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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연 Dec 01. 2017

시베리아 횡단 열차

러시아, 모스크바









자, 이제 게임을 시작하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값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7일 열차 값이 비슷했다. 그렇게 우리가 원하던 유럽의 여름을 쉽고 편하게 비행기로 여행을 할것인가? 아니면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7일간의 더러운 추억을 쌓을 것인가? 쉬운 건 재미없다이가.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구글 지도를 열어 볼 때마다 여기는 뭔데 이렇게 땅덩어리가 큰 거야?라고 생각했던 그 러시아. 지구 둘레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9,288km을 시속 80~90km로 꼬박 6박 7일(156시간)을 열차에서 보낸다고 한다. 자고 일어나면 시차가 7번 바뀌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기에 더 궁금해졌다. 물론 바뀌는 시차와 함께 온전했던 내 정신도 여러 번 바뀔 테고.






1일 차




7호실 좌석 25,26,(*27),(*28) (4인실)



블라디보스토크 출발이라 열차는 미리 대기 중이었고 예약한 4호 차 문 앞에서 여권 & 표 검사 후 탑승했다.

사람 한 명이 다닐 수 있는 좁은 복도에 다른 사람이 지나가려면 몸을 벽에 바짝 붙여야 했다.

2층 침대가 양쪽에 붙어 있는 4인실에 우리 둘. 27,28번 오른쪽 1층, 2층이 일주일 살아갈 우리 집이다. 일단 이 큰 짐덩이를 풀어야 될 것 같은데 보관할 장소가 1층 바닥 밑에 있는 공간뿐이었다. 침대를 접는 방법은 모르겠고 힘으로 구겨 넣자니 짐이 박살이 나거나 침대가 기울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한 정거장이 지나고 엄마와 아들이 들어왔다. 엄마 이름은 올라, 영어를 아주 조금 할 줄 안다는 10살짜리 꼬마 티모시. 열차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를 위해 올라는 이불 정리부터 자리 수납공간까지 다 알려주었다. 짐이 이제 제자리를 찾아 간 듯 반듯하게 바닥에 누워있었고 침대도 더 이상 기울지 않았다. 매일 쓰는 세면도구는 눈 앞에 보이는 곳에 두고 도난의 위험이 있는 물건들은 2층에 보관했다. 100도를 유지하고 있는 뜨거운 물은 열차 맨 앞에, 화장실은 맨 뒤칸에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첫날부터 물이 안 나온다. 혜원이에게 물이 안 나온다고 했다. 꼭 씻고 자야되는데. 아, 양치질은 하고 자야되는데 물이 안 나오면 어쩌고 저쩌고 가 보통의 반응이겠지만 혜원이는 "아 그래?" 가 끝이었다.


각 호차를 담당하는 승무원이 있다. 남자 승무원은 호실을 돌며 열차표를 걷어 내릴 때 준다 했고 디너로 닭고기를 먹을 거냐고 물었다. "예스!!!!!!!! 다 다 다 다!!!". 잠이 쏟아지는데 우리는 닭고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의 사랑 닭은 오지 않았고 여자 승무원이 와서는 내일 런치에 나온다고 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그래도 일단 내일 닭고기가 나온다고 하니 미련 없이 자본다.


물론 씻지 않고.







2일 차




2017년 08월 21일. 오늘 아침. 아, 아침은 아니지 눈을 뜨니 낮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맞은편 아래에 있는 티모시와 눈인사를 하고 화장실로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도꼭지를 열었는데 물이 나왔다. 콸콸콸은 아니지만 새끼손가락보다 얇은 물줄기에 양치질을 했다. 올라와 티모시는 간단한 아침을 먹는 것 같았다. 우리가 챙겨 온 식량이라곤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온 컵라면과 먹다 남은 김치와 김이 끝이었다. 마주 보고 있던 올라는 우리에게 빵 조각에 소시지를 잘라 올려주었다. 그렇게 두 조각.




정확히 12시가 되니 어제 왔던 여자 승무원이 밥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어제 미련 없이 잘 수 있었던 이유는 오늘 내가 먹을 닭고기에 대한 기대감이었는데, 닭고기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밥이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후~ 하면 날아갈 것 같다고 웃으면서 장난으로 후~ 불었더니 진짜 날아갔다. 안 되겠다. 비장의 참깨 라면을 꺼내자.


시간을 달리는 열차 안에서는 할 일이 딱히 없다. 먹고 자고 읽고 싸고 보고 듣고를 반복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은 무슨. 멈춰있는 시간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노트를 꺼내 티모시와 서로 얼굴 그려주기를 했다. 부끄러운 듯 2층 침대에서 우리를 힐끗힐끗 내려다보며 그림을 그렸다. 시간과 정성을 봐서는 우리 모습이 완전체가 돼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 친구는 아무래도 우리를 피자로 생각했나 보다.




오후 2시. 정거장마다 잠깐씩 멈추는 곳도 있었지만 이번 역에서는 올라가 가방을 들고나간다.  티모시는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고 앞장서더니 자기 몸 보다 두  크고 무거운 열차 문을 열어주는가 하면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10초에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걸었다. 그럴 거면 그냥 뒤로 걷지. 귀여운 티모시를 따라나갔더니 기찻길에서 상인들이 음식을 팔고 있었다. 앞으로 4일이라는 시간을 더 달려야 했고 비상식량을 조금 더 비축해둬야겠다는 고민 끝에 열정적으로 산건 꼴랑 빵 2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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