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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이 Mar 03. 2021

삶을 잊은 그대에게

삶의 종착역에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행로를 걸어왔든 종착역은 죽음이라는 것만큼은 모두가 같다. 그리고 다시 그 종착역에 닿는 모습은 각기 다르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종착역에 당도한다.



20년 가까운 시간, 나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많은 환자들이 삶을 정리해가는 과정을 쭉 지켜봐왔다. 예정된 죽음 앞에서 그들이 드러내는 삶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때때로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내 삶에서도 그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삶의 얼굴이 다른 이들로 인해 드러나게 될 때 거울을 보는 기분으로 내 삶과 죽음을 마주한다. 내 환자들의 삶과 나의 삶은, 아니 우리의 삶은 다른 듯 닮았다. 아마도 죽음 역시 그러할 것이다.
 
삶을 잊고 있을 때 떠나간 환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나를 향해 묻는다. 언젠가 당신도 여기에 다다르게 될 텐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떤 모습으로 여기에 당도하고 싶은가?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고 다시 한번 생의 감각이 팽팽해진다. 어쩌면 죽음만큼이나 삶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잘 들어보라. 삶을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종착역에 당도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묻는다. 이제는 남아 있는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서 대답할 차례다.





* 이 내용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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