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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이 Oct 11. 2023

한국에만 존재하는 해장 문화


일주일에 술을 얼마나 드시나요?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시작된 '술'의 문화. 혼자서, 친구와, 가족끼리, 회사에서 등 다양한 술자리가 우리 일상에 존재합니다.




특히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술자리는 피할 수 없는데요. 업무로 항상 피곤함을 달고 살지만 직장인들에게  술자리는 '피곤+스트레스 해소'를 동시에 주는 묘한 존재죠?(!!)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을 술의 힘을 빌려 말하거나, 회사의 사기나 화합을 다지는 시간을 많이 이용되는 회식과 술!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에 나오는 내용으론 '고고학 유물에 따르면 인류는 약 1만 년 전부터 와인이나 막걸리 같은 술을 주조해 마셨다.'라고 하는데요.





술 뒤에 따라오는 해장



술이 있다면 해장은 필수! 술의 역사가 긴 만큼, 해장의 역사도 길겠죠? 잡코리아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최고의 해장음식 설문이 있는데요. 국물을 즐기는 한국인의 특성(?)답게 뜨거운 국물요리가 1~5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에 국한된다는 놀라운 사실!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해장 문화'


해장의 역사와 각 나라마다 다른 해장 문화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을 살펴봐주시길 바랍니다 :)




출처 : 도서 『세상 모든 것의 기원』


고고학 유물에 따르면 인류는 약 1만 년 전부터 와인이나 막걸리 같은 술을 주조해 마셨다. 당시 인류는 지금과 신체적으로 전혀 차이가 없는 호모사피엔스(현생인류)였으므로 이들 역시 술 마신 다음 날에는 오늘날의 우리처럼 숙취를 경험했을 것이다. 이들도 숙취를 해소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을 모색했으리라. 그러고 보면 술의 역사는 곧 해장의 역사인 셈이다.


함께 해장하며 화합과 지혜를 도모하다


도원결의하는 유비, 관우, 장비의 심정으로 작당하여 술을 마셔놓고는 그다음 날에 상사나 아내의 눈치를 피해서 술에서 깨느라 고생하는 것은 동서고금 마찬가지다. 명색이 고고학자이니 몇 가지 흥미로운 고대의 독특한 해장 문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먼저 유라시아 대륙을 말을 타고 달리던 스키타이인들의 해장 문화다. 이들은 일가친척 내지 부족끼리 자주 만나지 못했다. 이들이 만나는 것은 1년에 두 번뿐이었는데, 매년 봄가을에 한데 모여 잔치를 하고 정을 나누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만나는 친척 사이가 늘 좋을 수만은 없었다. 이에 초원의 유목민들은 분쟁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함께 모여서 말젖으로 빚은 술과 더불어 대마초 연기를 마시며 질펀하게 어우러졌다.* 그렇게 해서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이들은 밤새 춤을 추고 놀았다.


* 스키타이인들은 작은 텐트 안에 모여서 솥에 뜨거운 돌을 담아 그 위에 대마초 씨 앗을 뿌린 후 그 연기를 들이마셨다.



2,400년 전 스키타이 고분에서 발견된 황금으로 만든 술과 마약을 먹는 그릇


여기까지는 여느 지역의 음주 문화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 날이다. 이들은 전날 마신 술과 대마 연기로 인해 쓰린 속을 부여잡고 다시 한자리에 모여서 해장 겸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전날 술김에 합의했던 여러 일들을 다시 꺼내어 얘기 하면서 그 말들이 진심이었는지 확인했다. 이 자리에서 확인된 내용은 부족의 합의로 결정하고 이행했다.


