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1. 정해진 시간표를 이탈하면 마주하는 것들
출근길 매일 같이 마주쳤던 지하철 속 많은 사람들. 행선지는 다르지만, 대부분 삶은 목적도 방법도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8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를 배정받고는 교복을 맞춰 입었을 것이다. 3년 뒤엔 고등학생, 또 2년 뒤엔 수험생이 된다. 수능을 보고, 등급에 맞춰 대학에 가고, 돈을 벌기 위해 취직에 애쓰고, 그렇게 자리 잡은 직장에서 매달 월급을 받고. 그리고 다시 출근길에 오르며 그다음 월급을 기다리는 내내 우리는 아침 9시에 시작되는 삶을 산다.
(지우기. 지우기. 지우기. 지우기-)
회사를 그만둔 뒤, 휴대폰에 저장된 알람 10개부터 모두 없앴다. 알람이 지워질 때마다,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에 남보다 먼저 타려 애쓰던 내게서 벗어났다. 에스컬레이터를 급한 마음으로 오르며, 앞을 가로막고 묵직하게 서있는 사람에게 쏘아대던 초조함의 화살을 든 내게서도 벗어났다.
회사를 그만두면 바로 마주치는 것이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의 변화다. 대학생 이후 다시없을 것 같은 방학이 시작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이상한 기분, 불안감 때문에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빡빡한 일정이 없다는 것이 생경했고 동시에 두려웠다.
내일은 무얼 하지-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있었나-
앞으론 무얼 하지-
돈은 어떻게 벌지-
원래 내가 살고 싶었던 인생과 멀어지면 어떡하지-
난 어떻게 살고 싶은 거지-
우주의 모든 질문이 나를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푹신한 침대가 풍랑에 부서진 뱃조각 같았다. 춥고 어두웠으며 막막했다. 나는 지도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나의 조난은 계속됐다. 하루의 시작이 막막했다. 오늘은 또 어떻게 보내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하루는 식욕도 없는 채 더디게 흘렀다. 아픈 신발을 신고 집을 나와 귀가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는 심정으로 밤이 오길 기다렸다. 온종일 석궁처럼 쏟아지는 인생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쉬지 않고 내리는 비처럼 내 몸에 꽂혀왔다.
은퇴 후 창밖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아빠의 하루가 이랬을까. 아빠는 일과가 없어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2:8 가르마를 타서 머리를 정돈하고, 정장 바지와 니트를 꺼내 입은 채로 소파에 앉으셨다. 창 밖을 응시하다, 때로 눈을 감고 잠드셨다. 다시 일어나서 벽시계를 확인하고 다시 창 밖을 응시하다 장을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가셨다. 원래 없는 아빠의 말수는 더 줄어들었다.
나는 그런 아빠가 여태 일해온 노고를 잊고, 인생의 즐거움에 집중했으면 하고 속으로 안타까워했었다. 내색하지 않길 천만다행이다. 모르고 두는 훈수는 다 헛소리다. 아빠는 월급이 없다는 사실에 불안했던 것이 아니다. 당장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해본 적 없음에서 오는 혼란을 정리했던 것이다. 이제는 내 차례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36살에 택한 막연한 퇴사는 '지금이라 다행이야'라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루에 3시간을 잠들기가 힘들던 날을 반복하며, 나는 깨달았다. 사회에 정해준 시간에 일어나고, 해야 할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데 몸이 완전히 물들어있다는 것을. 알람을 지우는 것만으로 9 to 6 DNA는 사라질 리 만무했다.
자유로운 시간에서 오는 불안은 일종의 금단현상이었다.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헤드헌터들의 달콤한 전화는 모두 거절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사회 시스템'의 안락함의 중독성에 소름이 끼쳤다.
'이 싸움에서 질 수 없어. 굴복하지 않을 거야.'
안락함에 젖어 살던 그 시기는 분명 끝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은퇴 후와 같은 무서운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불안감 대신 회사가 아닌 스스로 존재 이유를 찾기로 결심했다. 회사가 아닌 그 무언가를. 우선은 익숙해지는 것이 승법이다. 이 링 위에 설 것을 선택한 사람은 나다. 나는 이기기 위해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며,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제 회사는 다니지 않겠다'라는 각오는 이직 전 갖는 공백기와는 다릅니다. 공백기는 재충전의 시기이자, 즐거운 방학과 같습니다. 하지만 회사생활에 이별을 고한 뒤 마주하는 건 인생의 완전한 무게입니다. 돈에 대한 걱정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나를 짓누르는 복합적인 감정이 나타나게 되더라구요. 준비된 퇴사 거나 그렇지 않은 퇴사 거나,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했던 장소와 사람을 떼어내고 나면 그 자리에는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무리 떨쳐내려고 해도 혼란할 것입니다. 종교가 있다한들 마음이 평화롭지 않으며, 무릎이 풀썩 꺾이는 막연함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집요하게 파고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회사형인간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어라 다닌 회사에서 10년 뒤 해고되면, 제 나이는 46살입니다. 그리고 그땐 ROUND1에서 느꼈던 감정보다 백배는 더 끔찍한 기분을 겪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ROUND1을 겪는 모든 분들께, '지금이라 다행이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