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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원 Jun 01. 2024

쇠사슬이 발에 채워진 코끼리

어린 코끼리가 사육사에 의해 발에 굵은 쇠사슬이 채워져 나무에 묶여 있습니다. 이 어린 친구는 쇠사슬을 풀어보려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지요. 


시간이 흘러, 코끼리는 성체가 되었고 굵은 쇠사슬을 단번에 끊을만한 힘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코끼리는 더 이상 쇠사슬을 풀려고 하지 않네요. 과거의 경험 때문에 쇠사슬을 풀 수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저의 초등학생 시절 장래 희망은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비웃지 않았습니다. 저의 장래 희망을 들은 친구 모두 그 이상의 원대한 꿈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대통령이 되고 싶은 꿈은 솜사탕이 입안에서 녹듯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말을 꺼내면 놀림을 받게 되었고 선생님조차도 좀 더 현실적인 장래 희망을 적어내라고 다그쳤죠. 그래서 저는 과학자를 적어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친구들은 저마다의 꿈을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는 대학교가 어디인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살아보니 이 점이 가장 후회로 남게 되더군요. 분명 어릴 땐 생생하게 꿈꿨던 나의 미래가, 쇠사슬이 박혀 있는 나무기둥과 몇 미터 되지 않는 거리에 이어진 새끼 코끼리의 발처럼 제한장치가 생겨버렸더군요. 그마저도 제자리를 맴돌다 보니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그 거리는 짧아졌고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에서 하면 안 되는 게 많아진 삶을 지나 보니 제 스스로 제 능력의 한계를 짓지는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20대에는 10대 때 조금만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갈걸.

30대에는 20대 때 조금만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갈걸.

40대에는 30대 때 조금만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재테크를 할걸.

50대에는 40대 때...

60대에는 50대 때...


이러다가 죽기 직전에는 그전 날에 뭘 하지 못한 걸 후회하고 죽을 것 같더군요.


옛날에 한 TV프로그램에서 80대 할머니께서 하신 인터뷰가 생각나네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그때 할머니는 40대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때라면 뭐라도 했을 것 같다면서요.


저는 지금 할머니께서 돌아가고 싶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셨던 그 40대를 지나가고 있는 중인데요. 인생의 바닥을 제대로 찍었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절망감을 맛보는 중에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걍생살기로 마음먹었는데 이 '걍생살기'가 그냥 살아나가자는 의미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뭐라도 용기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기를 그냥 지나치는 건 쇠사슬을 못 끊고 성체가 돼버린 코끼리와 다를게 뭐가 있을까요?


앞서 언급한 그 코끼리는 아마도 관람객의 즐거움을 위해 사로잡힌 불쌍한 코끼리였을 겁니다. 타인을 위한 삶이 아닌 진정한 내 삶을 위해서는 이제 발에 묶인 이 사슬을 끊고 저 천막을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딱 그만큼의 용기만 가지면 될 것 같습니다. 


천막 밖에는 코끼리의 얼굴에 따뜻한 햇빛을 내리쬘 수도 있고 천둥번개가 치며 비를 뿌릴 수도 있겠죠. 햇빛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세찬 비라도 상관없습니다. 발에 묶인 쇠사슬은 이미 끊어져있고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세차게 내리는 비라도 언젠가는 그치게 되어있으니까요.



이제 저의 걍생살기는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패도 소중한 인생의 자산이라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다음편부터는 '아빠의 인생 오답노트'라는 이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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