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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이 Apr 01. 2020

머릿속 잡음을 지우는 방법

일기 쓰기의 힘

내가 너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게 되면 좋겠어.
그동안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비밀까지도.
그래서 너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기를.




안네 프랑크의 실제 일기장



1942년 6월 12일, 안네는 일기장의 첫 장에 이런 글귀를 적었다. 그 당시 안네는 십 대였다. 안네는 혼란을 느끼거나 호기심이 생길 때에도 일기를 썼지만, 다른 사람들이나 식구들에게 자기 마음속의 고뇌를 털어놓지 않기 위해 일종의 치유 형식으로 일기를 썼다. 일기 속 여러 글 중에서도 특히 통찰력 넘치는 명문으로 꼽히는 문장이 있다.


“사람들의 인내심보다 종이의 인내심이 더 큰 것 같다.” 


모든 게 너무도 힘들고 부당하고 낯설었던 안네로서는 이런 감정을 쏟아낼 만한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10대의 어린 안네도 한 일인데, 우리가 못할 이유 있을까?


고대와 현대에 일기 쓰기 기술을 연마했던 사람들을 나열해보자면 터무니없을 만큼 많고 그 면면이 작가부터 영화감독, 정치가 운동선수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울 만큼 다양하다. 그중에는 오스카 와일드, 수전 손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빅토리아 여왕, 존 퀸시 애덤스, 랄프 왈도 에머슨, 버지니아 울프, 존 디디온, 숀 그린, 메리 체스넛, 브라이언 코플먼, 아네스 닌, 프란츠 카프카, 테니스 선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벤자민 프랭클린 등이 있다.


이들 모두가 일기를 썼다.


물론 이 목록에는 우리를 잔뜩 주눅 들게 하는 이름이 가득하다. 그러나 안네 프랑크는 열셋, 열넷, 열다섯 살의 소녀였다. 그만큼 어린 안네도 할 수 있었던 일이라면 우리가 그걸 하지 않는 데에 어떤 핑계를 댈 수 있을까?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부터 미셀 푸코까지

그들이 추천하는 잡념 지우는 방법



미셀 푸코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도 안네처럼 저녁에 일기를 쓰며 자신을 돌아봤던 것으로 보인다. 세네카는 친구에게 자신은 바깥에 어둠이 깔리고 아내가 잠자리에 들고 나면 “내 하루를 온전히 돌아보면서 조금도 숨김없이 그날 했던 행동과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시 돌아본다네”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에야 ‘자기반성을 한 뒤에 자는 잠’이 특히 더욱 달콤하다는 걸 깨달으며 잠을 청했다. 오늘날 그의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세네카가 밤마다 일기를 쓰면서 내적인 고요를 얻으려 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셀 푸코는 고대의 글쓰기 양식이자 자신에게 쓰는 글이라는 의미의 후폼네마타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일기를 쓴다는 건 마음속의 동요와 어리석음을 몰아내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이고 철학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하면서 일기 쓰기를 ‘영적 전투의 무기’라고 일컬었다. 머릿속에서 짖어대는 개를 조용히 시킬 수 있도록, 다가올 하루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난 하루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루 동안 어떤 통찰을 얻었는지 메모해보라. 일기장을 스치는 손끝을 통해 지혜를 느낄 수 있도록 시간을 내보라.







어떻게 쓸지 모르겠다면?



최고의 일기는 바로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일기 속의 글은 읽는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을 위한 글이다. 긴장을 풀고 마음을 느긋하게 하기 위해 쓰는 글이자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일기를 쓴다는 건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가?

큰일을 이루기 위해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은 무엇이 있을까?

어째서 이런 일에 내가 이토록 흥분하는 걸까?

지금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일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어째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데 이토록 신경 쓰는 걸까?

내가 지금 회피하고 있는 어려운 일이 있는가?

내가 두려움을 지배하고 있는가, 아니면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가?

오늘 겪은 어려움이 어떤 식으로 내 성격을 드러낼 것인가?



일기 쓰기는 머릿속이나 마음속에 응어리를 쌓아두는 대신 종이 위에 쏟아붓는 일이다. 꼬리를 무는 잡생각을 내버려 두거나 섣부른 추측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대신 종이에 적어 내려가며 스스로 검증하게끔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일기를 쓰면서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을 종이에 적어보면 자신의 상황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불안과 두려움, 좌절감이 마음에 넘칠 때 흔히 잃게 되는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일기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는 왜 쓰느냐의 문제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 일기는 마음속의 짐을 덜기 위해서, 마음속에 떠도는 생각을 가라앉히고 정리하기 위해서, 통찰력 있는 생각과 해로운 생각을 구분 짓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일기를 쓰는 데에는 옳은 방법도 그른 방법도 없다. 오직 중요한 건 그저 쓰는 것이다.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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