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아이의 시신
소아과 의사로부터 백혈병을 앓던 한 소아 환자와 보호자인 그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든 치료가 실패했고 의료진도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이는 임종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느 날 아침, 간호사가 아이의 혈압을 재러 병실에 들어섰을 때 보호자인 엄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러나 간호사는 보자마자 아이가 이미 호흡이 멎은 것을 알았다. 아이의 얼굴이 이미 푸른빛을 띠고 있던 것이다. 숨이 끊어진 시간은 새벽인 듯싶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이의 사망 사실을 알리면 의료진이 아이의 시신을 데려갈까 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로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지난 밤 아이는 열이 펄펄 끓고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고 마지막으로 “엄마…”라는 한마디를 내뱉고는 몇 시간 뒤 서서히 숨이 멎었다고, 아이 엄마는 나중에야 털어놓았다.
병원 규정을 어기고 아이의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은 그 엄마를 그 누구도 책망하지 않았다. 사망진단서를 써야 하는 담당 의사도 아이의 사망시각을 임의로 적었다. 조금이라도 더 아이를 품에 안으려고 했던 엄마는 한참 후에 아이의 시신을 영안실로 보냈다. 아이를 받아 든 의료진은 시신이 동이 트고 나서도 따뜻했다고 했다.
자식을 먼저 앞세우는 일은 부모로서 결코 담담해질 수 없는 일이다. 암 병원에서도 이런 일은 드물지 않다. 암 환자라고 하면 나이 든 중년, 노년의 환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암이 나이를 가려 덮쳐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어리고 젊은 암 환자들이 많고, 그중에서는 완치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결국 그 부모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에는 죽은 아이의 신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애가 좋은 데 간다는 스님의 조언에 따라 호성 어머니 정부자 씨는 아이의 노트며 가방을 그대로 태웠다. 그런데 신발은 아이가 수학여행에 다 신고 가버리는 바람에 남은 게 없었다. (…) 없어서 하나 사서 태워주었다.” - 『금요일엔 돌아오렴』 중에서
이 책 속에서 아이 엄마는 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가슴을 쳤다. 죽은 아이의 신발을 새로 샀다는 엄마의 사연을 읽었을 때 거기에서 더 이상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한 젊은 암 환자의 보호자였던, 한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때 환자는 이십 대 초반이었다. 림프종으로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그만큼 여러 차례 재발을 했고 더 이상 치료가 듣지 않아 결국 세상을 떠났다. 아직 푸릇한 어린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아이의 49재가 끝나고 외래로 나를 찾아왔다.
제사가 끝나고 스님이 아이의 물건을 태워서 저승으로 보내주라고 해서, 준비해 간 아이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태웠다. 아이가 좋아하던 옷가지, 즐겨하던 게임기, 아이가 읽던 책 등을 그러모아 불을 붙였다. 눈이 나빴던 아이가 안경이 없으면 저승길을 헤맬 것 같아서 안경도, 가는 길에 배고플까 싶어 좋아하던 치킨도 불 속에 밀어 넣었다. 저승에서라도 부족함 없이 지냈으면 해서 아이가 좋아했던 것, 좋아할 만한 것들을 바리바리 싸 가지고 와 태웠다.
그런데 도저히 태울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아이가 병원에서 신던 슬리퍼였다. 투병 생활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임종 전 몇 달은 병원에만 있다 보니 아이에게는 변변한 신발이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의 장기 입원 환자가 그렇듯이 병원 생활에 슬리퍼만 한 것이 없었고 아이도 몇 달은 병원 생활을 하면서 그것만 신고 지냈는데 그 낡은 슬리퍼가 결국 아이의 마지막 신발이 되었다. 그 헤지고 낡은 슬리퍼를 태우려고 하니 저승 가는 길조차 슬리퍼를 신고 가면 아이가 발이 아플까 봐 차마 태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날 미처 신발을 태우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며칠 뒤에 결국 새 신발을 새로 샀다. 아이가 살아 있을 때에는 비싸서 사주지 못했던 브랜드 신발이었다. 그녀는 낡은 슬리퍼는 끌어안은 채 새 신을 따로 태우며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죽은 아이의 신을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사기도 한다는 것을. 그들은 그렇게 가슴에 아이를 묻었을 것이다.
* 이 내용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