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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이 Mar 24. 2020

완벽한 마이클 조던에게 부족했던 한 가지

분노와 평온함 사이



2009년, 마이클 조던은 농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그의 기록은 NBA 챔피언 6회, 올스타전 14회 선정, 올림픽 금메달 2회를 비롯해 스포츠 역사상 최고 평균 득점까지 아주 눈부신 성취였다. 은빛 정장을 차려 입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한쪽 링 귀걸이를 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던 마이클 조던의 눈에는 초반부터 눈물이 맺혀 있었다. 단상에 올라온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상을 받고서 수상 소감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만 건넨 뒤에 곧장 자리로 돌아갈 작정이었다고. 그러나 그는 계획대로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 그의 입에서 기묘하고 초현실적인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는 농구 인생 내내 자신이 받았던 냉대를 거의 한 시간 반 동안 일일이 거론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조던은 농담하듯 가볍게 말하려는 듯했으나 자신에게 싫은 소리만 했던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에는 분명히 분노가 가득 서려 있었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대학팀의 감독이었던 딘 스미스가 1981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유망한 신입생이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의 친구들은 마이클 조던이 연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던 의도를 이해했다. 상투적인 소감을 전하는 대신 무엇이 그에게 승리를 위한 정신력을 만들어주었는지 알려주려 했다는 의미였다. 그런 정신력을 갖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분노가 얼마나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이다. 마이클 조던이 선수로서 무시당할 때마다, 과소평가받을 때마다, 누군가가 자기 방식대로 하지 않을 때마다 조던은 이전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다만 문제는 그의 연설이 거의 정반대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데 있다. 물론, 마이클 조던은 분노가 강력한 연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긴 했다. 그러나 그 연료가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망가뜨릴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 지도 같이 보여준 게 문제였다.


정말 마이클 조던을 챔피언으로 만들어준 비결이 분노였을까? 이듬해에 그가 원하던 대표팀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분노 덕분이었을까? 혹은 키가 10센티미터 더 자란 게 분노 덕분이었을까? 분노는 사실 그가 성취한 것을 즐기지 못하게 만드는 기생충 같은 부산물에 불과했던 게 아니었을까?



세네카는 분노라는 감정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로막는다고 했다. 



근시안적으로 보면 우리를 성공하게 도와주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멀리 보면 분노는 파괴적일 뿐이다. 탁월함이 우리에게 만족과 행복, 성취감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그게 과연 탁월한 걸까? 승리를 하려거든 패배자가 된 것처럼 느꼈던 순간을 끊임없이 상기하라는 조던의 조언은 납득하기 어렵다.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의 찢어진 상처를 헤집어가며 하루에 수천 번씩 당겨지는 방아쇠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후회를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노에 이끌려 행동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은 고요할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로막고 자신의 능력과 목표를 줄어들게 하고 만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평온함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업적을 잃지 않고 보호하기 위해서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힘을 길들이고 통제하려고 힘써왔다. 사적인 생활에서 우리가 화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라면 일터에서 이성적인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회생활과 사생활이라는 두 영역을 얼마나 오랫동안 따로 떼어놓을 수 있을까? 도시나 대제국을 통치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결국 모든 게 헛수고일 뿐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적이기보다는 영적인 일이다. 머리로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으로 해야 할 일이다. 


행복 또는 불행, 만족 또는 불만족,
절제 또는 과욕, 고요 또는 동요를 결정하는 열쇠는
바로 우리의 영혼이 쥐고 있다.




참조 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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