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몸의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현 Feb 23. 2021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런데이/요가 2일 차

빈칸을 0으로 채우며 숙연한 마음이 들게 하는 KMI 건강검진 문진표. 목표는 0 대신 3을 넣기. 3일, 30분, 3일, 30분, 3일...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작성했던 문진표. 처음 검진을 받을 때는 한참 검도를 하던 때여서 0이 아닌 숫자를 채울 수 있었는데, 이사하면서 새로운 도장에 정착하지 못하자 운동량은 바로 급감했다. 칸마다 영, 영, 영, 영을 써넣다가 머쓱해졌다.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걸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전에 살던 동네에선 회사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15분~20분가량을 걸어야 했기에 그나마 출퇴근길 30분은 걸었는데, 지금 사는 곳은 마을버스가 잘 다녀서 그마저도 걷지 않는다. 집 구할 땐 분명 '여기서도 걸어 다니리!' 굳게 다짐했었는데. 여름엔 덥다고, 겨울엔 춥다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엔 잠이 부족하단 핑계로 덥석 덥석 마을버스에 잘도 몸을 실었다. 그 결과, 2017~2018년엔 평균 8 천보 걷던 것이 2019년엔 7 천보, 2020년엔 5 천보, 2021년엔 3 천보. 점점 걷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갔다. (재택근무의 여파도 생각보다 컸다. 1초 만에 퇴근하고 눕는 짜릿함은 언제나 좋았지만, 그 탓에 그나마 조금 있던 근육마저 알게 모르게 살로 대체됐다...) 새로운 운동이 필요했다.


주로 여럿이 같이 하는 운동을 좋아하고(탁구, 검도 등), 운동을 고를 때도 '재미'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라 헬스나 달리기, 요가는 딱히 고려해 본 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비슷한 시기에 달리기와 요가를 시작했다. 과연 즐겁게, 오래 할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껏 안 해봤던 움직임이다 보니 나름대로 새롭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둘 다 접근성이 높은 운동인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운동장이 있고, 방에는 요가매트가 있으니 마음먹기가 1번, 실천하기가 2번으로 실행 단계가 짧다.

 


오늘은 퇴근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아직 해가 남아있을 때 뛰고 싶어서였는데, 잘한 선택이었다. 워밍업 걷기를 하고, 첫 1분 달리기를 하기 위해 막 뛰쳐나가는 바로 그때의 기분이 몹시 좋았다. 하늘 빛깔도 예쁘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서 왠지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신나서 뛰는 바람에 약간 오버 페이스 했지만 오늘 뛴 26분의 시간 가운데 그 순간이 가장 상쾌했다. 오늘의 러닝메이트는 샤이니. 노래를 들으면서 달리니 덜 지루하고 시간도 금방 갔다. 후렴구에 맞춰 뛰니 리듬감도 생기고.


안 쓰던 운동화를 오랜만에 꺼내 신고 달렸는데 오른쪽이 딱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뛸 때도 발뒤꿈치 부분이 쓸리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 멈추자니 애매해서 무시하고 계속 뛰었다.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커다랗게 피물집이 잡혀있었다. 검도와 클라이밍을 할 땐 손이 성치 않았다. 뛰기 시작했더니 고작 이틀 만에 발에 물집. (새 신발 신을 때도 그렇고 물집은 꼭 오른발에 생긴다. 오른쪽 발이 더 크거나 작은가?) 그래도 마냥 싫진 않다. 어떤 운동이든 하고 나면 몸에 흔적이 남는다. 잔잔한 근육통이 허벅지의 존재감을 일깨운다. 이리저리 몸을 쓰고, 그래서 그 부위가 욱신거릴 때에야 위치와 기능을 자각하게 되는 것 같다. 기록으로 남으니까 점점 욕심이 생긴다. 다음에 달릴 때는 매 회차 고른 페이스로 뛸 수 있게 해 봐야지.


집에 돌아와서는 무겁게 느껴지는 하체를 조금이라도 풀어 보고자,  발의 피로감을 덜어주는 요가 : 인요가하체 부종 완화를 위한 요가 : 하타요가 영상을 따라 했다. 처음으로 발깍지를 끼워봤다. 발가락 하나하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몸의 일부이지만 딱히 의식해 본 적 없던 부위여서 새삼스러웠다. 그 상태로 누웠더니 기묘하게 시원하고 편안했다. 골반도 이리저리 풀어주고, 잘 안 되는 동작도 최대한 열심히 따라 해 보았다. 한 동작 한 동작 머무르는 시간이 아직은 조금 길게 느껴진다. 동작을 하고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올 때도 천천히 호흡하며 스르륵 풀어야 하는 것 같은데 성격이 급해서인지 동작이 불편해서인지 무심코 툭툭 내려놓곤 아차차, 하는 중이다. 어제도 느낀 거지만 오른쪽 어깨가 상대적으로 더 뻣뻣하고 잘 열리지 않는 것 같다. 이 작은 차이를 자각하며 그간 몰랐던 내 몸에 대해 하나 더 알아간다.




오늘 글의 제목은 김연수 작가의 산문에서 따왔다. 작가는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라고 했지만 나는 아직 판단할 수 없어서 슬쩍 물음표를 붙여 본다.


- 고통이 아니라 경험에 집중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건 삶을 살아가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 몸은 전혀 뛰고 싶지 않은데도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몸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에 달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는 아마도 매일 뭔가를 끝낸다는 그 사실에서 이 기쁨이 오는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 고통과 경험이 혼재하는 가운데, 거기 끝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자발적으로 고통이 아니라 경험을 선택할 때, 그리고 달리기가 끝나고 난 뒤 자신의 그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인할 때, 그렇게 매일 그 일을 반복할 때, 세세한 부분까지 삶을 만끽하려는 이 넉넉한 활수의 상태가 생기는 것이라고. 어쨌든 아직까지 그 이유는 모른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가능하리라.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시작할 때 그렇지 않다면, 끝날 때는 반드시 그렇다.(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 24-27쪽)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 유랑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