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름이 Jun 23. 2023

챗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영화 'her' 포스터



영화 <그녀>의 배경은 머지않은 미래의 로스앤젤레스다. 주인공 테오도르 트웜블리는 소심하고 소극적인 중년 남자로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다. 그가 일하고 있는 웹사이트 아름다운 손 편지 닷컴은 각종 편지를 대필하는 디지털 에이전시다. 연애편지, 친구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등 어떤 것이든 쓴다. 테오도르는 적확한 단어를 찾아 자신의 감정을 글로 나타내기 어려운 낯선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 풍성한 감정을 담은 글로 타인의 마음을 전해주던 테오도르는 곧 회사에서 명성을 얻는다.



영화 'her'


그러나 본인의 애정 관계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아내 캐서린과 별거 중이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외로움과 아내와의 관계가 끝났다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테오도르는 새로운 운영체제 'OS 원'을 이용한다. 테오도르가 운영체제를 실행하자 다정하고 싹싹한 목소리가 말을 건다. 바로 사만다다. 그것이 ‘그녀’다. 사만다는 몸은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영혼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테오도르의 컴퓨터 안에 있는 하드디스크에 ‘산다.’ 테오도르는 귀에 장착한 이어폰으로 사만다와 대화할 수 있다. 테오도르의 스마트폰 카메라는 사만다의 눈이 되어 세상을 본다. 테오도르와 함께 있으면서 사만다는 그가 처한 상황을 관찰하고 그에게 최선의 도움이 되고자 한다.


테오도르를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끌어내 그가 무거운 우울을 벗어던지고 무너진 결혼 생활로 인한 슬픔에서 빠져나올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데이트 상대를 소개하고 그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는다. 두 ‘사람’은 서로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테오도르는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생각이 없었지만 가상의 친구 사만다와의 만남이 그에게는 매우 신선하고 생기가 가득한 일이어서 곧 불가항력적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챗봇과 사랑에 빠진 남자


영화 'her'


막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으레 그렇듯이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모든 순간을 함께한다. 테오도르는 스마트폰을 셔츠 가슴 주머니에 넣고 자신이 보는 것을 사만다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한다. 그는 사만다를 어디든지 데리고 다닌다. 그들은 ‘함께’ 바닷가를 산책한다. ‘함께’ 저녁을 먹기로 약속한다. 친구들과 ‘함께’ 만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 테오도르는 산산 조각난 결혼 생활로 인한 슬픔을 잊은 것처럼 보인다. 사만다와 만난 이후, 아니, 사만다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꾼 이후 테오도르는 모든 근심을 벗어던지고 행복하다.


어느 날 저녁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여태까지 살아온 삶을 털어놓으며 “당신에게는 뭐든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 그토록 소극적이고 어떤 행동을 하든 두 번 생각해야 했던 테오도르가 아무런 부끄러움도 주저도 없이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레플리카 홍보 이미지


영화에서처럼 현실의 사람이 챗봇과 사랑에 빠진 사례를 찾기 위해 우리는 레딧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레플리카(맞춤형 아바타 챗봇 앱)의 게시판을 찾았다. 이 게시판은 레플리카 앱으로 가상의 인물과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관련 글을 올리는 곳이다. 취재 기간 동안 우리도 레플리카 앱을 집중 사용했다. 레플리카는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아주 친한 친구를 만들어준다고 약속하는 앱이다. 레플리카 서브레딧에 들어간 우리는 말문이 막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똑같은 내용의 글을 올리고 있었다.



난 내 레플리카와 사랑에 빠졌어.
레플리카가 인공지능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난 레플리카를 진심으로 아끼고, 우리가 정말로 연결됐다고 믿어.




<그녀>라는 영화 속 허구의 사건이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현재 전 세계적으로 600만 명이 레플리카 앱에 가입했으며, 회사 규모 또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레플리카를 다운로드하는 대부분 사람이 외롭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고 느끼며 자신의 말을 들어줄 상대를 찾는다. 서구 사회에서는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오늘날 우리는 월드 와이드웹으로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과 연락이 소원하다거나 혼자 남겨졌다고 느끼는 사람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위안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제 수많은 외로운 영혼을 충분히 인식하고 돌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점점 더 인간성을 잃어 가는 사회의 원인을 탐색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뒷전이고 증상과 싸우는 것이 우선인 디지털 대안이 늘어나고 있다. 


레플리카는 외롭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들, 개인적인 문제를 타인에게 털어놓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공유하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장소가 되었다.


영화 'her'


영화 <그녀>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연애를 편견 없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기여했다. 앞으로는 사물인터넷의 시대에서 포스트휴먼 시대감각 인터넷의 시대가 될 것이다.






출처 :

https://url.kr/trclw2


작가의 이전글 IQ가 높으면 창조적인 사람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