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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원 May 27. 2024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

올해 들어 저는 참 많이도 다치고 병들었습니다. 욕실에서 갑자기 쓰러져서 바닥에 부딪혀 코가 깨졌었고요. 기계를 만지다가 손가락을 다쳤습니다. 까딱 잘못됐다면 손가락이 날아갈 뻔한 아찔한 사고였습니다. 몸살을 자주 앓았고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다래끼도 오래갔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저보고 올해가 삼재냐며 몸 관리를 잘하라고 조언을 하더군요. 아내는 몸이 많이 약해진 저를 보며 혼자 속으로 끙끙 앓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친한 친구들에게 저한테 붙은 불운이 너네들한테 옮을 수도 있다며 당분간 조용히 찌그러져 지내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세상 모든 불운의 화살이 저에게로 날아와서 명중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픈 날이 많다 보니 당연히 어떤 행동이라도 하기가 싫어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역시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네요.


얼마 전까지 주말에는 하루종일 침대 위에 누워만 있고 싶었습니다. 이것 참... 몸이 아프다는 것이 유튜브를 보는 거나 SNS를 하는 것 같은 도파민을 자극하는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제 몸을 꽁꽁 묶어둘 줄은 생각 못했었는데요. 이러다가는 정말 몸과 마음 모두 저 깊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만 같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주말 아침이었습니다. 역시나 일요일 아침은 화창했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었는데요. 아들 녀석이 누워 있는 제 품속으로 들어와서 속삭였습니다.


"아빠, 농구하러 가요."


음, 뭐랄까. 그 순간 아들 녀석이랑 같이 농구하러 안 나가면 평생 후회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군소리 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농구공을 챙겨 들고 아들 손을 잡고 집 근처 학교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농구코트에는 저희 둘 밖에 없었습니다. 아홉 살 먹은 아들 녀석은 손에 힘이 없어서 슛보다는 드리블과 패스 위주로 알려줬고 저는 모처럼 짧은 팔과 다리를 이용해 슛 연습을 했습니다.


제가 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아들 녀석도 슛을 하고 싶다고 조르더군요. 골 맛이라도 보게 해주고 싶어서 정석적인 폼보다는 두 손으로 던지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을 던져도 공은 골대 근처까지 닿을 기미가 안보였습니다. 이 녀석, 차라리 1년 뒤에 조금이라도 더 커서 농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아들이 던진 공이 골대 근처까지 가는 게 아닙니까? 뭔가 저도 이 날 아들 녀석의 첫 골을 성공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처음 자유투를 던질 때의 그 자세로 몇 번이고 시도하는 아들에게 할 수 있다고 조금만 더 뻗으면 골인할 거 같다고 파이팅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결과는?


첫 골 성공!!


정말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들 녀석이 스스로 공을 던져서 골을 넣은 사실이 너무나 기쁜 나머지 끌어안고 뽀뽀하고 하이파이브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저는 예전에 잠시 읽었다가 의욕을 잃어버린 뒤로 덮어 버렸던 책들다시 꺼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 메모장 어디든 쓰고 싶은 게 있다면 써 내려갔습니다.


달걀 껍데기 속 작은 병아리가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아들의 모습에서 보게 됐으니 저 역시 알 수 없는 감동을 받았나 봅니다.


지금 몸이 아프고 정신적으로 힘든 것들이 다 나를 둘러싼 알껍질을 깨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용기가 조금 생기더군요. 불혹을 넘긴 중년의 나를 병아리에 비유하자니 우습긴 하지만 아직 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으니 애송이가 맞긴 하죠.


'내 나이에는 이래야 한다'는 굴레에서 벗어나서 지금부터라도 조금 더 단단하게 마음을 키워나가고 싶어졌네요. 슛을 성공한 아들 녀석의 가르침에 고맙다고 전해야겠습니다.


아들의 골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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