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퇴사 후 '번아웃'

ROUND 4. 퇴사 후 무언가 해보려 한다면 반드시 겪게 될 번아웃

by 뉴프레임코웍스

퇴사 후 스스로에게 쏟아붓는 열정의 함정



퇴사 후 시간의 강박, 월급의 금단현상에서 가까스로 벗어나니 몸이 가벼웠다. 삶의 목표를 정비하고, 내가 가진 무기들을 확인하고 나니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의욕도 일렁거렸다. 회사 다닐 적 쌓은 경력으로 내 브랜드를 만든다고 생각해보니 까짓것 못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내가 아는 한, 브랜드는 분명한 철학을 어떤 이름에 담고 이를 보여주는 활동을 계속 반복하며 얻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래, 일단 다 할 줄 아는 거다. 바지런히 노력만 하면 되겠다.'



먼저 이름. 이름은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철학이 있으니 혼자서도 지을 수 있었다. 아이디어 회의 과정을 혼자서 진행하려니 녹록지는 않았으나, 약 3주에 걸쳐 철학을 정리하고 원하는 이름을 짓는 데는 성공했다.



그다음 활동. 해당 활동 계획을 기획하는 것도 약 4주간에 걸쳐 혼자 자문자답 형식으로 아이디어를 냈다. 근데 이상했다. 너무 어려웠다. 무언가 너무 더디고, 어떤 때에는 내가 무얼 하는지 의문에 빠졌다. 경력 12년 다 어디로 간 거지... 싶었다. 회사에서 일하던 것과 비교하여 3분의 1 정도의 속도로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느려도 한참 느렸다. 눈 뜨자마자부터 자기 전까지 하루 14시간 이상을 일에 매달리는데도 느려 터진 속도였다.



그래서 계획이 완결되지 않았음에도 실행도 함께 곁들여, 계획 중 실행이 가능한 부분과 향후 수정이 가능한 부분은 바로바로 실천으로 옮겼다. 브랜드 로고도 직접 제작하고, 페이스북이니 인스타그램이니 블로그니 하는 다수의 SNS 채널도 직접 만들고, 계정에 올라갈 게시물도 바지런히 작성했다. 느려 터졌지만, 노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보자고 나를 다잡았다.



내가 만든 브랜드는 과거 가치소비에서 '사회적 가치'만이 강조되던 것을 탈피해, '소비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자는 철학을 담고 있었다. 즐거운 소비가 철학의 핵심인만큼, 판매할 물건을 기획/제작/소싱하는 과정도 필수였다. '상품 기획은 해봤으니, 제작이나 관련 부속 자재의 소싱은 뭐 물어물어 가며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는 돕는다니, 노력 앞에 불가능이 있겠는가- 힘을 내자며 다독였다.



그러나....



정식 창업도 아닌, 창업 준비 7주 차가 되었을 때 나는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며칠을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침대 위에 웅크리고 누웠다. 세수도 하지 않고, 잠옷을 입은 채로 하루 종일을 보냈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러다가 잠이 들면 잤다. 선잠이라 오래 자지 못하고 곧 깨어났다. 눈을 뜨면 다시 막막한 심정이 해일처럼 나를 덮쳤다. 낯설지 않은 감정이었다. 나는 조난 중이었다. 매트리스가 풍랑 속 부서진 갑판 같았던, 퇴사 직후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혼자라는 한계를 잊지 말아요



'무엇부터 잘못된 것일까.'



찌질의 역사가 매 순간 쓰이고 있었다. 나는 가난한 마음을 들추며 복기를 시도했다. 거지꼴로 누워있는 나의 내면을 스스로 다시 열어보는 것은 무척 괴로웠지만, 무언가 해보려던 의욕을 잃어버린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원인은 '감정 기복'이었다. 나의 매일은 '할 수 있다'와 '하, 어쩌지. 못할 것 같아'가 에버랜드 티익스프레스처럼 구불거렸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미친년 널 뛰듯'이 있다. 휴대폰을 켜, '미친년 널 뛰듯'을 검색창에 입력했다. '미친 여자가 재미도 모르고 널을 뛴다는 뜻으로, 멋도 모르고 미친 듯이 행동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없었다.



'목표가 저 방향이다. 해본 일들이니 혼자서도 해보자'는 생각은 순진무구한 생각이었다. 내가 해본 것 중 해본 일은 없었다. 전제 조건이 달랐다. '회사 없이 나 혼자'라는 조건을 간과했던 것이다. 회사에는 동료가 있다. 내가 해보지 않은 일을 해봤던 타 부서도 있다. 업무 추진에 필요한 자료 조사와 행정 업무를 지원해주는 팀원 및 인턴도 있다. 이들은 나보다 더 신선한 시각으로 젊은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최종 결제를 해주는 대표이사도 있다. 그리고 여기엔 나 혼자 있다.



크루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바다를 건너봤다며 널빤지에 손으로 물을 저어가며 나아가는 내가 혼자 있다. 배에는 알바부터 실장부터 대표까지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여기 널빤지에는 내가 혼자 있다. 어떤 역할을 하나 하는 동안, 다른 역할들은 일제히 '멈춤 상태'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계산을 잘못한 나는 홀로 '번아웃'을 맞았다.



뜨거운 물로 정성 들여 씻었다. 워페인팅 하는 심정으로 로션을 바르고, 머리도 꼼꼼히 말렸다. 새 실내복을 꺼내 입고 책상에 앉았다. 항로 설계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 속도보다 방향, 당신은 위대합니다



저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는 부분이지만, 정말 백수의 번아웃은 존재합니다. 분업 형태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혼자서 모든 일을 빠르게 처리해도 회사에서 일하던 것보다 속도는 나지 않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나'입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타임라인도 '나'에게 맞추세요. 혼자 일하는 게 뼛속까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너무 타이트한 일정 관리가 오히려 좌절감만 줄 것입니다. 이런 속도라면 쫄딱 망할 것 같다는 위기감과 하루를 끝내고 보면 별로 되어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허무함만 쌓일 테니까요.



'속도보다는 방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처음 가는 길이니 서두르다 넘어지는 것보다는, 천천히 가도 제대로 가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해주세요. 그리고 퇴사해서 이제 정말 '싫은 사람'을 보지 않아도 되고, '참기 어려운 것을' 묵인하고 넘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자주 떠올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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