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 월급만 빼고 돈이 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
자기 심사를 위해서는 자기 조사가 필요했다. 회사에서 멋들어지게 컨설팅 보고서를 쓰던 것처럼 나에 대해서 분석하고 싶었지만 부끄럽게도 불가능했다. 현재 마음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다. 낡은 창고 정리하듯 마음을 속속들이 꺼내어, 차곡차곡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막연히 쓰기 시작했다. 내가 살았으면 하는 삶. 예전에 들었던 강연을 떠올리며, 80세까지 산다면 지나온 36년이 아닌 남은 44년의 인생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지 아무렇게나 적어 내려갔다.
[내가 살았으면 하는 삶]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삶,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삶
몰입할 수 있는 주제가 유지되는 삶
나이와 성별과 경험치로 타인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 삶
할 말은 하고 살았으면 하는 삶
그렇다면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뭘까. 할 줄 아는 것을 모아 저렇게 살아감이 가능한가. (만약 불가능하다면, 생계는 재취업이라도 해서 벌어먹고, 탈회사형인간의 삶을 접은 뒤 취미로 봉사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 할 줄 아는 것들 중 저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기술은 무엇이 있을까를 알아볼 차례였다. 국내 회사건, 외국계 회사건, 의료제약분야건, 뷰티 분야건, IT분야 건 그동안 다양하게 회사를 다니며 내 기술이 된 것 무엇이 있을까. 할 줄 아는 것만 적는 게 너무 힘들어서 해본 것 중 혼자서라도 다시 어떻게든 해볼 만한 것도 함께 적어내려 갔다.
[내가 할 줄 아는 것]
메시지를 만드는 것, 가치관을 타겟이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다듬는 것
만들어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타겟들에게 전달하는 것
PR/마케팅과 관련된 기능적 문서 만드는 것 및 캠페인 진행하는 것
시장조사하는 것, 이것을 바탕으로 다음 트렌드를 예측하는 것
제품을 개발하는 것
의미와 스토리를 불어넣는 것
브랜드 자료용 사진 찍는 것, 포토샵으로 보정하는 것
누군가 앞에 서서 말을 하고 설득해서 예산이든 허락이든 받아내는 것
계산착오로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 그리고 수습하는 것
써 내려가다 보니, 허투루 살아온 것 같진 않았다. 여태 업으로 PR이다 마케팅이다 신규사업 개발이다 이름 붙어왔던 것들의 총합은 '무언가의 대상에서 의미를 발굴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다듬어, 이를 확산 가능한 형태로 다듬는 일련의 과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이 선한 영향력으로 존재하려면 '사회공헌적 성격이 있는 브랜드를 런칭하는 것'이 우선 필요했다.
살면서 한 번도 내가 브랜드를 런칭하리라고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브랜드는 유명한 사람이 스스로 되는 것이거나, 돈 많은 기업이 투자해서 제품에게 붙는 이름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남들이 지켜보거나 동경하는 인플루언서도 아니었고, 돈이 많지도 않았다.
'정말 내가 브랜드를 런칭하는 것이 살고 싶은 삶을 살게 해 줄까?'
바꿔 말하면, 정말 그렇게 런칭한 브랜드가 생계를 위한 돈을 벌어다 줄지도 점검해봐야 했다. '계산착오로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 그리고 수습하는 것'을 할 줄 아니까, 수습도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옴맘마, 내 마음이 왜 이래? 진짜 뭐라도 만들어버리는 거 아니야?'
갑자기 막연히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못하면 어때- 싶었다. 과거에 무모했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온 일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어학연수도 100만 원만 들고 (심지어 환전도 안 한 채로) 떠났던 나다. 아르바이트가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런던으로 떠나 밥을 굶어가며 고생도 했었다. 하지만 한국에 잘 돌아왔고, 갑자기 AFN KOREA의 인턴이 되었었다. 그 인턴경력이 발판이 되어 좋은 회사들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 경력들이 쌓여, PR도 마케팅도 빅데이터 사업이니 신규 화장품 개발이니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내게 찾아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결국엔 좋았다.
'그래, 뭔가 탈회사형인간으로서 프로젝트를 한 번 벌여보자. 브랜드를 만들고, 살고 싶은 삶의 가치를 투영해보자. 그리고 이게 돈이 되는지 한 번 나를 시험대 위에 올려보자고.'
갑자기 생긴 시간을 자율성으로 채워 넣으려 애쓰던 ROUND1이 끝나니, 월급으로부터의 독립과 돈에 대한 개념을 새로 다잡는 ROUND2가 정신없이 시작됐었다. 그리고 어느덧, 탈회사형인간의 삶에는 ROUND3. 삶의 비전과 업을 일치시켜보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매 싸움의 주제는 어쩜 이리 갑자기 튀어나오는지. 정신없이 얻어맞는 중에도 나와의 겨루기는 계속됐다. 그래도 뭔가 시작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만으로, 지난 몇 년간 느껴본 적 없던 일렁거림이 내 안에 가득 찼다.
퇴사를 고려하고 있으나, 먹고 살 방법이 막막하여 망설이는 분들이 보셨으면 합니다. 유튜브만 보더라도 창업이다 투자다 실전 해법을 설명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공법은 넘쳐나고, 실패담은 성공한 사람들이 비로소 성공 후 담담하게 풀어내며 축소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창업기를 쓰려는 건 아닙니다. 퇴사 이후의 대책, 창업 계획을 아무리 꼼꼼히 세워도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미지수입니다. 특히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대책은 신기루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모눈종이 같은 계획이나 대책이 없다고 불안해하기보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할 줄 아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목록으로 정리하는 것을 해보시길 꼭 권장합니다. 회사를 다니더라도, 할 줄 아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점검해보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지 않은 분들은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할 때까지 월급을 적극 이용하세요.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나, 할 줄 아는 것이 많이 없다면 할 줄 아는 것을 확보할 때까지 월급을 잘 활용하세요-라고 감히 팁을 나누어봅니다. 내 안의 창고를 헤집으면, 나도 몰랐던 목표나 기술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보물 찾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