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탈회사형인간을 선택하다

'사회생활'이란 명목으로 수 없이 스스로 희석했던 나를 되찾기로 결심하다

by 뉴프레임코웍스

INTRO



"이마 긁지 마세요."



아침 9시부터 시작되는 월요 임원 회의 시간. 대표이사와 임원진까지 10명 남짓. 대표이사를 제외한 모두가 단두대에 오르는 심정으로 회의를 마주한다. 대표이사의 관심사와 기분에 따라, 그날 처형될 인물은 결정된다. 갑작스레 내게 날아온 저 한 마디에 나는 애써 마른침을 삼킨다. 오늘은 나구나. 짧은 예고편은 끝났다.



"이게 왜 이렇게 진행됐죠?"

"대표이사님이 컨펌해주신 사항 그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마를 긁지 말걸. 아니 앞머리를 자르지도 말걸. 아니, 방금 저 대답도 하지 말걸. 애초에 이 회사로 이직을 하지 말걸.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지만, 되돌릴 수 없는 모든 것을 떠올렸다. 내 대답 이후 30분째 아무도 말이 없다. 옆 시야로 살짝 보이는 대표이사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나는 기어들어가는 고개가 싫었다. 자꾸만 숙여지는 고개를 똑바로 들어 올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차마 앞을 보진 못했다. 시선까지 들어 올려 회의실의 모두와 눈을 맞출 자신이 없었다. 모두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일이 너무 좋았는데



"삼성병원 말고 차병원으로 갈게요. 지금 맥박은 정상이에요. 숨은 쉴 수 있으세요?"



구급차였다. 분명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고 있었다. 소리가 멀어지고, 시야가 좁아지더니, 중력을 벗어나 현실을 이탈하듯 감각이 소실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구급차에 누워서 집 근처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는 것이었다. 숨도 쉴 수 있고, 귀도 다시 들리고, 눈도 다시 보였지만, 사지에 아무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맥없이 대답도 못하고 구급차의 천장만 바라봤다.



구급차의 천장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누운 내 옆의 구조대원은 나를 계속 살폈다. 안도감이 온몸을 감싸는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1984년에 태어나, 한 번도 이탈 없이 정규 교육을 마치고 대학도 잘 졸업했다. 취직해서 그동안 열심히 일했고, 요령을 몰라 손해 보는 기분은 있어도 성취감을 추구하며 일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일 년에 해외여행은 서너 번씩 다녔고, 쇼핑하며 가격표를 볼 필요가 없는 인생을 살았다. 130만 원이 넘는 구두도 산뜻하게 결제했고, 주말이면 그 구두를 신고 나가 청담동에서 꽃꽂이를 배웠다.



"심혈관계 계통의 이상은 없어요. 호흡곤란의 원인은 공황장애가 의심됩니다."



의사는 내게 미안한 듯 말했다. 의사의 태도에 나는 나를 볼 낯이 없었다. 미안해할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숨 쉬는 시간도 눈치를 봐야 하는 회사에 스스로를 밀어 넣은 장본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하는 내내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이 내뱉은 말은 이미 10년을 읊어도 모자랄 만큼 쌓여있었다. 위선은 아니었다. 필요해서 쥐어짜던 말들이 어느새 술술 나왔다. 처음에는 '이것도 인생-'이라며 배운다고 생각했다. 내 착각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알 수 없는 것들에 희석시켰고 어느새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게 숨통이 막혀버렸다.



며칠 지나지 않아 퇴근길에 또다시 호흡곤란이 왔다. 두 손으로 목을 부여잡고, 제 발로 보이는 아무 병원이나 들어갔다. 숨을 쉴 수 없으니 도와달라고 뻣뻣해진 내 몸이 가까스로 말했다. 응급조치를 끝낸 병원은 내게 공황장애 병력 여부를 물었다.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한 꾸러미 들고, 나는 길가에 멍하니 한 참을 서있었다. 이르게 단 팀장님이란 타이틀은 버거웠지만, 그동안 나는 잘해왔는데. 이룰 땐 뿌듯했는데, 내가 결국 된 건 '숨 못 쉬는 사람'이라니.




36살, 탈회사형인간을 선택하다



그리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사직서가 접수됐다. 사직서 수리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피고용인은 희망 퇴사일을 통보하고 난 이후에는 이후 후임자 마련 등에 아무 책임이 없다. 회사가 그에 맞춰 대안을 마련해야 할 뿐이라고, 동고동락했던 인사팀 부장님이 일러주었다.



나는 36살이었고, 약 12년을 일했다. 졸업하면 당연히 취직하는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회사생활. 그 12년을 끝낼 날짜는 내가 선택해야지. 일하는 동안 내 이름 세 글자보다 더 중요했던 내가 달성한 숫자와 직함들에 이별을 고한다.



그렇게 짐을 챙겨 수많은 숫자로 쌓아왔던 찬란했던 역사를 뒤로 하고 택시를 탔다. 나는 이제 명함이 없다. 소속된 회사도 없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소개할 것은 나이와 이름뿐이다. 이제는 동료와 경쟁하지 않는다. 내 업무 성과를 뻔뻔하게 채어가던 상사에게 엉길 필요도 없다. 애정을 쏟았지만, 동시에 서운했던 후배도 없다.



이제부터 나는 내 인생과 맞선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앞으로 회사에 다니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가꾸기로 했다. 0부터, 혼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가치를 찾아가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다.






+) 퇴사를 꿈꾸는 모든 분께

탈회사형인간을 꿈꾸고 있는 분들께서 이 글을 읽는다면 공유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유튜브만 봐도 창업이니 투자니 제2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조금 더 날 것으로 표현하자면 '부추깁니다'. 이 시대는 또 어떤가요. 성공한 사람에게는 엄지를 추켜올리지만,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는 들을 기회가 잘 없습니다. 그나마 나눠지는 실패담마저도 축소되고 미화되기 일쑤더라고요.



이 글은 제 경험담입니다. 스스로에게 이런 무모한 실험을 한 이유는 여러분과 제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회사에서 연봉 좀 더 잘 받기 위해, 진급에서 누락되지 않기 위해,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좋은 결과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다 균형을 잃곤 하잖습니까. 저는 좀 극단적으로 공황장애 발작을 겪었지만... 일을 너무 좋아했던 제가 일을 맘껏 하는 동안 사실은 행복은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실패담이 될지도 모르지만, 제 인생에 한 실험이니 성공이냐 실패를 논할 수 있는 것도 저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용기가 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퇴사 이후 겪게 될지도 모르는 과정과 창업기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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