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 BREAKER 13. 다이아몬드 시뮬럿
작년 이맘때쯤, 포브스 지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소개됐다. 연방무역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가 다이아몬드에 대한 정의를 개정한 것이다. 기사의 제목은 "연방무역위원회의 새로운 다이아몬드 정의가 소비자와 마케터들에게 의미하는 것(원문보기 : What The FTC Diamond Ruling Means For Consumers And Diamond Marketers)".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방무역위원회는 기술을 이용해 이른바 '양식' 방식으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도 다이아몬드로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광산에서 채굴한 천연 다이아몬드와 양식 다이아몬드가 '탄소화합물'로 동일하는 기준에 근거한 것이다. '랩그로운다이아몬드'라 불리는 해당 시장에는 세계적 규모의 다이아몬드 회사인 드비어스도 진출해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다이아몬드파운드리'라는 회사를 직접 출자하여 업계를 이끌고 있다. (어쩌면 이런 회사들의 이익과 연방무역위원회의 이익이 맞아떨어진 결과물일지도)
하지만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정도로 시장을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다이아몬드 시뮬럿'이다. 시뮬럿은 탄소화합물이 아닌 합성소재로 만들어진 인조 다이아몬드의 일종으로, 다이아몬드 시장의 신흥 룰브레이커다. 소비자는 다이아몬드가 탄소화합물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 (위 논리대로라면 연필도 다이아몬드?) 중요한 건 '얼마나 아름다우며 웨어러블 한가'에 대한 문제다.
다이아몬드 시뮬럿 영어로 diamond simulant 또는 simulated diamond라고 한다. 의미 그대로 다이아몬드를 재현한 것이다. 합성소재를 다이아몬드처럼 손으로 깎아서 가장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정확히 말하자면 다이아몬드와 꼭 같이 빛날 수 있는 다면체로 가공한다. 때문에 천연 다이아몬드를 여부를 감별하고 그 가치를 감정할 때 사용되는 파이어스코프(현미경의 일종), 입김, 물 등을 사용하지 않고 '육안'으로만 봤을 때 다이아몬드와 구분이 어렵다.
다이아몬드와 다이아몬드 시뮬럿을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을 때, 다시 말해 아무런 편견 없이 다이아몬드 시뮬럿을 바라본다면 소비자들을 반하게 할 만한 점이 매우 많다. 합성 소재로 만들다 보니,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다이아몬드 중 최상급 다이아몬드를 그대로 복제하고 재현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판단하는 4C, 내포물 정도(clearity) - 컬러(color) - 중량(carat) - 컷팅(cutting)을 처음부터 최상급 다이아몬드에 맞춰서 가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같은 고품질의 다이아몬드 복제품을 1/100 또는 그 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도 구매할 수 있다. 경도는 크리스털(7.5) 보다 높은 8.5다.
다이아몬드 시뮬럿 시장은 다이아몬드를 소유하거나 물려받은 이른바 부자들이 여행이나 레저 활동 중에 도난이나 분실의 걱정이 없도록 자신이 가진 다이아몬드를 복제하여 '아무 설명도 곁들이지 않고' 은밀히 착용한 것이 유래라고 알려져 있다. 나중에는 처음부터 다이아몬드를 사지 않고, 시뮬럿을 소비하는 식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현재 스위스, 이스라엘, 홍콩, 미국, 우리나라 등에서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시뮬럿은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공인기관들로부터 보석 감정서도 나온다. 감정서 프린트에 대한 추가 비용만 지불한다면 말이다.
다이아몬드 시뮬럿은 현대미술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현대미술은 사실적 묘사와 오리지널 페인팅의 가치와 멀어진다. 반면 표현적인 기법을 통해 순수한 미학 또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소비하거나 개념을 소비하는 형태로 발전한 것과 거의 같다. 즉, 다이아몬드 시뮬럿은 정교한 세공 기술을 통해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과 개념을 소비한다.
다이아몬드 시뮬럿은 실제 다이아몬드를 소비할 수 있었던 특별한 계층인 부자들의 욕구와 부합한다. 이는 부자들이 돈을 쓰는 논리를 보면 알 수 있다. 부자들은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 또는 돈을 사용하여 더 큰돈을 벌 수 있을 때에만 자신의 주머니를 기꺼이 연다. 전자는 가치소비, 후자는 투자의 개념이다.
다이아몬드가 비싼 것은 인류가 만들어낸 보석의 개념 때문이다. 금이나 은처럼 화폐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고, 감정사의 기준에 의해 가치가 평가된다. 즉, 투자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부자들은 다이아몬드 광산 산업에는 투자할지 몰라도, 자신을 꾸미고 치장하는 목적으로는 다이아몬드를 살 이유를 찾지 못한다. 육안으로 구분이 어려운데, 무엇하러 비싼 다이아몬드를 사겠는가. 아무도 그들이 착용한 다이아몬드가 얼마짜리 가치를 지니는지 보자며 현미경을 들이대지 않는데 말이다.
다이아몬드는 비싸고 값진 것이라는 오랜 시간 굳어진 믿음. 어쩌면 고정관념이자 관습. 우리는 이 고정관념이나 관습 때문에 때로는 좌절을 경험한다. 하지만 인류를 언제나 그렇듯, 발전을 거듭하며 현명한 대안을 찾아내는데 귀재다. 다이아몬드 시뮬럿은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다이아몬드 시장의 새로운 룰브레이커다. 물론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의 룰셋터들은 이를 전혀 반기지 않겠지만.
이 글을 읽은 독자분들께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은 다이아몬드를 사시겠습니까?'