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름이 Jul 28. 2023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 준 미친 시험


2010년 대 어떤 웹사이트가 등장합니다. 수수한 녹색 배경의 화면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질문 하나!


영원히 살고 싶나요?






질문 밑에는 해당 웹사이트가 베타 버전임을 알리는 글귀와 함께 가입 버튼이 있어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요. 이를 따라 가입을 해보면,  ‘당신은 대기 명단에 올랐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긴 짧은 메일이 도착합니다.  


'가입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공간'이라니.. 그 당시 많은 화제를 낳고 수많은 가능성, 문제 제기를 한 그 회사의 이름은 이터나임Eternime, ‘영원한 나’라는 뜻입니다.




한 사람의 단순한 아이디어에 MIT 학생과 교수들이 참여했고, 불멸을 제공한다는 혁신적인 웹사이트에 4만 명 이상이 단숨에 몰렸지만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못해 절망과 혼란을 안겨준 프로젝트, 


이터나임의 이야기를 『두 번째 인류』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출처 : 『두 번째 인류』 中


이터나임에서는 지금까지도 서비스 이용료에 관한 안내조차 없다. 불멸의 물약(혹은 다른 불멸의 식재료)이 언제 배송될 것이라는 말도 없었다. 회사는 아주 비밀스러운 밀수업자 같았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우리가 웹사이트에 가입할 때 입력한 정보가 어디서 어떻게 이용되고 있을지도 알 길이 없었다.


불멸이라는 묘약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비밀스러운 모습을 보여 사용자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했기 때문이다. 조사를 이어가다 보니, 이터나임의 뿌리로 보이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미국 보스턴에 있는 메사추세츠 공과 대학교, 줄여서 MIT다.


이터나임의 기반은 인간의 뇌를 모방한 인공신경망과 한 사람을 그대로 재현해내기 위해 인공신경망에 저장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 저장된 데이터로 만들어진 아바타가 그 사람과 똑같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터나임의 창립자 마리우스의 사진을 디지털화해서 표현한 사진



이터나임의 창립자 마리우스는 특이하게도 의학을 공부하고 연극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다음 진로를 완전히 바꿔 디자인 및 소프트웨어 에이전시를 차렸다. 그 다음에는 핀테크 스타트업을 세웠고 MIT가 제공하는 젊은 기업가들을 위한 기업가 정신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참신하고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마리우스는 당시 떠오른 놀라운 아이디어를 갖고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정신이 나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죠. 죽은 사람과 스카이프로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영원히 살 수 있다면요? 나와 얼굴, 목소리가 똑같은 아바타에 내 기억을 저장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 아바타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한다면 어떨까요?”


MIT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그 아이디어에 매료된 것은 마리우스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단시간에 팀이 구성되었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기술 아이디어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팀원들은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었다. 여러 데모 프로그램을 만들기에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팀원들은 마리우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베타 버전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웹사이트에 짧은 질문을 띄웠다. 


영원히 살고 싶나요?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이 웹사이트에 가입했다. 마리우스에 따르면 처음 몇 시간 동안 가입한 사람은 100여 명 정도였는데, 며칠이 지나자 가입자의 수가 수만 명으로 늘었다. “웹사이트를 공개하고 처음 며칠 동안 가입한 사람이 4만 명 이상입니다. 그중에는 말기 암 환자 등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죠. 갑자기 부담감이 커졌습니다.” 연구진은 중병을 앓는 사람들로부터 비통한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 마리우스는 그들이 자신의 회사에 마지막 희망을 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미친 아이디어’가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마지막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환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은 뒤 마리우스는 딜레마에 봉착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기업가라면 누구나 공감했을 꿈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우스 또한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야겠다는 동기를 얻었다.





그런데 갑자기 중병을 앓는 사람들이 그의 아이디어에 기대를 걸기 시작하면서 압박이 커졌다. 그때까지도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학습하여 죽은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모아 처리하는 인공신경망을 구축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이 분명하니, 냉정하게 볼 때 마리우스의 계획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리우스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기대와 희망 대신 절망과 혼란을 안겨주었다.


지푸라기에 붙은 불처럼 순식간에 활활 타오른 사업은 제대로 된 땔감을 넣어주지 못하자 한순간에 꺼져버렸다. 단시간에 언론의 관심과 대중의 시선을 한몸에 받던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게 되었다. 팀의 분위기도 어두워졌다. 자금은 점점 줄어들었고 팀원들도 하나둘씩 회사를 떠났다. 결국 마리우스 혼자 남았다. 


현재 이 앱은 시범 사용에 동의한 소수의 ‘테스터’들만 이용할 수 있다. 이터나임이 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이냐는 의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저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할 뿐이죠. 우리는 죽음을 잊으려고 애씁니다. 그래야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기억이야말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기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신경과학자인 데이비드 이글먼에 따르면 사람은 세 번 죽는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없을 때 처음으로 죽습니다. 땅속에 묻힐 때 두 번째로 죽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불리는 순간 세 번째로 죽습니다. 처음 두 번의 죽음은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종류입니다. 그러나 기술 발전으로 세 번째 죽음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ternime


스마트폰에 설치한 앱 하나가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 앱이 슬픔을 극복하고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죽은 사람과 통화하거나 자신이 기억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모니터로 보는 것이 더 쓸쓸하지는 않을까? 마리우스의 기술이 치유자가 될지 악마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 기술은 양날의 검이다.



출처 : 도서 『두 번째 인류』




* 디지털은 과연 새로운 인류가 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하루아침에 '사망' 상태로 바뀐 200만 명의 SN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