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리더들이 쉽게 저지르는 치명적 실수

폴라로이드의 희비

by 나름이

폴라로이드사를 창업한 에드윈 랜드가 처음에 떠올린 사업 아이디어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불빛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당시 헤드라이트 불빛 때문에 매년 고속도로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랜드는 모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앞유리에 45도 필터를 칠해놓으면 운전자가 자신의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빛은 볼 수 있지만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의 불빛에는 방해를 받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20년 동안 자동차 제조사들을 찾아다니며 이 아이디어를 채택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단 한 곳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1934년 7월. 랜드는 자동차가 아닌 유리 제조사 '아메리칸 옵티컬'을 찾아갔다. 그렇게 따낸 첫 계약의 결과물은 '편광 선글라스'였다. 선원, 항공기 조종사, 스키 애호가를 비롯해 야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갔고 폴라로이드의 첫 번째 히트 상품이 되었다. 이후 군에서도 햇빛의 눈부심을 제거하면 사수가 비행기나 탱크, 수면에 떠오른 잠수함을 더 잘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육군과 해군이 '편광 고글' 수백만 개를 주문하면서 프랜차이즈의 씨앗이 자라게 되었다.


이후 랜드는 3D 사진을 구현하고 볼 수 있는 특수 편광 안경을 개발했고, 오늘날에도 3D 영화는 1940년 랜드가 개발한 과학적 원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3D영화.png 1952년 3D 영화를 보는 관객들




1943년 12월 가족 휴가를 보내고 있던 랜드는 산책을 하며 딸의 사진을 몇 장 찍어주었다. 그러자 딸 제니퍼가 물었다.


"왜 사진은 찍고 나서 바로 볼 수가 없어요?"


질문에 깜짝 놀란 랜드는 제니퍼를 엄마에게 돌려보내고, 혼자서 계속 걸으며 이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생각해봤다. 2년 뒤인 1946년 초 희망적 결과가 보였으나 랜드는 여전히 실험이 너무 느리게 진행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팀원들에게 폴라로이드가 1947년 2월 21일 뉴욕에서 열리는 광학회 모임을 통해 언론과 업계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카메라를 시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팀원들은 젖 먹던 힘을 짜내 다시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랜드와딸.png 랜드와 그의 딸 제니퍼



랜드의 마감 시한은 팀원들에게 긴급성을 일깨우는 용도 이상의 의미를 띠어가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랜드가 군수품 계약에서 발을 빼기로 결정한 뒤 회사 매출이 급감했던 것이다. 고위 경영진 한 명은 이렇게 회상했다. "수입은 적고, 돈 나갈 곳은 많았다." 랜드는 즉석 사진에 회사의 사활을 걸었다.


광학회 모임 당일, 간단히 소개를 마친 랜드는 학회장을 무대 위로 불렀다. 랜드가 조준을 하고, 버튼을 누르고, 종이 두 장을 떼어내자 즉석 사진이 나타났다.



_48131157_22f5fa4d-60e4-473f-9454-4a8cb46155b0.jpg 광학회 모임에서 즉석 사진을 시연하는 랜드



다들 광분했지요.


현장에 있던 한 사람의 말이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이 기술을 "사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전 가운데 하나"라고 기술했다. 《뉴욕 타임스》는 긴 기사를 싣고, 사설에서 사진과 관련해 이전의 모든 발명은 "랜드 씨가 해낸 일에 비하면 조야한" 수준이라고 선언했다.


1948년 150만 달러가 채 안 되던 폴라로이드의 매출이 1978년에는 14억 달러가 됐다. 이후 30년간 즉석 사진 업계를 장악한 폴라로이드는 국제 여행 업계를 장악했던 팬암과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매년 놀라운 획기적 돌파구를 내놓으면서 고객을 즐겁게 했다. 두 사례 모두 제품 혁신의 대가가 정상에서 여러 룬샷의 동력을 제공하고, 그게 프랜차이즈를 성장시키고, 그게 다시 더 많은 룬샷의 동력이 되어 준 경우다. 카메라 속의 바퀴는 계속해서 돌아갔고, 위험한 선순환은 점점 빨라져만 갔다.




