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식당 차릴래. <1. 회사원 시절>

매너리즘

by 김주원

(1) 첫 직장

힘들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겠냐마는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가게 된 첫 직장은 “남중-남고-공대-군대-다시 공대 복학-중공업 계열 회사 취직”이라는 남초 그룹의 전통적인 코스를 따라 역시나 중공업 회사였다.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 '라떼는 말이야.....'를 달고 사는 직장 상사(a.k.a. 꼰대), 짬이 안돼서 거의 격주마다 주말 당직(명절 당일에도 당직 섰음)을 서는 것, 회장님이 오시는 날이면 더운 날에 에어컨도 다 끄고 청소하고 분주하게 맞이 했던 것(경비아저씨는 회장님이 입구에 오시면 거수경례를 하면서 '충성'이라고 외쳤음)과 같이 주옥같은 관료사회의 문제를 첫 직장에서 거의 다 겪었었다.

당시에 품질보증과 관리를 담당했었는데 회사 인증 관련 업무가 마무리될 때쯤 생산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제품 검사도 도맡아 했었다. 신생 업체다 보니 거래하는 대기업에 납기를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제품을 생산해내는 통에 제품 검사로 철야는 밥먹듯이 했고, 쌓여가는 피로로 내 얼굴에 입점해있던 다크 써클은 스모키 화장을 한 것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28살 때부터 시작된 첫 직장생활은 서른이 다 되었을 때까지 꾸역꾸역 잘(?) 버티고 있었다. 항상 사직서를 컴퓨터 바탕화면 한 켠에 저장해 놓은 채로 말이다. 정말 누가 날 건드린다면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태세였다. 그런데 어느 날 사수인 차장님이 내 컴퓨터에 저장된 품질문서를 찾으시다가 내 사직서를 클릭해서 보고 말았다. 당장 회의실로 불려 갔다.


"내가 니 컴퓨터에서 사직서를 봤는데.... 진짜 나갈 거야?"


자리에 앉으신 차장님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힘들어도 잘 내색도 안 해서 내가 힘든 줄 몰랐다고, 진작 말을 하지 그랬냐고. 그러면서 사직서에는 결재 서명 안 해줄 거라고 자기 놔두고 나갈 생각 꿈도 꾸지 마라고 하셨다. 사실 둘이서 팀을 꾸려가면서 서로 많이 의지하는 사이였기에 마음이 약해질 뻔했던 나는 어설픈 핑계를 대면 오히려 더 발목 잡힐까 봐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껄여 버렸다.


"호주 갈라고요"


엥? 갑자기 내 입에서 그 말이 왜 튀어나왔지? 그냥 다른 직장이나 다닐 거라고 할 것이지. 스스로도 생각지도 않은 호주라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하는 동안에 호주에서 캥거루랑 하이파이브하고 있는 내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고 진짜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뒀고(이 과정에서도 에피소드가 조금 있지만 생략)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진짜로 시드니 공항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차장님을 두고 회사를 떠나온 건 마음에 걸렸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뒤로 나보다 더 괜찮은 직원이 들어와서 나를 잊으신 듯했다.

경직된 조직문화, 정말 쥐꼬리만 한 월급, 끝없는 업무로 인한 과로, 보이지 않는 비전, 임원들의 실내 흡연, 본인들은 인지 못하는 여직원들에 대한 성희롱 같은 것들이 사직서를 쓰게 된 이유였는데 나보고 "너는 일도 그만하면 적당히 하고 성격 싹싹하고 회사에 헌신하는 착한 신입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이기적인 놈이었네."라고 말하는 직장상사도 있었다. 직장 내에서 사람 사이의 유대감과 업무는 별개로 생각하는데 그렇게 여기지 않는 분들도 있어서 적잖이 놀랐다. 지금이야 아직 거기 잘 다니고 있는 동료들 얘기로는 회사 분위기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나는 그만둔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후일담이긴 한데 나보고 이기적이다라고 했던 분은 내가 그만두고 얼마 뒤 짤렸음.


