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형 룬샷 vs 전략형 룬샷
'아메리칸 항공'의 CEO 크랜들은 ‘비행인’이 아니었다. 그는 한 번도 비행기를 몰아본 적이 없었고, “핏속에 기름”이 한 방울도 없었다. 크랜들은 MBA를 나온 금융 전문가였다. 아메리칸 항공으로 옮기기 전에 그는 홀마크 카드(문구류 제조업체)와 블루밍데일스(백화점)에서 일했다.
크랜들은 창의적인 방안을 찾아내 엉망진창인 사업을 정리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지갑의 내용물을 탈탈 털어 가지런히 정리해 효율을 높이듯이 말이다. 그리고 크랜들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그는 입에서는 불을 뿜고 손에는 총을 든 전략형 혁신가였다.
반면 '팬 아메리칸 월드 항공'(이하 팬암)의 트립은 엔진이 뭔지를 아는 조종사였다. 그는 비행을 사랑했고 엔지니어처럼 비행기를 설계했다. 대학을 졸업한 트립은 부유한 친구들에게서 약간의 돈을 모아(돌아가신 아버지가 유산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싸게 처분되는 비행기들을 사들였다. 그리고 롱아일랜드 항공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제품형 룬샷 vs 전략형 룬샷
항공 업계의 전략형 룬샷 대부분을 발명하고 완성시킨 사람은 아메리칸 항공의 CEO 로버트 로이드 크랜들이다. 크랜들은 전략형 룬샷의 대가였다. 반면 항공 업계에서 제품형 룬샷 대부분을 발명하거나 완성한 사람은 팬암의 설립자이자 CEO였던 후안 테리 트립이다. 트립은 제품형 룬샷의 대가였다.
트립이 롱아일랜드 항공이라는 회사를 차렸던 1922년, 돈 많은 커플들은 롱아일랜드로 가려고 기꺼이 비행기 삯을 냈다. 트립의 비행기는 손쉬운 교통편이었으나 기장 한 명에 승객 한 명밖에 태울 수 없는 점이 단점이었다. 커플은 태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트립은 비행기를 개조하기로 했다. 힘이 더 좋은 프랑스제 최신 엔진을 설치하고 거대한 프로펠러는 잘라냈다. 연료 탱크를 기체 밖으로 옮겨 좌석을 하나 더 만들었다. 비행기 개조와 함께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이후 40년간 트립은 이런 전략을 쓰고 또 썼다. 그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더 크고 빠른 비행기를 설계하고 주문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좌석 세 개짜리 에어택시로 시작해 보잉 747까지 말이다. 팬암은 제트기 시대를 열어 국제 여행을 보편화시켰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사가 됐다. 트립은 제품형 룬샷의 화신이었다.
규제 철폐 조치는 후안 트립 스타일의 눈부신 변화를 잠시 차단하고 로버트 크랜들 스타일의 흐릿한 변화에 더 유리한 특수 상황을 만들어냈다.
전산화된 예약 시스템을 아메리칸 항공이 처음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잘 작동하는 시스템은 처음이었다. 모든 항공사의 운임이 표시되는 ‘세이버(Sabre)’라는 시스템은 전국의 여행사에 보급됐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다른 예약 시스템을 사용하는 여행사들보다 세이버를 사용하는 여행사들이 아메리칸 항공에 적어도 50퍼센트의 매출을 더 올려주었다고 한다. 1퍼센트의 차이로 판도가 나뉘는 업계에서 이 정도면 정말 큰 차이였다.
그러나 세이버는 크랜들과 직원들조차 깜짝 놀랄 아주 중요한 이점을 갖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보지 못한 데이터들이 마구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수년치 쌓인 예약 데이터들이었다. 어느 분석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데이터를 통해 아메리칸 항공은 푸에르토리코로 가는 휴가객들이 며칠 전에 티켓을 예매하는지, 디트로이트로 가는 출장객들이 얼마나 일찍 티켓을 예매하는지, 5월인지 9월인지, 화요일인지 금요일인지 추론할 수 있게 됐다.”
아직 빅데이터가 실리콘밸리의 유행어가 되려면 30년이나 남았던 시점에 아메리칸 항공은 이미 빅데이터를 손에 쥐었다. 크랜들은 이 데이터를 이용해 좌석당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실행하는 부서를 신설했다. 짐작 가겠지만 이 기술에는 ‘수익 관리(yield management)’라는 아주 지루한 이름이 붙었다.
그즈음 아메리칸 항공이 고안해 고객 충성도를 높인 마일리지 프로그램이라든지, 마지막 순간의 예약으로 빈 좌석을 채우는 슈퍼 세이버(Super Saver) 프로그램은 세이버보다 훨씬 더 눈에 띄었기 때문에 다른 항공사들도 얼른 따라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세이버가 마련해준 확고부동한 (그러나 별로 멋있진 않은) 유통 채널이라든가, 빅데이터를 이용한 수익 관리 기법은 오랜 세월 남들이 따라 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변화들이 아메리칸 항공을 구원했다.
제품형 룬샷과 전략형 룬샷
둘 다 육성할 줄 알아야 한다.
1978년에서 2008년 사이 규제 철폐 이후 170개 항공사가 문을 닫거나 파산했다. 팬암을 비롯한 대형 항공사가 모조리 파산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단 하나, 아메리칸 항공만은 예외였다. 1978년 이전의 항공사들만큼 규제를 많이 받는 산업은 지금 거의 없다. 하지만 언제든 갑작스러운 충격은 발생할 수 있다. 어느 날 아침 구글이 새로 만든 휴대전화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공짜로 나눠주겠다고 하자, 일순간 휴대전화 세상의 법칙이 바뀐 것처럼 말이다. 그 발표는 (마치 규제 철폐가 그랬던 것처럼) 준비되지 않은 모든 기업에 깜짝 놀랄 만큼 수많은 전략형 룬샷이 밀고 들어오게 했다.
당신이 만약 사업가이거나 창의적인 일에 종사한다면 두 가지 유형의 룬샷에 모두 능한 것이 아이디어 확장에 도움이 된다. 그런 당신은 뭔가 괜찮은 것을 훌륭한 것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예컨대 구글은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인터넷 검색 결과의 순위를 매기는 데서 출발했다. 괜찮은 제품형 룬샷이다. 하지만 구글은 열여덟 번째 검색엔진이었다. 그래서 광고주들에게 매력적인 검색엔진이 되기 위해 몇 가지 영리한 전략형 룬샷을 추가했다. 그 덕분에 구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웹사이트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어느 업계에 도전장을 내미는 입장이라면,
두 가지 모두를 잘하는 법을 알아두어야 더 크고 강한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이미 대단히 성공한 혁신가이고 이미 경이로운 제국을 세웠다면, 자신의 맹점을 주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을 향해 날아올 룬샷들을 알아채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제2의 팬암이 되지 않는 법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