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2. 새로 쓰는 월급의 개념과 자기 심사
모든 직장인을 한 달에 한 번씩 기분 좋게 하는 달콤한 단어, '월급'. 월급이 급여통장 속으로 이체된 순간만큼은 마음 든든하게 부자가 된 것 같은 환상에 젖는다. 직장인은 1년 중 12번 월급을 받는다. 즉, 365일 중 12일만큼은 정말 기분이 좋을 수 있는 삶을 산다.
월급은 회사생활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보상장치다. 강렬한 마약이다. 그래서 쾌락이 확실하지만, 부작용이 심각하다. 안타깝게도 부작용은 회사에 다니는 동안 거의 생각할 기회가 없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먹고사는 것이 바쁘고 버겁도록 설계된 이 사회구조는 누구라도 월급의 부작용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월급 받는 삶의 부작용, 즉 현실이란 이렇다. 365일 중 월급일 12일을 제외한 353일을 노예처럼 저당 잡히는 삶. 정년이라는 유통기한이 있어 언젠간 내 의지와 관계없이 퇴직금 받고 정리되는 삶. 심지어 요즘은 정해진 정년보다 더 빨리 끝나는 삶. 그래서 45세쯤이면 직장의 내 책상이 사라지는 삶. 그 이후는 죽을 만큼 혹독한 삶. 기분 좋게 시작해서 막연하게 끝나는 삶...
"직장인은 월급을 받는 동안 먹고살고,
직업인은 평생을 먹고 삽니다."
퇴근 후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강연장인데, 분위기가 숙연하다.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의 사람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급 받아 한 달 살고, 다음 월급 기다리는 직장인일 것이다. 우리네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가니까. 부모님도 그렇게 정년 내내 허락된 월급을 받아 나를 키우셨다.
"은퇴 이후엔 무엇을 하고 살 수 있을까요?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45세에서 50세쯤 직장 수명이 끝난다면
남은 30년의 시간은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요?"
강연은 계속됐고, 은퇴한 아버지가 한낮의 창 밖을 바라보던 굳은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연사는 우연히도 예전에 내가 다녔던 글로벌 회사의 한국 지사장을 지낸 분이었다. 직장의 한계를 깨닫고, 홀로 나와 1인 연구소를 차렸다고 했다. 직장과 상관없이 나만의 전문 영역으로 직업을 만든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들을 일러주었다.
강연 내내 기분은 가라앉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곧 다 잊어버렸다. 지하철 속 사람들에 부딪힐 때마다, 강연 내용도 '알아두면 좋은 지식' 정도로 정리가 되어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 몇 년이 흐를 때까지도 그 날의 강연은 '(아직은 나와 상관없지만 언젠가를 대비하기 위해) 알아두길 참 잘한 인생에 대한 접근법' 정도로 내 기억 속 한편에 묻혀있었다.
나는 그 이후에도 월급을 타면 일부는 저축과 펀드 등에 넣었고, 저축한 금액을 제외하고는 마음껏 썼다. 친구를 기다리며 들어간 백화점에서 눈에 보이는 립스틱을 샀다. '필요하니까'하며 옷을 샀고, 비싼 가방과 구두를 샀다. 휴가는 해외로 여행을 나갔다. 가족들에게 호사스러운 저녁과 와인을 샀고, 사회적 기업이나 종교 단체의 자선 활동을 지지하며 기부도 했다. 적당한 품위를 챙겨가며, 직장인의 안락함을 누렸다.
탈회사형 인간을 선언한 뒤, 그 안락함은 바로 산산조각 났다. 우선 나는 약 1달 동안 병원에서 살았다.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로 물들어 망가진 신경계 때문에 공황발작으로 응급실에 갔었다. 또한 어처구니없게도 보도블록 위에 흥건했던 물기를 보지 못하고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몸이 아픈 것은 재정비의 시간이 운명처럼 찾아온 것이라고 스스로를 토닥였다. 하지만 병원비 같은 돈부터 휴대폰비나 그동안 습관처럼 타던 택시비 등 다양한 고정비로 돈이 무섭게 빠져나가는 건 어떤 위로에도 소용이 없었다. 돈은 현실과 맞닿은 문제였다.
