로 못다 한 내 놀리기를 이어나갔다.


보이스 피싱도 아니고 면전에서 이렇게 낚이다니.


아내는 이런 일이 재미있었는지, 그리고 혹시 누가 또 이렇게 낚이지는 않았는가 싶어 맘 카페에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곳곳에서 피해자(?)들이 속출했다.








거액을 털린 것도 아니었고 2만 원을 주고 과자를 받았으니 일종의 거래를 한 셈이었는데 뭔가 뒤통수를 맞고 강매를 당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거래를 하던 당시에는 전혀 그런 느낌을 못 받은 게 함정이었다.


친구 2명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얘들은 사뭇 진지했다. 주변에 보이스피싱 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그런 상황에서는 판단력을 잃게 되더라는 말이었다.


나는 2만 원 주고 과자를 산 셈이니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의 상품을 팔기 위해서 상대방을 속이는 것은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된다.


1년 뒤에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니 그때는 만 원 치만 사 먹든가 우리 가게 메뉴를 그 사람에게 팔아보던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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