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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원 Jul 21. 2024

비 갠 뒤 일요일 아침

축축한 일요일 아침이다.

아침 일찍 눈이 떠지는 건 나이 먹은 덕인지 습관 덕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일찍 일어났다.

출퇴근할 때마다 내 두 다리가 되어주는 싸구려 자전거에 무심코 몸을 실었다.


잘 때 입었던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 그대로 나왔다.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반대편에서 올 때마다 조금은 위축이 되었다.


비가 개고 나니 공기는 습하지만 왠지 상큼한 기분이 들었다.

풀 냄새도 오랜만에 맡았다.

한참을 달려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십 수년 전 시골길은 농약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요즘은 농약 냄새도 나지 않네?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은 발전되고 있나 보다.

인적이 드문 길을 가고 있자니 자전거 페달에 자꾸 고개를 내민 강아지풀들이 다가와 내 발을 간지럽힌다.

간질간질 거리는 감촉이 좋았다. 아... 풀독...


이른 아침, 오토바이를 운전해서 자신의 논밭으로 가시던 아저씨의 너른 등짝을 부러워하며 지나치는데 뒤에 탄 부인은 고개를 돌렸을 때야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남편의 허리춤을 꼭 붙잡고 의지하며 가는 모습에 농사짓느라 고생한다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 반, 든든한 남편이 있어 좋겠다는 마음 반이 들었다. 큰 덩치 부럽소.


간간이 보이는 무궁화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분명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인데 그동안은 왜 이리 보기가 힘들었던 걸까?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음악을 들으며 자전거를 탔다. 학창 시절 즐겨 들었던 악틱 몽키스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다. 등산할 때 100곡이 저장되는 효도 라디오를 틀면서 다니시는 할아버님들처럼 나도 그렇게 닮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1시간을 조금 넘겨 집으로 도착했다. 아이들은 깨어 있었고 아내는 아직 꿈나라 여행 중이다.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돌린 뒤 아이들과 짜파게티를 끓여서 나눠먹고 밖에서 캐치볼을 했다. 아마 오늘 이것이 마지막 일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리에 힘도 풀렸고 눈에 힘도 점점 풀린다. 그나마 아직 정오가 지나지 않은 시간이 나를 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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