1960년대에 랜드는 즉석 사진 기술을 영화에까지 확장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엄연히 중요하면서도 달성이 거의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면, 시작도 하지 마라."는 말을 하곤 10년간 5억 달러를 투입했다. 이 새로운 도전이야말로 그의 마음과 에너지를 바칠 만한, 바로 그런 제품형 룬샷이었다.



8431802620_d190fb6945_b.jpg '폴라비전' 지면 광고



1977년 랜드는 폴라로이드 주주총회 자리에서 폴라비전을 세상에 공개했다.


작고 우아한 무비카메라로 촬영을 한 후 '폴라비전 플레이어'라는 상자에 카세트를 넣었다. 90초 후 방금 촬영한 장면이 재생되었다. 기술 잡지들은 극찬을 늘어놨다. 새 공장은 20만 개가 넘는 폴라비전 기계를 생산했다. 앤디 워홀과 존 레넌이 폴라비전을 사용했고, 1978년 봄 전국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폴라비전에 관해 들어본 적이 없을까?


왜냐하면 1년도 안 돼 이 제품이 사장됐기 때문이다. 폴라비전은 화질도 좋고, 디자인도 좋았지만 다른 대용품들의 편리함을 이길 정도가 아니었다.


1979년 폴라로이드 담당 회계법인은 재고를 모두 손실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마 후 폴라로이드는 생산을 영구적으로 중단했다. 랜드는 자신의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본인이 설립한 회사와 모든 인연을 끊었다.

이미 시장엔 폴라로이드가 따라잡아야 할 새로운 제품형 룬샷들이 넘치고 있었다. 비디오 캠코더, 홈 잉크젯 프린터, 디지털 카메라까지... 팬암과 마찬가지로 때는 너무 늦었다.






모세의 함정을 조심하라


업계의 골리앗이 몰락한 익숙한 이야기는 수십 년간 이어진 성공에서 시작한다. 그 성공이 지나고 나면 우쭐했던 늙은 기업은 신선함을 잃는다. 목마름을 잊어버린다. 이제 막 두각을 드러낸 꼬마 다윗이 나타나 예상치 못한 무기로 어기적거리는 거인을 단숨에 해치운다. 그 무기는 모두가 간과했던 새로운 아이디어 혹은 새로운 기술이다. 일종의 룬샷이다.


그러나 에드윈 랜드가 세운 골리앗은 위 그림에 들어맞지 않는다. 랜드는 제품 혁신의 대가였고, 자신의 목마름, 대담하고 위험한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을 ‘단 한 번도’ 잃은 적이 없었다. 그들의 골리앗이 사라진 이유는 세 사람 모두 똑같은 패턴을 따라 똑같은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선지자적 기질을 가진 리더였던 이들은 뛰어난 룬샷 배양소를 만들었다. 이들은 ‘상분리’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심판자이자 배심원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버니바 부시나 시어도어 베일은 룬샷과 프랜차이즈 사이의 균형과 소통을 챙기고 아이디어의 이전과 교환을 장려하는 정원사가 되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 제품 혁신 대가들은 자신이 이집트에서 유대민족을 구해낸 모세 같은 존재라고 믿었다. 자신의 보좌진을 승진시키고 선택받은 룬샷을 지목했다. 두 번째 원칙 ‘동적평형’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사분면.png


랜드는 그가 만든 룬샷 배양소에 담을 둘러쳐서 회사의 나머지 부분이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는 회사의 엔지니어링 팀장이었던 빌 매큔은 물론이고 자신의 연구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도 9층에 있는 개인 실험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의 룬샷 배양소는 노벨상급의 획기적 돌파구를 여럿 배출했다. 회사의 프랜차이즈 그룹은 수백만 대의 카메라를 팔았다. 그러나 어떤 룬샷이 어느 시기에 어떤 조건에서 등장할지는 순전히 랜드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지속 가능하고 늘 신선한 창의성과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조직을 사분면의 오른쪽 상단으로 데려가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두 상태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균형 잡힌 동적 평형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세 말이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거기 도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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