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2억 원 갚아라

폐암 환자가 남긴 마지막 유언

by 나름이

한 폐암 환자가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래전에 이혼했고 자식이 없었다. 같이 살던 동거인은 법적으로는 부인이 아니었고 환자의 병세가 깊어지자 그의 곁을 떠났다. 한마디로 이제 보호자가 없다는 뜻이었다. 한동안은 기력이 남아 혼자 병원을 다니며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점점 암이 진행되면서 그는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화장실을 혼자 가기 어려워 간병인을 두어야 했고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상태가 더 악화되어 입원을 하게 되자 호스피스 팀에 의뢰가 되었고 호스피스 상담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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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눠보니 부모는 오래전에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남동생이 한 명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혈육이라고는 그 동생뿐이었는데 연락이 끊긴 지 몇 년 되었다고 했다. 4, 5년 전쯤 동생이 사업한다며 그에게 2억 원을 빌려 가놓고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돈을 갚지 못했고, 그 뒤로 서먹해지는 바람에 연락도 끊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너무 분하고 억울하다고 했다.


그렇게 큰돈을 떼어먹고 연락이 끊긴 동생을 이해한다고, 여전히 좋다고 말하는 형은 세상에 없다. 동생에 대한 감정이 안 좋은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러나 그는 폐암 말기였다.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가족의 도움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호스피스 팀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동생에게 연락이 닿았으나 당연히 동생은 형의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호스피스 팀은 그에게 형님의 상황을 설명하고 병원에 와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회진을 돌 때 처음 보는 남자가 환자의 병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섰다. 누군가가 그 환자를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비슷한 얼굴 생김새에 환자의 동생인 것을 직감했다. 문 앞에 선 사람은 놀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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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예상대로였다. 소식이 끊긴 지 오래된 형제가 몇 년 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형제의 상봉을 위해 환자의 침대에서 몇 발짝 물러섰다. 환자의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이내 눈썹이 크게 올라갔고, 동생은 환자를 보고 황망한 눈빛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환자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온몸이 뼈와 가죽만 남았고, 산소마스크에 의지한 채 근근이 숨만 쉬고 있었다. 곧 동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몇 년 만에 만나는 형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에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형제는 한참 서로 마주보았다. 둘 사이에는 세월의 공백만큼이나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병실의 적막은 깊고 또 깊었다. 동생은 형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 채 어쩔 줄을 모르고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2억 원이라는 돈과 원망과 세월이 할퀴고 간 두 사람 사이의 틈은 생각보다 깊어 보였다.


한참 뒤, 환자가 동생에게 할 말이 있는지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숨이 차서 목소리를 크게 낼 기력조차 없던 형이 자신을 부르자 동생이 다가가 형의 얼굴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동생은 곧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드디어 화해의 순간이 왔구나! 나는 조금은 두근대는 마음으로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제 두 형제는 화해하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우애롭게 보낼 것이다.


환자는 동생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했다.


“너… 내 돈… 2억… 갚아라….”


그 순간 병실 안에 있던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병실에는 싸늘한 정적이 흘렀고 훈훈했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천천히 말했다.


“내 돈… 2억… 갚으라고….”


병실의 공기는 차갑게 내려앉았고, 동생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은 사라져 버렸다.







환자의 동생은 그 뒤로 다시 병원을 찾아오지 않았다. 환자도 더는 동생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동생은 간병인을 보내주었고 그 비용은 본인이 부담했다고 들었다. 며칠 후 환자는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가운데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무연고 시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적어도 시신은 동생이 수습해 간 것 같았다. 결국 ‘내 돈 2억 원 갚아라’가 환자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 된 셈이다.


그의 삶에서 2억 원은 어떤 의미였을까? 돈보다 자신의 믿음을 져버린 동생이 더 원망스러웠던 걸까? 되돌릴 수 없는 과거보다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쓸쓸하게 떠나지는 않았을 텐데. 과거도, 예정된 죽음도 피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남은 시간만큼은 그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종양내과 의사이다 보니 삶의 마지막을 목도하는 일이 많고 마주하는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그 환자 이전에나 이후에도 환자의 가족들이, 주변인들이 돈 때문에 다툼하는 꼴을 적잖이 봐왔다. 그럴 때면 가끔 그 병실에서 환자가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2억 원 갚아라”라고 말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모든 순간 돈보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 살아간다고, 죽는 순간에 그깟 돈이 뭐 중요하겠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다. 그저 의사로서 환자가 외롭게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한 인간이 혈육에게 남기는 마지막 한 마디가 ‘내 돈 2억 원 갚아라’였던 것이 씁쓸했고, 쓸쓸한 죽음은 언제나 그렇듯이 안타깝기만 하다.





* 이 내용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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