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이라는 굴레에서 죽음이란

불행한 가정 속 피해자

by 나름이

흡사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가슴 먹먹한 이야기가 병원 안에서는 드물지 않다. 그러나 모든 의학 드라마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지 않은 것처럼 병원에서 목도하는 부모와 자식, 가족의 이야기는 오히려 가족이라서 지리멸렬할 때가 훨씬 더 많다. 내가 목격한 수많은 혈연관계도 참담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럴 때면 생각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첫 문장은 옳다고. 누군가는 가족을 의지하기도 했지만 때때로 가족은 누군가에게 짐이자 삶을 옥죄는 족쇄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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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암으로 투병 중이던 환자와 보호자였던 큰딸은 그중 후자였다. 환자는 자신이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완강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그는 의사인 내 이야기를 듣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반복했다. 고집이 보통이 아니었다. 중환자실에 갈지 여부도 정해야 하고 정리할 일도 많고 호스피스 상담도 해야 하는데 환자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니 그 무엇도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는 병원 밥이 너무 싱겁다는 둥, 병실 침대에서 냄새가 난다는 둥, 옆 침상 환자가 시끄럽다는 둥 다른 이야기만 계속 늘어놓았다. 상담할수록 나는 답답해졌다.

환자가 이 정도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에는 가족을 개입시키곤 한다. 의사는 가족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가족이 환자를 설득시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환자의 경우 그의 가족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심 가족이 없거나 가족과 관계가 단절된 환자라고 생각했다.

“가족 분들은 안 계신 가요?”

나는 큰 기대 없이 물었다.

“… 딸이 둘 있기는 한데… 연락하기 좀 그래요. 다들 바빠서….”

사실 식도암 환자는 대부분 가족과 관계가 좋지 않다. 식도암은 술이 주요 원인이고 술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아주 오래, 그것도 아주 많이 마셔야 생긴다. 모든 식도암 환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매일 소주 한두 병씩 이삼십 년을 마시던 사람들인데, 술을 그렇게 마셔대는 남자를 가족이 좋아할 리 없다.

또한 매일 많은 술을 마신다는 것은 매일 잔소리를 무시할 만큼 귀를 닫아야 가능하며, 다음 날 일하러 나가지 않겠다는 배짱이 있어야 하고, 술값이 떨어지더라도 어떻게든 술을 마시겠다는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렇게 오랜 기간 술을 많이 마시기도 힘들다. 그래서 식도암 환자치고 건장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어쨌든 다행히 큰딸과 연락이 닿았고 그녀는 병원으로 왔다. 큰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환자는 예상보다 더 최악인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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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술을 마셨고 도박으로 돈을 날렸다. 여자도 있었다. 아버지가 돈 좀 있는 남자인 줄 알고 속아서 만나던, 짙은 화장에 싸구려 향수를 쓰는 술집 여자들이었다. 집에 오면 가족을 때렸다. 어머니는 늘 맞으면서도 버텼고 딸들과 먹고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가 벌어온 돈으로 아버지는 다시 술을 마셨고 여자와 놀았고 노름을 했다. 그런 일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두 자매를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참았다.

20년 가까이 지나 딸들이 성인이 된 뒤 어머니가 이혼을 원했을 때, 아버지는 위자료를 요구하며 끝내 이혼해주지 않았다. 여동생은 아버지와 의절한 뒤 일찌감치 독립해서 따로 살았고 집안의 어떤 일에도 엮이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큰딸의 몫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부부라기보다 악연에 가까웠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연은 끊어졌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녀는 새롭게 제 가정을 꾸렸다. 신혼 초기에 돈이 떨어져 몇 번 찾아왔던 아버지는 남편과 크게 싸운 뒤로는 더 이상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게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병원의 연락에는 차마 동생처럼 연을 끊어내지 못했고, 그녀는 결국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동생은 병원에도, 장례식에도 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했다. 결국 환자의 병원비를 내야 하는 것도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 것도 전부 큰딸의 몫이 되었다.


슬픈 것은 이 부녀처럼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악연은 피해자가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자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증오해도 모자랄 만한 사람의 자식이라는 것이 끔찍해서, 미운 부모라도 자식인데 할 바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큰딸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내가 숱하게 보아온 최악의 결론이었다. 심지어 현재 결혼 생활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온 남편은 그녀의 아버지인 환자를 닮아 있었다. 내 짐작이 맞는다면 그녀는 그 자체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인생은 자꾸 반복되고 있었다.



unnamed.jpg KBS 드라마 <왜그래 풍상씨> 중에서



나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큰딸을 앞에 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딸이라는 이유로 그런 아버지의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이 참담했다. 어쨌든 환자가 죽음으로써 이 ‘부녀’라는 관계의 굴레가 드디어 종결된다는 것이 그녀에게 유일한 희망으로 보였다. 부친의 죽음이 그녀의 삶에 찾아오는 첫 번째 행운 같았다.


나는 때때로 피로 맺어진 이 가족이라는 관계를 곱씹어보게 되곤 한다. 병원에서든 사회에서든 혈연에 대한 판타지가 있고, ‘어쨌든 가족이니까’로 통용되는 일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실은 기대로부터 멀다. 가족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신체적, 정서적 폭력 앞에서 ‘가족이니까 그럴 수 있다’라는 식의 논리를 어디까지 들이밀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그럴 수 있는 일인 걸까? 어떤 인간이든 어떻게 살아왔든 죽음은 무조건 존중받아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혈연이라는 이유로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선인지 잘 모르겠다. 의사로 살아가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가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오는 갖가지 사연 앞에서 나는 자주 할 말을 잃는다.






* 이 내용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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