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미련이 남아서
의사들은 출근하면 가장 먼저 입원 환자의 바이탈 시트(vital sheet)를 확인한다. 바이탈 시트는 환자의 혈압, 체온, 맥박수, 호흡수를 기록해 놓은 그래프다. 그래프의 패턴을 보면 환자가 무탈한지 다른 문제는 없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이 그래프는 쉽게 흔들린다. 혈압이 떨어지고 체온은 올라가고 맥박수는 빨라지고 호흡수는 불규칙해지면서 그래프 선이 들쭉날쭉해지고 흔들리는데, 죽음을 예고하는 징조다. 그러다 이 그래프가 고꾸라지면 환자는 숨을 거둔다. 그런데 그래프가 흔들리는 걸로 봐서는 분명히 곧 돌아가실 것 같은데 오래 버티는 분들이 있다. 설명이 되지 않는 임종의 지연. 이런 일은 드물지만 종종 일어난다.
그 환자가 그런 경우였다. 삼십 대 후반의 젊은 암 환자였다. 그간 적극적인 항암치료를 하며 몇 년은 버텼지만 이제는 더 쓸 수 있는 약도 없고 종양은 속절없이 자랐다. 바이탈 시트가 흔들렸다. 춤추듯 요동치는 선으로 보아 곧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며칠째 임종이 지연되고 있었다. 가족들은 계속 비상 대기 중이었고, 환자의 부친과 아내는 환자 옆을 지키느라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나는 이 환자도 버티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얼굴 보셔야 할 분들은 다 보셨나요?”
“네…. 연락은 다 했고 어제 얼추 왔다 가셨어요.”
“아이들도요?”
“….”
내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는 한참 대답하지 못했다. 긴 침묵이 흐른 뒤 환자의 아내는 아이들에게 아직 이야기를 못했다고, 아이들은 시누이가 봐주고 있는데 아직 오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들은 아빠 상태를 잘 모르는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흐느껴 울었다.
“그래도 아이들도 한 번 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말은 굉장히 조심해서 해야 한다. 내가 환자의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부모는 자녀들을 생각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아이들도 와서 아빠 얼굴을 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건넸지만 그의 아내는 울기만 했다. 한참을 울다가 그녀가 말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다음 날 회진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환자의 아버지와 아내는 그의 곁을 지켰고 그는 버텼다. 이제는 소변이 거의 나오지 않아서 정말 못 버틸 것 같은데도 그는 버텼다. 밤에는 별일 없었냐는 질문에 그의 아내는 환자가 호흡이 거칠고 얼굴이 더 붓는 것 같다고 했다. 그때였다. 문이 빼꼼 열리더니 고모로 보이는 여성과 올망졸망한 어린 눈망울들이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환자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보자 나는 그가 버티던 이유를 단박에 알았다.
“아빠 머리에 혹 나서 아픈 거야?”
환자 머리에는 밤톨만 한 덩어리가 있었다. 혹이 아니라 암이 피부에 전이해서 뭉친 것이었는데 입원하면서 덩어리가 커져 밤톨만 해졌다.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을 일곱 살 난 아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줘야 하는지 나는 난감했다.
“엄마, … 아빠 이제 죽는 거야?”
아빠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여섯 살, 여덟 살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병실에는 침묵이 가득했고 환자의 부인과 아버지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흐느낌은 깊어졌다.
환자의 부인이 환자를 흔들면서 소리쳤다. 여보, 눈 좀 떠 봐…. 눈 좀 떠 보라고…. 애들 왔잖아. 얼굴 한 번 봐야지…. 부인은 점점 더 세게 환자를 흔들었다. 그의 부친도 아들을 흔들었다. 내가 먼저 가야지, 네가 어떻게 저 어린 것들을 두고 먼저 가니, 이놈아… 이 매정한 놈아…. 아이들의 눈에는 엄마와 할아버지의 울부짖음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미동 없이 누운 아빠가 더 이상하지 않았을까. 환자의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아이들이 다녀가고 한 시간쯤 뒤에 환자는 숨을 거뒀다. 그제야 나는 이 환자의 늦어지던 임종이 이해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무척 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아이들이 올 때까지 버텼던 모양이었다.
뭉클한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다. 실제로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환자가 버티면 모두가 힘들다. 환자 본인이 고통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마냥 바라봐야만 하는 가족들도 힘겹다. 의사들도 달리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에 안타깝다.
과학적으로는 수축기 혈압이 50 이하가 되면 관상동맥에 동맥피가 공급이 되지 않아 심장이 제대로 뛰지 못한다. 하지만 혈압 50으로 일주일 넘게 버티는 환자도 여럿 있었고, 심지어 어떤 환자는 사후에나 나타날 변화인 시반이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경험 많은 동료 의사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그들도 멋쩍은 표정을 짓고 만다. 아무리 의학과 분자생물학을 배웠어도 이런 경우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기에 고작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무슨 미련이 남아서’ ‘저승 가는 발걸음’ 같은 것이다. 그게 과학의 영역에 있는 사람이 할 소리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궁색해도 그렇다. 설명되지 않는 임종의 지연과 환자들의 버팀을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차피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라면 임종이 지연될 때 대답할 수 없는 환자에게 묻고 싶어 진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지. 알 수만 있다면 알아내서 그 바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평탄하지 않았을 삶과 지난한 투병 끝에 떠나는 길만큼은 가능한 한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의사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 환자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섰을까? 끝내 아이들을 보고 떠났으니 아쉬움이야 덜었겠지만 남은 자식들에 대한 걱정은 버리지 못하지 않았을까? 떠나는 그에게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낫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의 발걸음이 한 뼘이라도 더 가벼워졌기를 바란다.
* 이 내용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