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
“선생님, 지난번에 제가 맞은 항암제가 혹시 VP-16이라는 약입니까?”
환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VP-16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VP-16은 ‘에토포시드(etoposide)’라는 항암제의 옛 이름이다. 에토포시드는 30여 년 전에 국내에 처음 도입된, 그 당시만 해도 대단한 최신 항암제였다. 이 약이 처음 들어왔던 순간을 기억하는 육십 대 의사들은 VP-16이라는 예전 이름을 많이 썼다. 지금은 그 누구도 구시대적 독한 항암제의 대명사가 되어 있는 에토포시드를 VP-16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네, 맞아요. 지난번에 맞은 항암제가 VP-16맞구요, 에토포시드라는 약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VP-16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 말을 어떻게 아세요?”
“예전에 30년쯤 전에 제 어린 아들이 급성백혈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습니다. 백혈병이 재발돼서 항암치료를 할 때 아들이 맞았던 항암제가 VP-16이었어요. 그때 그걸 맞으면서 아들 녀석이 너무 힘들어했기 때문에… VP-16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네요. 그런데 저도 그 약을 맞게 됐네요…. 주사 맞다가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의 어린 아들은 나은 줄 알았던 백혈병이 재발하며 속수무책으로 상태가 나빠졌다고 했다. 다른 치료법이 없어서 의사는 당시 최신 항암제였던 VP-16을 권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VP-16을 몹시 힘들어했는데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세포독성 항암제는 어른도 견디기 쉽지 않은 약이니 열 살이 채 되지 않는 아이에게는 그야말로 독하디 독한 약이었다. 제대로 된 구토방지제도 항암제 부작용 예방약도 없던 시절이었다.
아들은 힘든 치료를 강요하는 아버지를 원망했고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려면 그 방법뿐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VP-16은 효과가 거의 없었고 아들은 결국 눈을 감았다. 그 후 3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는 소세포폐암을 진단받고 오래전 아들이 맞았던 그 VP-16을 맞게 된 것이다.
그는 항암치료가 힘들었다고 했다. 본인이 직접 VP-16을 맞아보니 과거에 어린 아들이 왜 그토록 항암제를 맞기 싫어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고, 어차피 듣지도 않았을 약인데 왜 그리 모질게도 치료를 강행했는지 후회도 된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직접 겪어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본과생 시절, 수업 중 어느 내과 교수님은 본인이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은 직접 다 먹어본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약을 처방할 때는 실제 약의 작용 방식, 효능, 부작용 등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열심히 공부도 해야 하지만 책으로 백 번 공부하는 것보다 직접 한 번 먹어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암과 관련한 모든 것들은 내가 직접 몸으로 겪어볼 수 없는 것들뿐이다. 한 환자에게 지금까지 쓰던 항암제 대신 다른 항암제로 바꿔보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새로운 항암제는 기존의 것보다 순한 편이어서 덜 힘들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 환자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다 듣고 나서 내게 되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선생님은 항암주사 맞아본 적 없잖아요.”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나는 항암주사를 맞아본 적이 없었으므로 새로운 항암제가 이전 것보다 얼마나 순한지, 정말 힘들지 않은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 환자가 그걸 몰라서 물은 질문은 아니었다. 힘든 항암치료를 경험해봤을 리 없는 의사가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리라 짐작했다.
나는 암 환자를 보는 종양내과 의사이지만 암에 걸려보지 않았다. 항암치료로 인한 고통이나 극심한 통증 외에 암으로 인해 찾아올 일신의 변화나 주변 상황의 변화, 감정의 고저를, 그 무수한 마음의 갈래를 나로서는 100퍼센트 정확히 이해하고 알 방법은 없다. 암 환자가 되면 어떤 심정이 되는지 역시 보고 들은 바로, 간접경험으로 짐작할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햇병아리 의사 시절에는 내가 환자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갈수록 그것이 순전히 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는 일이 많았다. 그런 착각은 상대를 이해했으니 더는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더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다 안다는 오만으로 이어지기 쉬웠다. 환자 이야기를 다 들어줄 만큼 충분한 진료 시간을 갖고 있지도 못한 상황에서 귀를 충분히 열지조차 않은 내가 환자를 다 이해했다는 착각에 빠지니 결과는 뻔했다. 이해하기는커녕 겉돌기만 했다. 그나마 겉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다행이다. 겉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이해했다 치고 넘어가는 순간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제야, 어느 정도 살아보니 세상에는 정말 겪어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이제는 진료하면서 환자에게 ‘당신을 이해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세상에는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나는 눈앞의 환자와 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므로 완벽히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알게 됐기 때문이다. 섣부른 공허한 말보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환자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더 낫다. 그러면 적어도 오만해지는 것은 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환자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쪽에 무게 추를 기울인다.
* 이 내용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