'근데, 그래도 이건희도 돈 걱정할 거야.'
다리에 깁스를 하고 누운 채로 생각했다. 그리고 빠져나가는 돈에 연연하지 않을 방법을 찾고자 생각했다. 우선은 변하지 않는 사실부터 나열했다. 나는 돈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니다. 모아둔 돈은 꽤 됐다. 그냥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겁을 먹은 것이다.
돈은 들어오는 것 또는 모아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많을 때, 잔고는 0원에 수렴한다. 쌓인 돈이 많아도 나가는 돈이 많으면 잔고는 0원이 되고야 만다. 들어오는 게 1천만 원이더라도 같은 시간 안에 2천만 원을 쓰면 1천만 원은 마이너스다. 논리에 따르자면, 부자도 얼마든지 파산할 수 있는 셈이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으면, 나는 파산하지 않는다고 우선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나는 파산하지 않는다'부터 생각을 시작하니 돈이라는 건 액수보다 주도권의 문제란 생각이 스쳤다. 돈에게 끌려다니는 삶은 가진 액수와 상관없이 불행하지 아니한가. 회사를 다니던 나의 지난날은 돈에게 끌려다니는 삶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월급을 주는 주체가 나의 재정과 행복을 결정하는 삶.
그렇게 받은 월급으로 스트레스를 푼답시며, 얼마나 많은 헛된 지출 속에 허덕였던가. 예를 들어 월급이 500만 원인 삶이 있다고 가정하자. 회사 다니며 필연적으로 지출하는 교통비, 식비, 각종 품위 유지비, 그 외 일명 '시발 비용'이 300만 원 가까이 된다면 실제 소득은 200만 원인 셈이다. 아끼면 아끼는 대로 고달프고, 쓰면 쓰는 대로 허덕이는 슬픈 매일인 것이다.
돈은 살고 싶은 삶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 정도가 유지될 때 행복하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부터 정리가 필요한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할 줄 아는 것들로 어떻게 주도적으로 돈을 벌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했다. 36살이 되어 이런 걸 스스로에게 물어볼 줄 상상이나 했던가. 장래희망이라는 말이 낯설었다. 그렇게 냉정한 자기 심사가 시작됐다.
탈회사형인간을 꿈꾸고 있는 분들의 가장 큰 염려는 '돈'일 것입니다. 즉, '생계'일 테죠. 당연한 일이니 생계에 절절맬 때는 열패감 느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식비, 휴대폰비, 교통비 외에도 자녀양육에 소요되는 비용, 대출을 갚는데 소요되는 비용 등 다양한 고정비용이 존재할 수 있고 그걸 위해 열심히 살아온 것은 충분히 고되고 존경받을만한 삶입니다.
퇴사는 고려하고 있지만, 많은 고정비용이 염려될 때는 고정비용 목록을 작성해보세요. 중단시키거나 축소시킬 수 있는 것들은 없는지 점검해보세요. 저 역시도 펀드를 중단시키고, 휴대폰 요금을 조금 더 싼 것으로 바꾸고, 각종 경조사 및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 필요한 품위유지비는 금액 한도를 지정했습니다. 옷은 바자회를 통해 얻어왔고, 여행은 향후 무언가를 통해 월 순수익 300만 원 이상을 버는 시점 이후로 스스로에게 약속했습니다. (평생 못 갈지도...)
그리고 현재 가지고 있는 돈 중 얼마나 많은 돈으로 탈회사형인간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을 가늠해보세요. 탈회사형인간으로 해보고 싶은 것에 도전해보는데 어림잡아 3년이 필요하다고 가정할 때, 2년을 버틸 돈 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점검이 필요합니다. 불안과 초조함으로 돈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시점은 2년보다 더 빨리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럴 땐 '월급'을 영리하게 이용하세요! 월급은 잘만 이용한다면, 내 삶의 밑천이 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