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인스타그램을 켜니 주말 사이에 있었던 각종 브랜드 행사에 다녀온 사람들의 게시물이 피드에 가득하다. 이태원 현대카드 스페이스에서 열렸던 'HOUSE OF VANS(하우스 오브 반스)', 홍대 AK플라자 펜트하우스에서 열린 '무신사 테라스'가 제일 눈에 띄었다. 랄프로렌의 랄프스클럽과 볼보의 S60 소셜 필름 공개 행사 포스팅도 간간히 보였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직전, 네이버를 켰을 때는 실시간 검색 차트에 토스 행운 퀴즈 정답과 에버 콜라겐 미친 특가가 나란히 올라있다.
토, 일 양일간의 행사로 총 2,698개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생산한 하우스 오브 반스 행사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만들거나 팔거나 하는 일과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있다면) 당연한 것 같지만, 브랜드는 왜 자꾸 돈을 들여서 이런 마케팅 이벤트를 벌이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철학에 맞는 행보를 충실히 걷는 브랜드도, 이성이 끼어들 틈도 없이 감각 영역에서 대중을 사로잡는 브랜드도 너무 많은 요즘이다. 러브마크가 너무 많아진 요즘, 일단 눈에 띄고 볼 일인 셈이다. 그래야 누군가가 이를 떠들어주든지 말든지 결정이라도 할 것이다.
눈에 띄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문제는 항상 '예산'이다. 핫플레이스를 대관하고, 셀럽을 초청하고, 잘 나가는 디제이나 뮤지션을 부르고, 가장 트렌디한 케이터링을 올리는 것. 억 단위를 금방 넘기기 쉬운 이 마케팅 행사 말고 10만 원으로도 가능한 효과적인 방법이 있으니 바로 슈프림이 창조한 '스티커밤' 또는 스티커 마케팅이다.
'소수'를 위한 슈프림의 스티커
'슈프림은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브랜드잖아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이미 오답자다. 먼저 슈프림은 누구나 원하는 브랜드가 아니며, 특히 스티커 밤이 성공한 건 '특정 소수가 원하는 것'이 먼저 되었기 때문이다.
슈프림이 1994년 뉴욕 맨해튼에 처음 매장을 열 때부터 떠올려보자.오직 '스케이트 보더'를 위한 공간으로 마련되었다. 매장에 문턱을 없애고 매장 한가운데까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입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후로도 슈프림은 스케이트 보더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만 골라서 한다. 스트릿 컬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드가 '주류에 순응하지 않는 반항정신'이다. 매장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을 악명 높은 스케이트 보더들로 채우고, 슈프림 크루로 성장시킨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90년대 가장 잘 나가는 브랜드 중 하나였던 캘빈 클라인 광고에 슈프림 스티커를 붙인 것인데, 그라피티나 반달리즘을 현대화시킨 하나의 행위로 엄청난 영향을 몰고 오게 된다.
1994년 케이트 모스가 등장한 캘빈클라인 광고 위에 떡하니 붙여둔 슈프림 스티커
직후 캘빈클라인의 고소가 뒤따르고, 오히려 유명세를 더한 슈프림은 케이트모스와 협업하여 위 행위를 프린트한 티셔츠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다
슈프림 스티커에는 단순히 예쁘게 디자인된 로고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박스 스티커'라고 불리는 이 단순한 스티커 안에는 슈프림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가치가 담겨있고, 그 가치를 함께 나누고 싶은 소수의 타겟이 좋아할 만한 방식으로 나눠지고 있다는 현상의 총합이 담겨있다.
문제는 스티커가 아닌 '문화'
슈프림의 박스 스티커는 리셀 마켓에서도 핫하다. 박스 스티커는 슈프림 제품을 살 때 무료로 제공되는데, 슈프림 제품은 한정판 형식으로 운영되어, 신제품이 공개되는 드랍데이에 1인당 1개의 제품밖에 구매할 수 없다. 즉, 스티커도 1인당 1점 밖에 얻을 수 없는 구조다. 즉, 슈프림이 내놓는 물건도 귀하고 스티커도 귀하다. 비싸게 구는 스케이트 보더의 문화라니, 매력이 여기까지 흘러넘친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슈프림으로부터 나온 모든 스티커를 모으는 콜렉터도 있다
요즘 웬만한 브랜드는 너도 나도 스티커를 비치하고 나눠준다. 누군가에 눈에 띄기 위해서. 하지만 슈프림 스티커처럼 마케팅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 속에 어떤 문화가 담겨있는지 짚어봐야 한다.
이는 최고의 브랜드라고 일컬어지는 애플도 예외가 아니다. 애플은 신제품 박스 안에 애플 로고 스티커를 함께 담아 제공한다. 하지만 초창기 애플의 제품을 소유한 것 자체가 자랑거리였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그 스티커를 보란 듯이 붙이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애플의 매니아들이 누리고자 하는 문화는 스티커 안에 담겨있지 않다. 오히려 기술 혁신에 대한 비평가의 글 속에 담겨있다면 모를까.
슈프림은 벽돌도 판다. 소화기도, 머니건도 판다. 가장 맨 몸 그대로의 것인 스트릿 컬처로 비싸게 구는 것이 핵심이다
10만 원, 아니 단돈 1만 원으로도 가능한 스티커 제작비가 전부인 마케팅. 이런 스티커 마케팅을 처음으로 선보이고, 아직도 여전히 성공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는 슈프림 뒤에는 '문화'가 있다. 핵심 타겟인 스케이트 보더들이 좋아할 만한 방식으로,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깨부순 매장/직원/(벽돌, 소화기, 머니건 같은 오직 과시만을 위한) 신제품/(법적 공방을 벌인 전혀 다른 컬처를 가진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등이 그 행보다. 타겟이 좋아할 만한 방식으로 타겟이 살아가는 세상의 룰을 깨라, 그것이 타겟이 같이 떠들어 줄 만한 거리가 될 것이다.
* 룰브레이커즈 시리즈는 뉴프레임코웍스가 추구하는 정신을 보여주는 브랜드, 인물, 사건 등에 대해 소개합니다. 뉴프레임코웍스는 일종의 마케팅 프로젝트이지만,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뉴프레임코웍스는 룰셋터(RULE SETTER)의 공식,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는 룰브레이커(RULE BREAKER)의 정신을 담은 물건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활동을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이 이야기를 보고, 함께 나누고 있다면, 당신도 이미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뉴프레임코웍스 크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