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잊은 그대에게

삶의 종착역에서

by 나름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행로를 걸어왔든 종착역은 죽음이라는 것만큼은 모두가 같다. 그리고 다시 그 종착역에 닿는 모습은 각기 다르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종착역에 당도한다.


sangga-rima-roman-selia-3sE3Y_rI700-unsplash.jpg


20년 가까운 시간, 나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많은 환자들이 삶을 정리해가는 과정을 쭉 지켜봐왔다. 예정된 죽음 앞에서 그들이 드러내는 삶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때때로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내 삶에서도 그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삶의 얼굴이 다른 이들로 인해 드러나게 될 때 거울을 보는 기분으로 내 삶과 죽음을 마주한다. 내 환자들의 삶과 나의 삶은, 아니 우리의 삶은 다른 듯 닮았다. 아마도 죽음 역시 그러할 것이다.

삶을 잊고 있을 때 떠나간 환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나를 향해 묻는다. 언젠가 당신도 여기에 다다르게 될 텐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떤 모습으로 여기에 당도하고 싶은가?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고 다시 한번 생의 감각이 팽팽해진다. 어쩌면 죽음만큼이나 삶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잘 들어보라. 삶을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종착역에 당도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묻는다. 이제는 남아 있는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서 대답할 차례다.





* 이 내용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의 일부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젊은 암 생존자가 공무원을 꿈꾸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