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반으로 꺾인 사람,
멍하니 기도하듯 혼자 중얼대는 사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멈춰 있는 사람,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
마치 호러 영화의 좀비를 연상케하는 이 모습! 대낮의 미국 필라델피아 거리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모두 마약에 취한 중독자들이죠.
마약 중독자들로 가득한
미국 필라델피아 거리
필라델피아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최대 도시이자, 미 북동부에서는 뉴욕시 다음으로 큰 도시입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수도인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인데요.
이런 도서의 길거리가 어떻게 마약 중독자들이 넘쳐나는 곳이 되었을까요?
어떤 대상에 중독되는 데 가장 큰 위험 요소 중 하나는 그 대상에 대한 용이한 접근성이다. 중독을 일으키는 대상(이하 ‘중독 대상’)을 구하기 쉬울수록 시도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미국에서는 의사의 처방만 있으면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중독이 문제 시되곤 한다)의 급속한 확산은 이 사실에 대한 비극적이면서도 강력한 예시다. 1999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에서는 오피오이드 처방(옥시콘틴, 바이코딘, 듀라제식 펜타닐)이 4배로 증가했다. 미국 전역에 그러한 오피오이드가 널리 유통되면서 오피오이드 중독률과 이에 관한 사망률 역시 증가했다.
공중보건 훈련소 및 프로그램 협회에서 임명한 대책위원회는 2019년 11월 1일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냈다. “강력한 (긴 효과는 물론 높은 효능까지 갖춘) 처방 오피오이드가 대대적으로 확대 공급되면서 처방 오피오이드에 대한 의존성이 급격히 늘었고, 많은 사람이 펜타닐과 그 유사체를 포함한 불법 오피오이드로 옮겨가는 결과를 낳았다. 그중 후자는 나중에 과다복용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야기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오피오이드 의존 장애가 “오피오이드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결과”라고 언급했다.
_<도파민네이션> 中
책 <도파민네이션>에 따르면 마약에 대한 쉬운 접근성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합니다. 오피오이드 처방 의존도가 높아진 사람들은 결국 펜타닐과 유사한 불법 오피오이드까지 넘어가버린 것이죠.
실제로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 속 사람들의 대부분은 합법적 펜타닐이 아닌, 혼합 약물이 섞인 불법 펜타닐 중독자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슬픈 현실은 켄싱턴 마약중독예방센터 사회복지사조차 “필라델피아는 이미 늦었다”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필라델피아는 이미 늦었다.
전국의 다른 지역이 이를 피할 방법이 있다면,
우리 얘기를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
_필라델피아 켄싱턴 마약중독예방센터 사회복지사 숀 웨스트팔
마약 중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손쉬운 공급과 더불어, 예전보다 강력해진 중독성에 있습니다.
오늘날 옥시코돈, 하이드로코돈, 하이드로모르폰 같은 강력한 제약 등급의 오피오이드는 정제, 주사액, 패치, 비강 스프레이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2014년, 중년의 한 환자는 선홍색 펜타닐 막대사탕을 빨며 내 사무실로 들어오기도 했다. 합성 오피오이드인 펜타닐은 모르핀보다 50~100배 더 강하다.
오피오이드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약물 역시 과거보다 지금이 더 구하기 쉽고 중독성이 더 강하다. 오늘날의 대마초는 1960년대의 대마초보다 5~10배 더 강하다. 그에 따라 다중약물요법(여러가지 약물을 동시에 혹은 바로 연이어 쓰는 방법)은 접촉 기회 증가와 효능 강화와 함께 약물 중독의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_<도파민네이션> 中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중독의학 교수이자 중독치료센터 소장인 <도파민네이션>의 저자 애나 렘키는 중독과 도파민의 연결성을 강조합니다.
쾌락과 고통은 저울의 서로 맞은편에 놓인 추처럼 작동하는데 그 저울은 평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것이죠. 따라서 쾌락이 깊어질수록 뒤에 고통도 똑같이 수반된다고 역설합니다.
우리의 뇌에 저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중간에 지렛대 받침이 있는 저울이다. 평소에는 저울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지면과 수평을 이룬다. 우리가 쾌락을 경험할 때, 도파민은 우리의 보상 경로에 분비되고 저울은 쾌락 쪽으로 기울어진다. 우리의 저울이 더 많이, 더 빨리 기울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저울에 관한 중요한 속성이 하나 있다. 저울은 수평 상태, 즉 평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한쪽이나 다른 한쪽으로 오랫동안 기울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울이 쾌락 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저울을 다시 수평 상태로 돌리려는 강력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self-regulating mechanism이 작동한다. 이러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은 의식적 사고나 별도의 의지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반사 작용처럼 균형을 잡으려 한다.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반작용으로 수평이 되고 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_<도파민네이션>
애나 렘키의 말은 쾌락의 골이 깊을수록 고통의 무게 또한 늘어난다는 것인데요. 지금 필라델피아 상황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번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몇 배 더 강력한 신종 마약이 나올수록 그만큼의 고통도 늘어나는 것이죠.
아니나 다를까 미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하루 평균 196명이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다고 합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독자가 늘면서 2021년 사망자 수는 2019년 대비 94%나 증가했습니다.
하루 196명이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고 있는 미국
세상은 점점 결핍의 공간에서 풍요가 넘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쉽게 도파민을 자극할 수 있는 물질들이 다양해진 요즘, 필라델피아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중독'은 어떻게 다뤄질까요?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비단 필라델피아 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더욱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