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잊고 싶은 기억 혹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자꾸 떠올라 밤마다 괴로웠던 적이 있으신가요?
저도 원치 않은 실수, 노력 뒤 얻은 실패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잠을 설치거나 집중하지 못한 시간들이 정말 많은데요, 특히 공부에 매진했던 학생, 취업 준비생 신분이었을 때 그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것 같아요.
이런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해 스스로의 꿈을 향해 묵묵하게 걸어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자 평생을 '공부하는 노동자'로 살고 계신 한동일 교수님!
교수님의 공부하는 삶을 담은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에서는 '기억의 정화'를 통해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정화하는 과정을 거쳐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Memoriae purificatio.
메모리애 푸리피카티오.
기억의 정화.
출처: 도서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
정화를 의미하는 라틴어 명사는 ‘푸리피카티오purificatio’인데, 이는 ‘깨끗이 하다, 청소하다, 말끔히 씻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푸르고purgo’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푸르고purgo’ 동사는 모두 ‘불’을 의미하는 고대 이탈리아어 ‘pūr, pun-’과 인도 유럽어 ‘péh2-ur’에서 유래했습니다. ‘정화’라는 말이 라틴어와 고대 이탈리아어, 인도 유럽어 모두 P[प(Pa)]라는 자음으로 시작한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것은 인도유럽어에서 정화의 개념을 자음 ‘p’로 나타냈는데, 이는 정화하는 행위를 동사 어근 ‘pū’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모 언어인 산스크리트어가 형성한 문명의 최종 목적은 인간 존재를 영적으로 정화하고, 불멸과 영생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기억에 매여 있으면 ‘여기서 지금hic et nunc, 히크 에트 눈크’ 해야 할 일에 충실해지기 어렵습니다. ‘지금 여기’를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기억의 정화는 ‘지금 여기’를 잘 살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자꾸 떠오르는 기억부터 서서히 정화해나가기 바랍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며 노력했습니다. “기억의 정화는 때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자기 부정을 요구한다고 해도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정화되지 않은 기억 속에는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습니다. 그 감정의 앙금은 맑게 가라앉아 있는 흙탕물과 같습니다. 조금만 흔들리면 언제든지 다시 물을 뿌옇게 만듭니다. 기억이 아주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흙 찌꺼기만 깨끗이 걸러내 정화하면 맑은 물을 얻을 수 있듯이, 기억이 정화되면 그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마음은 평온합니다. 그렇게 깨끗하고 가벼워진 기억은 어느 순간 정말 사라지기도 합니다. 때론 좋은 기억도 정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기억을 정화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이는 공부하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기억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역시 기억에 집착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억의 정화’는 몸을 가둔 채로 공부하면서도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정신이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때는 역설적으로 몸을 가두었을 때인 듯합니다. 전쟁 중에 포로로 감옥에 갇혀서도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비가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애벌레 시절과 번데기의 시절에 몸을 가두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공부뿐 아니라 무언가 사람의 정신세계가 한 단계 성장하고 고양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대인들은 인간 존재를 영적으로 정화하고, 불멸과 영생에 도달하기 위한 의식의 일환으로 동틀 녘, 정오, 일몰, 이렇게 하루 세 번 몸을 씻었다고 합니다. 공부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틈이 날 때마다 부정적인 기억을 자주 씻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명상이나 기도는 그런 면에서 공부하는 사람에게 아주 좋은 의식입니다.
끝으로 부정적인 생각, 괴로운 생각, 두려운 생각이 들 때 그 생각을 밀어내기 위한 ‘다른 행동’으로 잠시 책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고등학생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면 부모님들은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학교나 학원,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하는 것만이 공부는 아닙니다. 자신의 환경과 한계를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돕는 그 모든 것이 공부입니다.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잠시 벗어나 사람의 이야기, 세상의 이야기를 하는 책을 하루에 몇 쪽씩이라도 읽고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목표하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꾸준히 이런 독서를 의식적으로 한다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걱정이나 염려에서 벗어나 멀리 보는 통찰의 눈이 생길 것입니다. 논술 시험 준비를 따로 하는 것도 좋지만 이와 같은 습관은 어쩌면 더 좋은 준비가 되는 동시에 수험 생활 내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당장의 시험에서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한결같은 자세로 공부하는 힘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 정화해야 할 기억은 무엇인가요?
Ne memineritis priorum et antiqua ne intueamini.
네 메미네리티스 프리오룸 에트 안티콰 네 인투에아미니.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말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말라.
— 이사야 43, 18
*인생의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