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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이 Mar 02. 2021

젊은 암 생존자가 공무원을 꿈꾸는 이유

암 생존자 160만 명, 이중 상당수는 젊은이들이다.

“올해는 언제 시험이니?”
“이제 두 달 정도 남았어요.


B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6년 전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B는 고환암이 폐에 전이된 상태였다. 군 제대 직후 고환에 덩어리가 만져져서 병원을 찾아왔고, 몇 가지 검사 후 고환암 진단을 받은 뒤 곧바로 고환 절제술을 받았다. 졸지에 암 환자가 된 것이다. 그나마 이 암은 항암치료가 잘 듣는 편이고 다른 데 전이가 있다고 해도 적극적인 항암치료로 완치까지 기대해볼 수 있었다.

 
죽을 것처럼 지속되는 고통도 시간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조금만 더’를 거듭하는 사이 예정된 네 번의 항암치료가 끝났다. 시간은 많은 것을 해결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시행한 PET/CT(검사로 암세포의 위치나 활동 정도까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양전자 단층 촬영 검사)검사에서 다행히 폐 전이가 모두 사라졌음을 확인했다. 암이 모두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그는 복학 후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암이 사라졌다고 기뻐한 것도 잠시, 암을 극복한 이십 대 초반의 젊은이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손꼽히는 명문대는 아니었어도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준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졸업과 동시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청년실업자’라는 타이틀이었다. 그는 백수가 된 것이다. 다만 혼자는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도 대개 그와 같았다.


암을 극복했다는그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이겨냈다는 자부심도 냉혹한 현실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사지육신 건강한 젊은이들도 취직이 안 되는 때였다.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암 환자 딱지가 붙은 젊은이를 채용할 이유가 없다. 건강상의 문제를 속이고 취직했다가 나중에 발각되면 강제 퇴사 사유가 된다. 암을 앓았던 이십 대 젊은이가 무사히 취직할 수 있는 번듯한 직장은 많지 않았다.


설령 취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의 미래라고 봄날이기는 힘들다. 먹고사는 일은 해결된다지만 연애나 결혼으로 넘어가면고환이 하나뿐인 암 경험자를 진정 사랑해줄 사람이 나타나기는 할까결혼이라도 한다면 상대 집안에서 탐탁하게 여기기는 할까? 결혼한 뒤 암이 재발이라도 하면? 자칫 잘못되면 딸은 청상과부가 될 텐데 어느 집에서 좋아라 할까. 건강한 사람도 많은데 하필이면 암환자가 사윗감이라니. 반대할 게 눈에 선했다.



출처 : 공무원저널



결국 B가 선택한 것은 9급 공무원이었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지만 적어도 일반직 공무원 시험은 60세 미만까지는 응시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정년이 보장된다. 아프더라도 병가를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다. 그래서 B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과야 알 수 없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고 있는 것이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나았다. 적어도 취업 준비생이라는 신분은 가질 수 있었으니까.
 
B가 외래에 올 때마다 그가 안쓰러웠다. 그의 검사 소견은 깨끗하고 좋은데 내 마음은 착잡했다. 내 속이 이런데 하물며 그의 속은 더할 것 같았다.


나와 만난 젊은 환자들이 암을 극복한 뒤에 살아가는 방법은 꽤 다양하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친구도 있고, 눈을 돌려 해외에 있는 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있다. 운 좋게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는 경우도 더러 있고 일찌감치 자영업을 모색하는 친구들도 있다. 대개는 부모의 지원이 가능한 경우였다. 그러나 가장 많은 경우 여전히 백수이거나 혹은 취준생으로 지내고 있다. 그들 가까이에서 지켜본 현실은 훨씬 비정했다. 취업을 위한 소견서에 암은 이제 깨끗이 완치가 되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써 주지만, 그다음 외래에 찾아와 다시 소견서를 부탁하는 걸 보면 취직의 문턱은 여전히 높은 것 같았다.
 

의사로서 말하지만 그들은 단지 암을 겪었을 뿐이다. 심지어 그 젊은 친구들이 엄청 큰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생계를 위해 취직하는 일조차 암 환자였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 그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사회가 젊은 암 생존자에게 최소한의 꿈과 희망도 제시해줄 수 없는 걸까? ‘노오력’ 하면 된다거나, 공무원이 최고라는 식의 말들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나 역시 내 젊은 환자들에게 완치 이후의 삶에 대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의사 이전에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제시해줄 수 있는 비전이 없기에 때때로 미안해진다. 우리 사회가 힘겹게 죽을 고비를 넘긴 젊은이들에게 절망이 아닌 뭔가를 보여줄 수는 없는 걸까?


암 생존자가 160만 명이 넘어섰다. 이중 상당수는 젊은이들이다.





* 이 내용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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