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고대 중국의 상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문화가 있었다. 당시 상나라의 왕은 점을 치는 역할도 수행했는데, ‘정인’이라 불리는 용한 점쟁이들이 그를 보좌했다. 이들 무리가 하는 일은 매일 저녁 모여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이들은 취한 상태, 즉 일종의 환각 상태에서 조상신과 소통하고 그를 바탕으로 홍수나 기근을 예언하는 등 국운을 좌우하는 점을 쳐야 했다. 점괘가 틀릴 경우, 하늘이 천명을 다시 거두어 간 것으로 간주되어서 왕은 추방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잔치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왕과 신하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여 해장을 하면서 그 전날의 기록해둔 점괘를 다시 꺼내어보고 국가의 대소사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을 마시는 것은
한국만의 해장 문화


해장 문화는 술을 좋아하는 나라들에서만 발달하는 독특한 문화 현상이다. 그런데 전 세계 어디를 봐도 한국처럼 ‘해장’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이는 그만큼 한국인들이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증거 아닐까?


사실 외국 사람들이 해장의 개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해장이라는 행위에 대한 태도의 차이 때문인 것도 같다. 한국에서 해장은 보통 시원한 국물과 개운한 뒷맛을 가진 국물을 마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경우에는 따로 해장이랄 게 없다. 러시아 술꾼들은 보통 술에서 깨기 위해 아침에 맥주를 마시거나 주스를 마시기 때문이다. 진짜 술꾼들은 보드카를 한 잔 들이킨다고도 하는데, 이쯤 되면 거의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의 알코올 의존증이 의심 된다.


2011년 전 10도 이하 알코올 제품을 주류로 취급하지 않았던 러시아


나도 딱 한번 러시아식으로 해장을 해본 적이 있다. 러시아를 비롯해 구소련의 여러 국가에서는 8월 15일을 ‘고고학자의 날’로 정해서 이날 현장에서 잔치를 벌인다. 유학 시절 나는 이 날 잔치에 참여한 뒤 다음 날 숙취로 머리가 아파 텐트에서 비틀대며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현지인 친구가 내게 시원한 무언가가 담긴 컵을 내밀었다. 목이 말랐던 나는 잠이 덜 땐 상태에서 ‘콜라 정도인가 보다’ 하면서 친구가 준 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마시고 나니 맥주였다. 아마 마실 것이 마땅치 않았던 시베리아 한복판 발굴장이어서 현장에 있는 시원한 마실 것을 건넨 것 같았다. 어쨌든 숙취 상태에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니 갈증이 풀리고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술이 깼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알코올 분해 효소가 선천적으로 많은 서양인들은 주로 도수가 낮은 술을 마시며 해장한다. 위스키의 본고장으로 술꾼 많기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에서는 해장술을 ‘개털(hair of the dog)’이라고 한다. 늑대 같은 맹수에게 물린 상처는 그 짐승의 털을 문지르면 낫는다는 미신에서 비롯된 말로, 쉽게 말해 ‘술병은 술로 고친다’라는 뜻이다.


반면, 알코올 분해 효소가 서양인에 비해 선천적으로 적은 아시아인들의 경우에는 술로 해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중국 사람들은 해장 음식으로 연두부와 쌀죽, 일본 사람들은 된장국(미소시루)에 낫토를 먹는다. 몽골 사람들은 원래 우유를 발효시켜 약하게 알코올 성분이 함유된 쿠미스를 마시며 해장을 했지만, 요즘에는 러시아의 영향으로 맥주를 많이 먹는다.



각 나라마다 저마다의 해장 문화가 있지만, 우리나라만큼 ‘해장’이란 단어가 널리 쓰이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한국에는 아예 ‘해장국’이라는 음식이 따로 존재할 정도다. 한국에서 해장국을 마시는 행위는 일종의 사회생활의 한 부분으로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예전에는 회식을 한 다음 날이면 으레 함께 술자리를 한 이들 중 한 명이 “오늘은 해장국이나 할까?” 하며 전날 멤버들을 다시 불러내어 합동으로 숙취 해소를 하기도 했다.


다 같이 모여 해장을 하면서 그 전날 과음으로 인해 상했을 서로의 건강을 생각해주고, 간밤의 여흥을 맑은 정신으로 또 한 번 이어가는 해장 문화는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러시아나 폴란드에도 이런 지혜로운 해장 문화가 없다. 지금 당신이 마시는 한 잔의 술이 더욱 행복한 이유는 아마도 내일의 따뜻한 해장국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출처 : 도서 『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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