(2) 호주행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시절부터 워킹홀리데이로 해외에 지내다 오는 친구들을 보면서 참 많이도 부러워했었던 것 같다. 당시엔 알바를 해도 생활비로 다 쓰다 보니 돈을 모을 엄두도 못 냈고 부모님께 유학 보내달라고 손 벌릴 만큼 집안 사정이 넉넉한 편도 아니어서 가슴 한 켠에 약간 '한'으로 남아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한'을 고이 간직한 채 직장을 다니다가 결국, 적금통장을 깨서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걸로 푼 셈이다. 그때가 내 나이 서른이 되던(워홀 나이 제한 거의 막차) 해의 1월이었다.

여기서 잠깐!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식당을 차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왜 옆길로 새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일까. 나도 쓰면서 이 부분은 뺄까 고민은 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호주에 있을 때 식당 일을 하는 동안 식당 창업의 꿈을 가슴 한 켠에 담아 놓았었기에 먼 과거의 이야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내 나이가 39살이니까 거의 10년 전의 일이다. 오래되긴 오래됐다.

호주 생활은 솔직히 별거 없었다. 한인이 운영하던 식당에 키친 핸드(주방보조) 자리가 났길래 보조정도면 경력이 없어도 되겠다 싶어 이력서를 넣었는데 바로 취직이 되었다. 고용주가 알고 보니 내 고향 근처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분이셨다. 세상 좁다고 호주에서 바로 고향 옆동네 사람 만난 거 오랜만이라고 좋아하셨다. 역시 학연, 지연.... 덕분에 쉽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행을(먹으러) 다녔다. 시드니에서 지내면서 식당 일을 계속했고 어느 정도 돈이 모아지면 주변 도시로 넘어가서 현지 맛집들을 찾아다녔다. 한국 들어오기 두 달 전부터는 일은 아예 안 하고 케언즈, 브리즈번같이 동부 해안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거기서 사귄 친구들과 역시나 맛있는 거 먹으러 다녔다. 내 인생에 언제 다시 이런 날이 올까 싶을 정도로 서른 살의 나는 아무 걱정도 안 하고 잘 먹고 잘 쏘다녔다. 이때 요리에 관심을 좀 가지게 되었는데 웍도 돌릴 줄 알게 되었고 칼질도 어느 정도 하게 되고 실험적인 소스도 많이 만들어서 기존 요리에 접목시켜 해먹곤 하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요리에 대한 기본기와 가게 운영에 관한 것들을 익힐 수 있었던 것 같다.

(3) 두 번째 직장

행복했던 호주에서의 1년을 보내고 한국에 와서 바로 식당을 차렸느냐면 그건 아니다. 다시 직장을 구했다. 그때만 해도 식당 창업은 언감생심 꿈도 안 꿨고 난 단지 요리에 흥미만 있을 뿐 식당 창업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렇게 내 두 번째 직장 생활이 시작됐다. 두 번째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지금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와이프를 소개팅으로 만났고 연애하고 결혼해서 첫 아이까지 낳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5년이라는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처음 다녔던 직장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회사 구성원들이 모두 나랑 비슷한 연령대라 유대관계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봉이 괜찮아서 오래오래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든 회사였다. 그런데 다닌 지 3년 정도가 지나니까 왠지 모를 공허함이 자주 찾아왔다. 매 년 연봉도 오르고 승진도 하면서 일이 재미있어야 했는데 하는 일은 비슷하고 사장님한테 갈굼 당하는 것도 비슷한 문제로 주기적으로 당했다. 중소기업의 특징은 매출의 곡선에 비례해서 보스의 기분도 움직이고 덩달아 사무실의 분위기도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좋아했던 동료들은 하나둘 떠나가는 상황이 생기니까 의욕이 많이 꺾인 것도 사실이었다. 나에게도 매너리즘이 찾아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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