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만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아내도 서로의 마음에 호감이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다. 대화를 해도 어느덧 서로의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고 나의 시답잖은 농담에도 환하게 웃어 주었다.
어느 주말 아침,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부산으로 넘어갔다. 백화점에 들러 난생처음 화장품 코너에 가서 립스틱을 골랐다. 고백을 할까 말까 하는 시점에서 실천력을 높이기 위한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주기엔 너무 생뚱맞은 것 같아서 언제 줄지 눈치만 보고 있었다. 당연히 그날 구경 갔던 곳의 경치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내가 사는 동네로 넘어와서 둘이서 처음으로 맥주 한잔 하게 되었다. 내 구역이라 자신 있게 내가 좋아하는 치킨집으로 들어갔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니까 없던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 니한테 억수로 마음 있는 거 아나?"
"..."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속으로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말을 꺼내야 됐나? 아직인가?' 싶었다. 그래도 일단 뱉은 말이라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말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만나면서 좋았던 점을 마치 회사 회의 시간에 사장님께 생산일정 브리핑하듯이 쭉 내뱉었다. 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풀이 죽어서 사장님 눈도 못 마주치고 말하던 그때의 상황과 맥주잔을 앞에 두고 눈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던 아내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 좋아하던 치킨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사귀자는 말도 못 꺼냈는데...
"오빠는 좋은 사람 같아요. 하지만...(뒷 말은 기억 안 나서 생략)"
뭔가 이런 뉘앙스는 책에서 정중한 거절의 표현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훗 날 들은 얘기지만 아내는 거절의 표현이 맞다고 했었다. 거기서 멈췄으면 나와 아내의 인연은 치킨집에서 끝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