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렸을 적에 수업 시간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교과서나 공책 귀퉁이에 낙서를 끄적거린 경험, 있으시죠?
저 또한 회의 시간에 가~~끔 지루해지면 노트 귀퉁이에 땡글땡글 정체 모를 낙서를 하곤 하는데요.
우리는 언제부터 낙서를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늘 항상 펜과 종이가 있으면 낙서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림이든, 도형이든, 문장이든,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이든 간에요.
하지만 낙서에도 역사가 있다는 사실!
이런 낙서는 현재의 우리들만 했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많은 유물의 기원을 알려주는 도서 『세상 모든 것의 기원』에 따르면 이집트 카이로 남부에 위치한 아트리비스(Athribis)라는 곳에서 2,000년 전 어린 학생이 끼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요.
그 무렵 이집트에서는 주로 토기 쪼가리를 노트처럼 활용했는데, 반복적으로 쓴 글자와 여백 부분에 귀여운 아이의 자화상을 그린 낙서 그림도 함께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에는 낙서가 국보로 지정된 사례도 있다고 하는데요.
과연 우리의 낙서도 국보가 될 수 있을지, 지금 바로 알아볼까요? :)
출처 : 도서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인간은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양손의 자유다. 문명은 인간의 손끝에서 피어났다. 두 손이 자유로워진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고고학 연구를 하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유물을 만난다. 황금이나 보석처럼 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물도 눈길을 끌지만, 옛사람들이 남긴 사소한 흔적에서 새로운 학문적 사실을 발견할 때의 희열도 이 일을 하는 큰 즐거움이다. 그런 유물 중 하나가 옛사람들의 끄적거림이 남아 있는 물건들이다. 익명의 필체로 남은 우리 조상들의 낙서가 들려주는 재미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실크로드 및 중세 유럽 유적에서 발견되는 여러 문서에서 낙서의 흔적이 흔히 보인다. 때로는 ‘국보급 낙서’가 발견되기도 한다. 1950년대 소련 고고학자들은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노브고로드(Novgorod)를 대대적으로 조사했다.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인 12~13세기에 번성했던 이 도시는 러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몽골의 침략을 받지 않아 그 위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노브고로드는 우리나라의 경주나 일본의 나라 같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역사 도시다. 특히 노브고로드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을 종이로 삼아 쓰인 문서들이 대량으로 발굴되어 슬라브어의 기원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가히 러시아의 ‘훈민정음’ 급에 해당하는 국보들 사이에서 엉뚱하게도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유물은 ‘온핌’이라 불리는 한 아이가 쓰던 필기 뭉치였다.
한 아이가 쓰던 필기 뭉치
필기 뭉치의 내용에 성경 구절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온핌은 동네의 교회 학교에서 글을 배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온핌의 필기 뭉치 곳곳에는 흥미로운 그림과 낙서가 남아 있다. 가령, 말을 타고 동물에게 화살을 쏘는 신나는 장면에는 ‘나는 짐승이다(한판 붙자)’라고 쓰여 있고,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받는 학생들을 그린 그림에는 ‘아, 벌써 6시인데…(공부하기 싫다)’라는 낙서가 쓰여 있다. 온핌은 이 필기 뭉치를 수업을 다녀오던 길에 하수구에라도 빠뜨렸던 것일까? 온핌의 필기 뭉치는 800년 후 통째로 후대 러시아인들에 의해 발견되고,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물로 지금까지 사랑받는 중이다.
쓸데없어 보이는 낙서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었다. 2014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되었다. 호모에렉투스의 일파로 50만 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살던 자바원인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그중에는 지그재그로 낙서를 한 조개껍데기도 있었다. 당시 민물조개를 까먹었던 자바원인은 조개를 까는 날카로운 꼬챙이로 조개껍데기 위에 W 형태를 반복적으로 그었던 것이다. 아무런 의미 없이 조개껍데기를 긁었다고 보기에는 W 형태의 무늬가 일정한 간격과 리듬을 가지고 반복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현생인류가 7만 3,00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에서도 붉은 물감으로 그려진 낙서가 발견되었다. 오늘날 그래피티(길거리 벽화)의 기원인 셈이다. 프랑스에서도 후기 구석기시대의 것으로 짐작되는 여러 동굴벽화들이 발견되었는데, 라스코 동굴벽화처럼 들소나 염소 등이 장대하게 그려진 벽화들도 있지만 개중에는 아무 의미 없이 끼적인 듯한 낙서같은 그림도 종종 보인다.
문명이 점차 발달해도 낙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낙서는 터부시되는 인간의 욕망을 담아내는 통로이기도 했다. 중세 유럽의 문헌에서도 기기묘묘한 이미지의 낙서가 곧잘 발견된다. 가톨릭교회의 도그마가 인간의 삶을 강하게 지배하던 중세시대에 사람들은 억압된 마음을 낙서로 해소하기도 했다. 이와 유사한 맥락을 가진 낙서가 실크로드 둔황에서 발견되었다. 둔황은 중국 간쑤성에 있는 도시로 실크로드의 기착지다. 이곳에는 우리가 흔히 둔황석굴이라고 부르는 불교 유적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3~11세기에 이르는 고문서들이 다량 발견되었다. 이를 아울러 둔황문서라고 부른다.
그런데 학자들이 둔황문서 중 하나인 한문으로 쓰인 《금강경》을 조사하던 중 뜻밖의 낙서를 발견한다. 성스러운 불경 뒷면에는 성적 능력이 과장되게 그려진 남자의 그림과 함께 낙서를 한 본인을 ‘철로 만든 새(iron bird)’라고 지칭하며 ‘나를 만날 여신을 구한다’라는 내용이 소그드 문자(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사용된 문자)로 적혀 있었다.
최근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낙서의 긍정적인 의미가 새롭게 밝혀지는 중이다. 인간은 뇌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낙서를 하는 동안 인간의 뇌와 손은 서로 연동하여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루한 듣기 과제를 할 때 낙서를 하는 사람이 29퍼센트나 정보를 더 얻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쓰기와 낙서가 인간의 창조성에 도움이 되는 이유다. 낙서가 주는 정서적인 안정감도 무시할 수 없다. 내 주변에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낙서로 푸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루한 듣기 과제를 할 때
낙서를 하는 사람이 29%나 정보를 더 얻는다는 연구 결과
낙서의 위대함은 천재의 노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수많은 노트를 남겼는데, 그가 낙서처럼 남겨놓은 노트에는 인체 해부도부터 비행기, 낙하산 설계도 등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영감을 주는 정보들이 담겨 있다.
디지털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손에 펜을 쥐고 무언가를 끼적일 기회가 점차 사라지는 중이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인류는 점점 몸은 덜 움직이고 손가락 끝으로 터치하는 삶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또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무분별하게 주입하는 일상에 노출되어 있다. 과학기술은 점점 발전해나가는데 어찌된 일인지 문해력과 정보 인지력은 퇴보한다는 염려의 말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어쩌면 과잉된 인풋으로 지친 뇌를 쉬게 하고 그 대신 두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 당장 손에 펜을 쥐고 떠오르는 상념과 생각을 막힘없이 끼적거려보면 어떨까? 오늘의 낙서가 내일의 당신 일상에 인사이트가 되어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출처 : 도서 『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