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내가 국비 지원으로 피부미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저녁시간까지 교육을 받아야 했기에 자연스레 아이들 하원은 내가 책임지게 됐다. 음식 장사를 하고 있고 브레이크 타임도 있어서 아이들이 하원할 때 픽업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
첫째 아이 하원 시간은 오후 4시 20분, 둘째 아이 하원 시간은 4시 40분~50분 사이다. 첫째 녀석은 우리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둘째는 집과는 조금 먼 곳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녀서 통학버스로 이동한다. 다행히도 우리 집 바로 앞에 내려줘서 편하다. 나는 아이들 하원 시간이 다가오면 가게문을 잠시 닫고 첫째가 있는 유치원으로 향한다.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아주 가까운 곳이다.
유치원 입구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면 선생님이 나를 알아보시고는 바로 문을 열어주신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그냥 인터폰 너머로 고개 숙여 인사한다. 첫째 녀석과는 서로 장난치는 걸 좋아해서 얘가 선생님한테 인사하고 신발을 신으려고 할 때쯤 나는 몰래 숨어버린다. 나를 한 번에 찾아낼 때도 있고 못 찾아서 목청 놓아 울 때도 있다.
그래도 마무리는 항상 손을 잡고 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첫째 녀석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좋아."
예전에는 그런 말을 시켜도 절대 안 하던 아이가 나보고 좋다고 말하니까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빠가 왜 좋아?"라고 말하니까,
"... 그냥ㅎㅎㅎ... 나 잡아 봐라~"이러고는 이 녀석이 내 잡은 손을 뿌리치고 내달렸다.
당연히 나는 금방 잡아버렸다. 그러니까 이제는 내가 싫다고 울어버렸다. 겨우겨우 달래고 투닥거리면서 둘째 아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4시 40분... 예정 시간보다 일찍 둘째 아이가 탄 어린이집 통학버스 차량이 도착했는데 차에서 내리는 아이의 표정이 시무룩해 보였다.
"오늘 안 좋은 일 있었어?"라고 물어보니 알아듣기 힘든 말로 웅얼웅얼거렸다.
집중해서 다시 주의 깊게 들어보니 편의점 앞에서 캡슐 뽑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내가 그런 걸 잘 안 해준다는 걸 알기에 큰 소리로 말을 못 하고 웅얼거렸던 것이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500원짜리 동전이 마침 있어서 뽑기 한 판 시켜주니까 그제야 표정이 밝아졌다.
어느 책에서 보니 청춘을 다 바쳐서 무언가를 일궈낸 부자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아이가 어렸을 적에 한참 바쁘다는 핑계로 학예발표회라든지 디즈니랜드에 같이 가보지 못한 채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 후회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나 역시 이런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이 생기는 시기가 왔음을 느낄 수 있다. 항상 아내와 아이들과 뭔가를 같이 하고 싶고 추억을 쌓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은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그래도 아이들이 바쁜 시간이지만 잠시라도 함께 하는 나에 대해 아빠로서 좋아하고 그걸 표현하는 모습이 너무 대견하다.
나는 아빠로서 빵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인데 그래도 나를 좋다고 하는 아이들이 고맙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50점짜리 아빠가 돼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