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너희들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언제 가장 설렜는지 생각해 봐. 아빠랑 엄마는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계획을 짜고 숙소를 예약하고 짐을 싸서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까지가 가장 설레더구나. 막상 여행지에 가서는 하는 게 다 비슷했지. 짐을 풀고 여행지를 돌아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들어와서 뻗어버리고...
아빠는 행복도 여행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단다.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고, 어떤 곳을 갈지 설레어하며 계획을 짜고, 우리가 잠잘 곳은 어떨까 기대하며 숙소를 예약하고, 안전 운전을 하며 목적지로 가게 되는 그 과정들이 그냥 즐겁더라고.
이걸 행복과 비교해 보니 이제야 아빠는 한참을 잘못 생각하고 살아왔음을 느끼게 되더라. 분명 살면서 그런 과정들이 즐거웠을 텐데 충분히 즐기질 못했던 거였지.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 28살, 사회초년생이었던 과거의 나보다는 지금에 와서야 훨씬 일을 즐기면서 하게 된 거야. 근데 일에 대한 욕심은 오히려 그때보다 많이 줄어들었어. 이상하지 않아? 일 욕심은 과거보다 적은데 오히려 일을 즐긴다니 말이야.
어릴 땐 일 욕심으로 인해 일을 즐길 수가 없더라고. 예전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장백기라는 인물이 있었어. 그도 철강팀에 신입으로 들어가서 복사나 문서정리 같은 잡무만 하게 됐지. 나중에는 조금씩 성장하며 업무에 자신감도 붙게 되고 신입이라는 딱지도 뗄 수 있게 됐는데 이 캐릭터를 보고 느꼈던 감정이 아빠가 사회초년생이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그대로 공감되어 전해졌었지. 더 큰 프로젝트 일을 도맡아 하고 싶고 더 빨리 승진하고 싶었던 욕망이 컸지만 현실은 문서정리'나' 하고 있는 처지라고 생각했었어.
문서정리'나' 하는 사람에게는 문서정리가 하찮은 일이라 여기겠지만 그것 역시 엄연한 회사일의 일부이며 스스로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 거야. 더 큰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더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거지.
그럴 땐 문서정리가 하찮게 느껴지더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해. 내가 이 문서의 일부를 누락해 버린다면 업무가 어떻게 될지를 말이야. 복잡한 금액에 0 하나 빼거나 더해버리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생각하면 아찔하지 않겠어?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흘렀네. 아빠는 초반에 말했듯이 여행과 행복을 비슷하다고 했었어. 언젠가는 모든 걸 극복하고 마침내 행복하다고 해버리면 행복은 그것으로 너희들의 인생에서 마침표를 찍게 돼. 행복의 끝이란 게 어딨냐?
아빠는 '나중에 행복해야지'보다는 '지금이 행복한 순간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어. 그렇게 되면 결과의 순간보다는 노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즐길 수 있게 될 거야. 아빠는 글의 마침표에 뿌듯해하기보다는 하나씩 생각하며 글자를 적는 이 순간순간이 행복하단다. 그리고 잠시 쉼표를 찍는 아빠 인생의 지금 이 시기도 행복하구나.
아빠는 짧았던 청춘의 시간을 뭐 때문에 그리도 방황하고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더라. 나중에는 어떤 목표였는지도 잊은 채 살아가게 되니 더더욱 목표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게 더 낫겠다 싶어.
목표가 행복이라면 그 행복에는 끝이 있을 테니 아빠는 더 이상 행복하기 위해 살진 않을 거야. 이제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따금씩 마주치는 기분 좋은 순간들을 그냥 맞이하려고 해. 벽이 있다면 잠시 기대서 쉬면 되고 길이 나오면 그냥 걷는 거지 뭐.
과정을 즐겨보자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