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백업해 줄 순 없나요?

상상맨의 추억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by 김주원

간혹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추억의 개그라던지 예전에 유행했던 패션과 유행어들을 보게 된다. 지금 복고를 새롭게 즐긴다는 뉴트로가 유행이긴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직접적인 경험은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추억들은 키워드로 이어져있다. 마이클 잭슨, 너바나, 서태지, 듀스, 듀스의 김성재, 메탈리카, 레이지어겐스트더머신, 핑클, 유재석, 강호동 등...


내 기억 속 대부분은 뮤지션 아니면 예능 MC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 보면 연도별로 대유행했던 음악을 기준으로 추억의 실마리가 잡히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중학생이던 1995년도에 듀스의 김성재가 솔로 컴백했던 TV 프로그램은 모든 반 친구들이 다 본 걸로 기억한다. 남자애들은 이현도 팬이 많았지만 그 누구도 간지 그 자체인 김성재의 패션과 춤 선에 딴지를 걸 순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에게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에 우리는 단체로 쇼크를 먹었었다.


아무튼 얘기의 핵심은 의외로 내가 나의 추억에 대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왜 당시의 가요 프로그램이나 유행어는 기억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 대한 추억은 희미한 걸까?


시시하게 살아서일까? 그렇지 않다. 평범했지만 시시하게 살진 않았다. 뭔가 무의식을 건드릴만한 키워드가 딱 내 머리를 스치면 그곳의 한 구석에 잠자고 있던 추억이 떠오르긴 한다. 예를 들면 친구가 갑자기 어릴 때 19금 비디오를 같이 봤던 시절을 말하면 그에 대한 추억이 술술 나오기 시작한다. 까까머리 꼬맹이 시절,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는 잘 사는 친구 집에서 19금 비디오를 몰래 킥킥대며 보고 나와서 놀이터에서 그 친구 롤러스케이트를 빌려 타다가 무릎이 깨지는 바람에 집에 가서 엄마한테 혼난 것까지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서 소중한 추억이 쌓였는지는 알 수 없다. 기억력이 남다른 친구의 말을 믿는 수밖에...


그래서 생각한 오늘의 상상맨의 상상은 바로 추억 백업 시스템이다. 뇌과학이 얼마나 발전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의식에 잠들고 있는 1분 1초가 소중했던 내 어릴 적 추억들을 다 백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서 죽기 직전에 하이라이트로 타임랩스처럼 재빠르게 딱 보고 미소 지으면서 쿨하게 눈 감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자에 대해 잘 모르는 상상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